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토요일

노진준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설교 말씀

 노진준 목사님은 오래 전에 몇번 직접 뵙고 말씀을 들었던 목사님이시고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 이웃교회의  60주년 부흥회 강사님으로 오시게 되어 참석하여  다시 말씀을 듣게 되었어요.

30대 40대에 들은 것과 오랜 세월이 흘러 듣는 것은 다른 느낌을 주네요.

노진준 목사님은 생후 8개월에 소아마비 판정을 받으시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신 분인데 설교 본문이 간질병인 아들을 고치길 원하는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이고 믿음이 주제라서 어떻게 말씀을 풀어가실지 집중해서 들었어요.

예전보다 얼굴은 크게 많이 늙으셨다는 느낌이 안드는데 몸은 더 약해지신 듯하여, 그리고 평생을 육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힘들어하시며 믿음이라는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하셨을거라 생각이 들어 설교를 들으며 내내 하나님께서 이 분을  약하게 하시고 고통 중에 있게 하시며 예수님을 드러내시며 나타내시며 알게 하신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집중하여 들었어요.

우리는 서로 같은 단어를 써도 다른 뚯으로 이해할 때가 많다며 " 믿음" 이라는 단어도 그러하다고 하시며 셜교를 시작하셨어요.

어떤 단어를 이해하려면 그 반대되는 말을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고 하시면서 여러 성경 본문을 인용하시며 믿음의 반대어 같아 보니는 말들을 끄집어 내주십니다.

의심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의심이 믿음의 반대어 같이 들리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예를 들어 병낫기를 기도할 때  안될거 같은데. 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때 1프로의 의심도 몰아내면서 정신통일 하듯, 믿씁니다를 외치며 집중하여 마음 수련을 하여 100프로로 믿어지게 만드는 것이 믿음 좋은 것인가? 라고 물으십니다.  아닌거 같다고 하시며,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 기도제목으로 내 놓고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한 100퍼센트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거 선하시며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이라 하십니다.(히브리서 11:6) 병고침과는 무관하게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견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 목사님께서 얼마나 이부분을 붙들고 성경말씀을 보시고 고민하시면서 깨닫게 되신 것일지, 오늘 본문에서도 간질 환자는 나았지만 목사님의 소아마비는 치유되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말씀을 해석하고 보시는  그런 깊이가 있는 해석을 해주셔서 넘 좋았어요. 의심하지 않으면 받은 줄로 알아라, 믿는 저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등등 병 고침을 받거나 성취하지 못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인 듯 주눅들게 되는 부분에 대하여 성경의 문맥을 보면서 다시 이해해나가도록 도움 울 주셨어요.

목사님은 고2 학생일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는데 하나님께 4년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리를 고쳐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해요. 건강한 목사가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 과정에서 가정은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대학생일 대 지나가다 어느 미국교회에 신유집회가 있다는 포스터를 보고 교회를 들어갔는데 30여명 노인 위주 신도들이 있었고 여러 목사님 중 한 목사님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 주셨으나 다리가 낫지는 않았다고 해요.  강사 목사님이 기도하면 다 고쳐진다고 하는 말에 화가 나서, 뭘 더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냐 화가나서 집회가 끝나고 가서 찾아갔는데 목사님과의 대화 중  사도 바울이 3번 기도 했으나 병고침을 맏지 못한 성경 말씀을 말하시며 성령의 음성을 들은 후 바울은  더 이상 병고침의 기도를 하지 않았고 자기 몸의 가시 같은 그 병이 자고하지 말라는 뜻임을 알고 그 이후는 다시는 그 병에 대해 다시는 기도하지 않았으니 그의 병은 다 나았다고 하시었다고요. 

그 말씀에 충격을 받은 것이  목사님은  항상 강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고요. 약한 몸이니 더 강해야한다고 생각했었기에 더 주도적으로 활동적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었고 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해 왔었는데 약함이 강함이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는 그 원리를 꺠달으며 강해져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리 고침에 대하여 더이상 기도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리하여 그 이후에 목회하면서 다리로 인한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태도는 바뀌었고 그날 분명 고침을 받았다고 하시더라구요. 목사님은 은혜를 받으면 능력이 생겨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나 독립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은혜 받으면 비독립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고요. 저는 이 말씀이 망치였네요. 은혜는 디팬던트하게 만든다.  정말 요즘들어 많이 느끼는 부분이예요. 은혜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인간이다.

