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8일 토요일

책읽기 101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정말 짧은 소설이라서 두시간 정도 시간 내면 읽을 수 있어요.

이북으로 릴리의 서재에서 읽었어요. 사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이런 클래식책들이 릴리에 많이 올아와 있어서 읽기 좋아요.

톨스토이 원작이고요.

이반 일리치는 판사 라는 고위 공무원직을 하며 잘 나가다가, 세상적으로 보기에 잘 살고 있는 듯 하다가 갑자기 병에 걸리고 세달 만에 죽게 됩니다.

승진해서 바라던 고급진 삶을 즐겁게 사는 듯하다가 병에 걸리는데 통증이 심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짜증이 늘어나면서 식구들과 관계가 나빠지고 고독하게 죽어갑니다.

사실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는 그 전에도 좋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특별한 사랑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어울릴 거 같아서 결혼한 사이인데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문제없이 살아가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아내가 힘들어질 떄 이반은 도와주고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일 속으로 도피하고 자기의 세계를 방해받지 않으며 살아가려고 작정을 합니다. 그러니 부부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밖에요. 아내는 이반이 병에 걸리자 충분히 공감해주고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것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취합니다. 

이반은 자기가 뭘 잘못 살았나 생각해보는데 잘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다 죽기 3일전쯤 딸에 비해 부족한 듯한 아들이 침대 옆에 혼자 와서 손을 쥐고 우는데 마음이 흔들리며 아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요.  자기 삶에서 진정 즐거웟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는데 어린시절의 즐거웠던 시절을 지나서 고학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진정 즐거웠던 때가 별로 없었음을 깨달아요. 적절하게 남과 잘 어울리고 인정 받으면서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서 남들보다 앞서서 숭진하고 판사로서의 우월의식과 권위자로서 대우받는 삶을 즐겼던 모습이 과연 즐겁게 살아간 삶이라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요. 저기 삶이 불상했고 그런 삶을 같이 했던 가족들이 다 불쌍해져요. 죽을 거 같은데 가족들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채 하는 것같은 거짓 속에 살다가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진실된 행동을 함으로 이반도 거짓을 벗어버리고 자기 삶의 진실을 직시합니다, 

우리 삶이 이렇게 이반처럼 살기가 참 쉬운 거 같아요.

사실 뭔가 모르게 이끌리어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 받고 선생님들에게 칭찬 받아야하는 것 같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 좋은 데 들어가서 승진해야할 거 같고 남들 밑에 있는 위치보다는 위에서 권위를 갖되 그걸 남용하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으며 적당히 존경 받으며 잘 지내며 사는게 멋진 거 같고, 그러다 결혼으로 아이가 생겨도 남자들이 삶의 태도를 바꾸어 가정으로 마음과 정성을 쏟는 경우는 드문거 같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 넓혀가는데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고 그러다 보니 부부 사이에 금이 가고 그러다가 사회에서도 한계를 느낄 즈음 가정으로 눈을 돌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챙기고 만약 너무 심하게 관계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다시 봉합함서 은퇴 이후에는 함께 친구처럼 지내고 그런 그림이 일반적인 사람 사는 모습 같아요. 

여기에 이반은 병에 걸리면서 죽게 되는 상황 속에서 자기 삶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처음 병에 걸려 의사를 찾을 때 의사의 권위 앞에서 작아지는 얘기가 나와요. 이반이  판사로서 가졌던 권위 의식이 의사 앞에서 무너지는데 법조인과 의사는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두 권위집단 인데요 이반은 자기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사의 권위 앞에서 자신이 판사 시절,  회사 사장도 고위직 공무원도 작아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들과 같아졌다 느낍니다. 

