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의 자기방 그림.
2년여 파리 생활을 마치고 1888년 남프랑스의 아를에 정착하여 고갱과 함께 쓰던 방을 그린 것이죠.
2년여 파리 생활을 마치고 1888년 남프랑스의 아를에 정착하여 고갱과 함께 쓰던 방을 그린 것이죠.
비슷하게 세작품 그렸다는데 시카고 아트 뮤지엄에 하나 있네요.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이라는 책에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고호가 직접 자기 화법을 설명하기를
" 일부러 부정확하게 그려서 나의 비사실적인 그림이 직접적으로 사실을 그린 것보다 더욱 진실되게 보이게 하고 싶다." 고 했다는데, 이 그림 또한 그런 의도가 보이지요.
긴 침대로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데 편안한 휴식보다는 불안한 고호의 마음상태를 표현한 거 같아 보여요.
고호와 고갱의 관계는 고호가 정신발작을 일으켜 고갱에게 칼을 휘두르고 자신의 귀를 자름으로써 끝나지요.
고호가 떠난 후에도 고호는 병원 입, 퇴원을 반복하며 15개월간 아를에서 지냅니다.
아를에서 그린 그림만도 유화 190점.
열정만큼 다작을 남겼네요. 2,3일에 한점을 그린 셈이네요.
아를에 머물 때 그린 다른 그림도 소개해봅니다. 귀를 자른 고호를 돌보아 주었던 우편 배달부의 초상입니다.
우체부 죠셉 룰랭, Portrait of Joseph Roulin
또 다른 우체부를 그린 그림입니다. 보스톤 아트 뮤지엄에 있다는데 방문했건만 직접 찍지 못했네요. 다음에 꼭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기를...
아를에서 정신병원으로 옮겼던 고호는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의사 가세의 도움으로 마지막 생을 파리 근교의 파리 북부 오베르 귀르 오아즈에서 보내게됩니다.
두달 동안 머물며 70여점의 작품으로 마지막 열정을 토합니다.
이 때 그린 작품들을 퍼왔어요.
가세박사의 초상, Portrait of Dr. Gachet
이 작품도 비싸게 팔린 미술품 10선안에 들어갑니다.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할 무렵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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