성경에서 행위냐 믿음이냐를 애기할 때는 믿음은 행위와 상반되는 개념처럼 들리는데요, 즉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와 같은 말들을 많이 봅니다, 야고보서에서 이 부분을 많이 다루는데요 

믿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행위가 인간의 의를 너무 드러내며 나의 행위로 이르는 구원이라는 오류에 빠진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믿음도 마찬가지인 것을 이런 예화로 설명해주셨어요.

 죽을 병에 걸린 환자에게 누군가 와서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할 때 마치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내가 믿었더니, 즉 내가 약을 먹었더니 라고 하면서 약을 먹은, 믿음을 가진, 자기를 지나치게 내세우게 된다고요. 그리고 약을 안 먹어서 죽는 걸로 되는데 사실 죽는 이유는 병에 걸려서이지 약을 안 먹어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약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은혜이고 구원에서 젤로 중요한 것은 은헤인데 너는 약을 안 먹었지, 불신했으니 너는 지옥, 나는 약을 먹었으니, 예수 천당 이렇게 믿음을 은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해주셨어요. 

대체로 믿음이 적은 듯하여, 기도 해도 응답되지 않는 듯하여,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듯한 성도들에게 목사님께서 힘내라고, 원래 다 그렇다고 그걸로 낙심하지 말라고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이 선하시며 우리 삶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인내하며 나아가라고 다독이시며 안타까워 하시며 말씀하시는 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말씀을 들었어요.

목사님 본인이 스트러글 하시며 깨달아 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말씀이구나 싶어서 경청하며 들었습니다. 

이후 목사님 설교 말씀을 유튭에서 더 찾아보았는데요, 새롭게 하소서 인터뷰도 좋았는데 패널들이 목사님 말씀에 무릎을 치며 공감하더라구요.

설교 한번으로 사람들이 변화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설교는 말씀을  리마인드 시켜 주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이 시대의 명설교가 라는 타이틀이 붙었던데요, 정곡을 찔러주시는 말씀을 전하시는듯요.

말씀도 풍성했지만 집회 후에 준비해주신 다과도 넘 나 풍성했어요. 다 홈메이드.

툐요일 7시에도 합니다. 10시에는 재직들 대상으로 있었구요.



2026년 9월 4일 금요일

트레이더죠의 타이완 파전

 


이걸 보기만 하고 안 사다가 함 사봤는데 맛있어여.

맛은 올리브오일 찍어먹는 얇은 빵 같은 맛이나요. 우리식 파전과는 완전 다른데 맛이 괜찮았어요.


이런 것이 얇은 파전이 여러장 들어있어요.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종이에 달라붙어 잘 안떨어지므로 냉동실에 있는 채로 꺼내 사용하는 것이 좋아요.

저는 잘라놓은 파가 얼려진 것이 있어서 그 위에 뿌리고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구웠는데요. 약간 사진이 어두운데 노릇노릇 보기에도 맛있어보이는 파전이 나옵니다.

맛은 쫄깃하니 올리브 오일이나 발사믹에 찍어먹어야할 거 같은 그런 식감인데 맛있어요.

오후에 출출할 대 간식으로 하나 구워 먹으면 딱 좋을 듯해요.




2026년 9월 2일 수요일

닭게장을 닭칼국수로 변신

 


닭게장을 닭칼국수로 변형애 먹었어어.

샘즈에서 로스트된 통닭 한마리 사서 반마리만 닭게장을 만들어 얼려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는데 그걸 꺼내서 물 좀 더 붓고 꿇인후 생우동국수를 넣고 끓였어여.


고추가루 좀 더 뿌리고 간장 살짝 넣어서 간 맞추고 들깨 가루가 냉동실에 있어서 좀 뿌렸어요.


그릇에 담은 사진을 놓쳤네요. 깨 뿌리고 김 부셔 올리면 맛난 칼국수 한 그릇 완성.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책읽기 98 : The Blind Assassin by Margaret Atwood 2

 이 책을 드디어 끝냈어요.