이 부분 재맜었어요. 법조인과 의사, 톨스토이 시대에도 대표적인 권위집단이었구나 싶고 의도적으로 두 직업군을 대비시킨걸까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렇게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남보다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헛되다는 것을 참 효과적으로 보여주는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의사 앞에서 낮아지고 작아졌다가  집에 오면 짜증을 내고요. 아내는 이반을 진심으로 동정하거나 돌봐주지 않아요. 이반이 육아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삶을 산 것처럼 아내도 오페라 구경을 가고 자기 삶을 살아요. 죽을 병으로 진단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의사 저의사 소위 명의들을 만나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자꾸 나빠지는데 가족들은 죽어가는 이반의 모습을 직시하지 않고 위선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예요. 딸이 약혼을 앞두고 있어서 아내는 거기에 더 신경쓰는 듯도 하구요.

소설의 첫부분이 이반이 죽고 장례를 치르는 부분으로 시작하는데요 친한 친구나 동료들의 머리 속에는 이반의 죽음으로 생기는 자리에 누가 승진하여 자리를 메꿀것인가? 장혜식을 마치고 나면 카드게임을 가야겠다는 생각들로 차 있어요. 물론 슬픈 마음이 조금 있긴 하지만요. 또 아내도 어떻게 해야 정부로 부터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나에 골몰하고요. 넘 슬픈 모습이지요. 특별히 나쁘게 산 것도 아니고 병들기 전까지는 남들 보기에 존경도 받고 남들과 화목하게 잘 산 거 같은 이반인데 말이죠.

인생의 모숩,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간결하게 잘 보여준 소설인 것 같아요.  미니 버젼으로 대하 소설로 써야할 주제를 잘 풀어낸 듯요. 

짧으니 함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피츠버그 강, 폰툰 보트 (pontoon boat )파티

 




폰툰 보트는 요트랑 달리 호수나 강처럼 물살이 강하지 않은 곳에 띄울 수 있는 평평하개 생긴 보트인데 보통 10-12인승을 대여해 주더라고요,

두시간이 최소 단위고 350물 정도. 더 비싼 500불대도 있고요.

직접 운전할 수 있어요.

애들 고등학교때보니 보트 운전 자격증을 학교에서 따는 옵션이 있던데 그럴때 따 두면 이용하기 좋은 듯요.

생일 파티 등 하기 좋은 듯요.

피츠버그 강이 지저분하니  수영할 수는  없고 시원한 강 바람 맞으며 스커이라인 보면서 색다른 기분을 느껴볼 수 있겠지요.

강 줄기를 떠라 몇군데에서 대여를 하는 듯요,

2026년 8월 7일 금요일

라디오 추천해요

 


파나소닉 제품이고 베스트 바이에서 샀어요.

NPR 듣기를 좋아하는데 전화기로 듣거나 할 수 있지만 번거로와서 라디오를 하나 샀어요.

리뷰에 소리가 잘 잡힌다고 했는데 정말 잘 잡히네요. 음질도 좋다고 했는데 음악을 들을 땐 그닥 이고요 라디오 방송 듣기에는 딱 좋아요. 크기도 별로 크지 않아서 자리 차지 별로 하지 않고요.

기념품 얻은 라디오가 있었는데 찍찍거려서 듣기 힘들었는데 이건 깨끗하게 잘 잡혀요.

책읽기 101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은 저자의 수상 경력을 보니 엄청난데, 글 쓰는 스타일과 내용도 알차서 보통의 이런 주제의 책보다 훨씬 좋았어요. 다만 책을 쓴 때가 2012년 즈음인 것 같아서 그 이후로 또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또 미국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서 한국의 실정운 어떠한지도 궁금하고요.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지만 노년의 삶의 질 측면에서는 의문이 생기는 데요, 이 책에서도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삶을 퍙군1년 정도 살게 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네요.

한국 상황은 일단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면 뱡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돈이 되기 댸붐에 주렁 주렁 인공 호흡기와 약물을 투여한 채로 생명 연장을 하면서 몇년 씩 보낸다는 얘기도 듣게 되고요.

이런 상황에서 이미 노령에 이른 부모님의 당면한 문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모습이 될 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지금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또 환자들에게 어떤 선택이 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어요. 많은 사례들과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들이 나와요.

