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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6일 월요일

렘브란트와 고흐를 보고 나서

 둘다 크리스챤인 화가이고 치열하게 크리스찬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네델란드에서 보고 온 많은 것들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두 화가 모두, 돈있고 부 있고 세력있는 사람들이 고객이었던 시대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를 거부했던 화가들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크리스찬으로서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인 거 같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쫒지 않았던 화가들.

램브란트는 20대에 이미 성공한 화가였는데 전성기에 오늘날의 단체 사진 같은 단체 초상화를 부탁받았는데 각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고 빛으로 하이라이트를 주어 특정 인물들이 돋보이게 하면서 비난을 받고 더이상 초상화 주문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일 주문이 밀리던 인기 화가에서 갑자기 파산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되고 잇따라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렘브란트는 어찌해볼 수 없는 삶의 풍랑 속에 던져지고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다. 햄브란트의 그림 중 돌아온 탕자의 그림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그림 하나를 보고 한권의 책을 쓴 핸리 나우엔 덕분에 더 유명해진 듯.

렘브란트는 아내의 죽음이후에도 아내와의 결별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 렘브란트가 재혼하면 유산 싱속이 안 된다는 유서를 아내가 남긴 상황 속에서 가정부와 사실혼 관계를 맺게 되는 등, 도덕적으로 무결하지 않고 부유했던 시절에는 흥청망청 생활 하는 등 탕자같았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인데 그런 그 였기에 돌아온 탕자의 그림은 더 감동적인 것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그림은 암스텔담 뮤지엄엔 없었다. 

램브란트의 야경을 비롯 암스텔담의 그림들을 직접 보면서 정말 달란트가 넘사벽인 화가이구나 느껴졌었다.  이런 화가가 그린, 인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면서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을 볼 수 있음이, 그리고 그것이 크리스찬으로서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는 모습인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림이 일반인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이 된 시대인데 이런 시대에 더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그림, 시대를 초월할 그림을 앞서서 그렸던 것이 참 뛰어난데, 그런 생각들은 크리스찬으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없었더라면 불가 했을 듯하다.

고흐는 렘브란트보다는 후대 화가이기에 인상주의로 표현되고 있는 사실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포착되는 빛의 향연 속의 순간의 인상을 그림으로 남기는 ,화가의 의도나 해석이 담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하던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에 고흐는 농사짓는 사람들, 광부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둘판등에 관심을 가졌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고흐는 한 때 전도사가 되어 너무나 현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 주며 섬겼는데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기 보다는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해고 당하고 만다. 목사가 되는 과정을 완수하지 못한 그는 목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때 그가 그렸던 것들은 그의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된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고갱은 원주민을 그렸고, 모네는 수련을 그렸다면 고흐는 정말 돈이 되지도 않고 화제가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렸던 듯하다. 감자먹는 사람들 같은 그림을 누가 거실벽에 걸어두고 싶었을까 싶다. 그런데 고흐는 그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고흐의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글에 보면 얼마나 그들을 잘 표현하기 원하며 그리고 또 그리며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다. 농부들, 광부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들판, 그리고 바다. 그들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내적 성장을 담은 자화상들. 그런 것들이 주로 내가 네델란드에서 본 그림이다.

그의 그림, 해바라기를 봐도 활짝 피어있는 예쁜 모습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곧 시들어갈 모습들, 꽃잎이 떨어질 듯, 반쯤 상해 있는 모습들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들도 고흐의 눈에는 귀하고 예쁜 것이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을 강조했기에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이 못마땅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고흐는 한 때 불쌍한 창녀와 그녀의 아이를 돌보며 살기도 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고통스러운 정신병이 도지면서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지고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고통을 잊을 수 있었기에 그림에 오로지 몰두하는 시간들이 찾아오는데 그 전에 고흐는 그렇게 오롯이 예수님 닮은 크리스찬을 삶의 지표로 삼았었다. 

이런 그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동생 태오 그리고 그의 아내 요안나. 요안나는 남편태오가 고흐가 죽은 후 6개월 후 죽고 미망인이 되는데 태오와 고흐간의 편지를 책으로 출판하고 고흐의 그림을 모으고 알리고 고흐 그림 회고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등 고흐를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녀의 사진도 박물관에 있었는데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고흐 태오 요안나 이 세람의 특별한 서로간의 인정과 사랑이 참 놀랍다.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그림을 탄생시키는 이 세 사람의 협업.

탕자였던 렘브란트, 그의 그림은 정말 탁월했다. 달란트를 받은 것이 너무나 느껴지는 훌륭한 그림이었다. 이번 암스텔담에서는 그의 탁월한 솜씨를 직접 보며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의 신앙적인 면모는 돌아온 탕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얘수등의 그림을 보며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술관에서는 다소 장난기 있는 천재 화가를 본거 같다,

예수님 닮은 삶을 추구했으나 정신병에 시달렸던 고흐, 그의 그림은 자기 표현이 넘치고 넘치는데 그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을  배우고 싶다. 또 자화상에서 봤던 차갑게 응시하던 눈빛은 인생을 좀더 진지하게 살라고 꾸짖는 듯하다.

전혀 예상 못했는데 두 크리스탄과의 만남이 있는 여행이었다. 책과 글로 주로 감흥을 받고 영향을 받았었는데 그림과 화가의 삶으로 영향을 받는 시절이 내게 왔나보다. 아마도 두 화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을 끼쳤을 거 같다.

댓글 2개:

  1. 두 화가의 천재성과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가...예수의 삶을 닮고 싶어하는 것을 그림에서 느끼고 감상했다고하니 정말 감상 잘 하셨어요.
    인생은 잛고
    예술은 영원하군요.
    그 두화가는 왕실을 그리지 않고
    서민을 주제로 많이 그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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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기하게도 뮤지엄에서는 아몬드 나무와 꽃 그림을 좋아하고 기념품도 사고 했는데 집에 와서 이 글을 쓴 이후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이 자꾸 떠오르네요. 밀레나 베르메르처럼 매끈하고 아름답게 그리지 않은 울퉁불퉁한 모습인데 자꾸 떠올라요. 고흐 그림의 힘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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