오래 걸렸는데요 작가 역량애 감탄 감탄.

부커상 두번 받은 작가의 위력을 보네요.

반전이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들이 뒤로 가면서 나오는데 스토리를 다 쓰면 재미가 없을 거라 스토리 쓰기는 못하는데요,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리스가 낳은 딸의 딸에게 남기는 아이리스의 글을 보면서 결국은 세대를 이어가는, 딸의 딸의 딸 계보 속에서 남은 아이에게, 다른 누구에게도 아닌 그 아이에게 자신이 겪은 그 모든 역사적 시대상황 속에서 개인사가 얽혀들어갔던 그 모든 것을 밝히고 써내려간 것을 읽는데 뭉클하더라구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생각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자기가 죽고 나서도 그 존재의 흔적으로 이어질 다음 세대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과 그것을 읽는 손녀는 할머니의 시대와 그 삶을 얼마나 이해할까 싶고 그것이 그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싶고요.저도 이제 그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인지라 더 공감이 되기도 했던 거 같아요.

소설은 아이리스의 할머니 얘기도 나오니 할머니, 엄마, 아이리스, 딸, 손녀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어요.

결국 스토리를 담은 출판된 책을 통하여 세상에 대해, 또 아이리스와 로라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하여 당하고만 있지않고 한방 크게 먹이게 되는 셈이라 다른 방법보다 한 방에, 꽤 효과적인 복수를 하게 되어요. 신문에 제보해도 진실공방이 오가고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일텐데 소설을 출간하고 그것이 세간의 화제작이 되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이슈를 만들고 알아서 복수를 해주고 그러는 거. 

아이리스의 남편 리차드는 아이리스 아빠가 경영에 실패한 공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아버리고 아이리스가 신혼여행 중 아빠는 그 충격등으로 돌아가시는데 그걸 알리지도 않아요. 로라는 나이가 어렸기에 아빠가 남긴 유산도 미성년자인 로라에게는 후견인의 관리하에 21살까지 보류가 되고 로라는 리차드와 그 동생 위니프리드의 관리하에 기숙학교로 보내져요. 아빠가 죽고나니 이 두 자매의 삶이 수렁 속에 빠지게 되고 법은 고아가 된 두 여자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요. 

로라는 언니와 둘이 어디든 달아나서 살길 바라는데 아이리스는 그럴 용기를 가지지 못해요. 

로라의 죽음 이후에, 애초부터 로라를 지키는 것이 언니로서의 의무요 책임이었던 아이리스 였기에 그녀의 죽음 이후에나 리차드와 위니프레드의 세계로부터 탈출해 나와 옛 고향으로 돌아와 살아가지만 딸 에이미를 뺏기고 말아요 에이미는 풍요로왔던 아빠와 함깨 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요.

소설 초반에 로라가 다리에 떨어져서 죽은 것이 신문에 나오는데 로라는  왜 죽었을까? 그 부분이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몰아가는 힘이 되어요. 로라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주관대로 행동하는 성격인데 종교적인 아이예요. 고지식하게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아이. 자기가 믿었던 것이 깨어지자 자아가 부서지고 말아요.

각자 자기의 빛깔대로, 아이리스는 아이리스 식으로 로라는 로라 식으로 시대 상황 속에서 개인적 운명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둘다 넘 불쌍하고 불행해요. 여성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 조차 잘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좋은 남성을 만난다는 그 흔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여성들은 다 이렇게 불행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또 하나, 아이리스의 책 출간 이외의 또 하나의 복수는 리차드보다도, 위니프레드 보다도 오래 살았다는 것?  죽은 자는 말을 못하니 오래 산 아이리스이기에 자기의 애기를 손녀에게 남길 수 있어요. 리차드도 위니프레드도 그 얘기를 없애거나 가로채서 바꾸거나 변질 시킬 수가 없어요. 오래 사는게 진정한 위너구나 싶기도 한 지점이었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

 


책읽기 좋은 날.

아침 저녁으론 가을이 슬쩍 다가온 느낌인데요

독서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분위기 바꾸어 햇살 맞으며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