노인 복지라는 것이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더라구요. 농경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넘어가고 핵가족화 되었지만 아직 복지 정책이 생기지는 않은 그 시기, 사회적 부의 축적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과 공항을 겪었던 그 시대에 처참했던 노인들의 빈민 수용소에 갖힌 것같은 생활상에 대한 얘기들은 충격적이었어요. 미국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우리나라는 비교적 빨리 그런 시기를 단축 시켰던 것 같고요.

메디케어가 생기고 은퇴 연금 제도가 있어서 인컴이 없이 늙어가는 그 시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 다행인 거 같아요.

이 책울 보며 요양병원이 생긴 역사적 이유가 병원에서 입원하여 장기 치료를 요하는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병원에서 감당이 더 이상 안되면서 요양병원을 만들었던 것이지 노인들이 잘 살아가도록 돕는 차원에서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너싱홈이라고 하는 거라고.

그리고 요양병원에 있게 되면 주체성이 사라진다는 부분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어요. 내가 원하는 티비를 볼 수 없고 낯선 사람과 같이 방을 나눠 쓰고 약먹는 시간, 체크 하는 시간엔 문이 벌컥벌컥 열리고 의료진들이 들이닥치고. 더 이상 집이라는 느낌을 갖고 살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몇년을 살아야한다면 참 고통스럽겠다 싶었어요. 삶의 생기와 기쁨을 잃어버리기가 넘 쉬울 거 같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밖에도 못나가고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남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요양원으로 갈거야. 나의 삶이야 집이나 너싱홈이나 집안에서만 머무르면 크게 다를 거 없을 테니 너희 삶을 희생함서 나를 돌봐달라고는 하지 않을 거야" 라고 했었는데 그 상태라고 하더라도 집과 너싱홈은 많이 다른 상황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의 군대생활이나 수용소 생활 같이 느껴진다는 표현도 있었어요.

가더라도 어떤 너싱홈을 갈 것인지, 어느 정도의 나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지를 잘 살펴보고 좋은 곳을 골라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매에 걸렸거나 휠체어를 자주 이용해야하거나 하여 의존성이 높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운전을 못하게 되고 자꾸 넘어지는 정도의 문제로도 자기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에 공동 생활을 하는 시설을 찾게 되는데 이런 경우 자기 방이 따로 있고 어느 정도 독립성이 보장되는 시설로 들어간다해도 집 같지는 않은 생활 환경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데  공감이 많이 되더라구요. 예를 들어 우편 배달부와 사귀어 일주일에 한번 카드게임을 했다던가, 가까운 라이브러리에 가서 책을 읽는다던가 하는 일들도 시설에 가면 환경이 바뀌면서 다 중단되고 집에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며 만족도가 떨어지면서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

 은퇴 이후엔 얼른 자식 주변으로 가서 집을 얻고 주변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고 생활을 갖추고 살되 주변에 좋은  어시스턴트 리빙이 잘 되어 있는 곳인지도 미리 살펴봐서  그 다음 단계의 삶까지 염두에 두며 살 곳을 골라봐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늙어가는 아버지나 엄마와 미리 대화를 나누고 소통울 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지 , 치료를 통하여 도달하고 싶은 목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더라구요.

 한 사례로 교수였던 아버지가 중병애 걸렀는데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기를 원하냐고 딸이 물었을 때 집 소파에 앉아 티비로  풋볼 게임을  볼 수 있으면 만족한다고 하는데, 이 답에 딸은 놀라게 되어요. 아버지는 평소에 풋볼게임을 보지 않았고 연구와 티칭으로 바쁘게 살던 분이었기에 소파에 앉아서 풋볼 보는 삶에 만족하리라 생각지를 못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저자는 삶의 목표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책의 좋은 점이 이런 부분도 짚어 준다는 것인데요. 연구에 의하면 젊은 시절의 삶의 목표와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삶의 목표는 바뀌는데 젊은이들은 자기 발전을 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뭔가를 성취하는 등에 더 관심을 갖고 노인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요. 그래서  삶에 대한 만족도는 노인들이 높다고 하네요. 또 나이가 어리더라도 큰 죽음의 고비를 맞은 경험이 있었던 경우는 삶의 목표를 노인들과 비슷하게 답한다고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대부분의 노인들의 삶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고 하루 하루 행복하게 만족하며 사는 것인 것이죠. 앞의 풋볼 보는 것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하는 교수처럼요. 그리고 그 대화는 나중에 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수술 이후 다리가 불편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풋볼 보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수술을 하기로 하는 것이지요.

저자의 아버지는 위의 아버지와는 좀 다른 분이었던 듯해요. 인도 출신 의사였는데 활발한 대외적인 활동을 계속해요. 인도에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로타리클럽 회장이 되기도 하고요. 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회복하자 다시 일을 벌리는 스타일. 그런 활동이 안되는 상태의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아요. 

이렇게 노인이 된 삶에서도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목표로 하고 있느냐도 중요한 부분이고 마지노선이 어디까지 인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 거 같아요. 또 젊은이의 인생 목표가 노인과 다른데 그런 젊은 자녀에게 노인을 돌보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게 가능치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젊은 시절에는 활동적으로 외부로 뻗어나가며 살아야할테니요.

마지노선 정하기 부분에서 최근에 친구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어여.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연명 치료는 안하갰다고 다 서류를 작성해 놓은 상태였는데 호흡 곤란이 오자 인공 호흡기를 꽂겠느냐고 하러라고요. 그래서 자식들은 하라고 했데요. 그 다음엔 식사를 잘 못하시니 수혈을 하고 피를 바꾸어 주는 것을 하겠느냐고 하더라네여. 하라고 했데요, 숨쉬고 영양공급하고 그걸 자력으로 못하시니 어떻게 하지 마세요 할 수 있냐는 거지요. 그런데 치료책은 아니고 상태 유지를 위하여 한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며칠 반짝 상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다시 나빠지고요. 그런데 하다보니 그게 바로 연명 치료이더래요. 그래서 얼마 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돌아가셨다고요. 식탐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연명 치료 받는 동안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냄새를 풍기며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고통 스러우셨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나아질 수 없는 가운데 생명만 연장하는 것은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중병이 걸린 경우는 의사들이 암환자나 중병 환자들에게 성공 가능성이 크게 없는 방법을 제시할 때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대체로 희방적으로 ,해결책인양  임상 중인  치료법등을 제시하지만 사실은 실패율이 높고 그 과정에서 몸이 약해지고 고통스러움을 격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요. 의사들은 대체로 살리는 것에 중점을 맞추니 무슨 방법이든 해보려 한다는 것이지요. 성공률이 아주 낮아도요. 이걸 환자는 희망의 메세지로 듣게 되고요.

호스피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병원에 있지않고 퇴원하여 집에 있으면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을 경우, 생각보다 삶이 연장되고 병원에서보다 훨 퀄러티 있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평화롭게 맞는 경우가 많았어요.  병원에서는 많은 환자 중의 한명이라서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어려운데 호스피스 간호사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고통중에 있는 말기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적절한 조언과 도움을 주어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만족스럽게 살게 도와주고 그 시간의 삶을 퀄러티 있게 채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사례에서는 전문가들이 삶의 마지막을 잘 돕는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준비가 되었다기보다는 현실을 더 알게 되면서 두려움만 더 늘어난 느낌이지만 삶의 주체성과 존업성을 지키며 살기 위해 대비를 잘 해야하고 미리미리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시애틀 Chihuly Garden and Glass

Dale Chihuly 라는 유명한 우리공예 작가의 뮤지엄 사진입니다.

가본 것은 아니고 다음에 가면 참고하려고 사진을 올립니다, 시애틀에 있다고 해요.

피츠버그에도 작품이 있는데요 핍스 식물원에서 2007년과 2008년 사이에 전시회가 있었고 그 이후 지금도 일부 있다고 해요. 다음에 가면 꼭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