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 월요일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을 보며

믿음장을 보면 전반부에는 구약의 인물들, 아벨, 에녹, 노아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예언자들의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이름도 없이 고난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신약의 크리스찬들에 대하여 믿음에 대해 같은 선상에서 얘기한다.

예전에는 전반부의 이생에서의 해피앤딩을 보여준 구약의 선진에서 힘을 얻다가 신약의 괴로움 당하고 죽임당하는 앤딩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오늘 보면서는 이분들이 같은 고난을 겪었고 같은 앤딩을 가졌음을 보게 된다.

다니엘이 사자굴을 들어갈때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으며 죽음을 무릅썼던 것과 같은 두려움과 떨림이 동일하게 있었을 것이다. 
또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로서의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 영화를 버리고 유대인의 아이덴터티에 인생을 걸고 도망자로 다닌 그 삶은 동굴로 피해다니며 동물 가죽옷을 입고 박해를 피해다니던 초기 기독교인과 다르지 않다.

이들이 동일하게 본것은 이생의 삶이 아니라 영생의 삶에 대한 가치였고 그리고 이생에서의 결과는 달라보여도 그 최종점은 영생으로 같음을 본다. 그들에게 던져진 연단과 고난은 같은 연단이었고 잠시 거쳐가는 이생에서의 결과는 승리와 실패자로 다른 것 같아 보여도 최종 결론은 영생으로 같으며 그들이 고난을 당했던 그 시점에서 그들이 그 고난을 담대히 맞이했던 그 마음과 그 믿음은 동일했음을 본다

믿음의 사람들이 처해있던 시대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시간표상의 위치에 따라 마치 연극배우가 극작가의 의도에 따라 적절한 역을 해내듯, 그들은 이생에서 승리를 맛보기도 하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들의 삶을 왜곡한다. 믿음의 조상들, 이들의 승리, 이생에서의 성공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서 전체적인 조망과 그림을 못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거 같다.
무수히 들었던 다니엘의 설교에서도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이 그를 사자굴의 위험에서 지켜주고  재상으로까지 이끌어주었으니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갖자 라는 정도의 설교였던 거 같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높아진 것, 재상이 된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통해 이방왕들인 느부갓네살왕과 다리오왕이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굳센 믿음과 그 영향력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선포되도록 한 그것이고 다니엘의 삶의 가치는 재상이 된 것이 아니라 증인된 삶을 살아냈다는 그것이 아닐까? 
 우상숭배하던 왕들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증인이 된 다니엘의 그 승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으로 하나님을 증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세상 생에 목숨거는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협박이 되는 죽음이라는 무기를 들이대도 굴복하지 않는 크리스챤을 보며 저들이 보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영생이 있는 걸까? 고민하게 하는 그 힘과 사자굴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사자굴에서 살아나오는 그 힘과 영향력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친구가 불가마 속에 들어갔을 때 한 말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고 하나님을 지켜내고 따르겠다는 것이었고 그 모습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믿는 자에게 동일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 이후의 삶을 경험한 제자들, 신약의 의인들은 고난을 끝내고 평안하게 살았던 삶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쳤고 누구나 두려워하고 알 수 없었던 죽음 이후의 보증을 확실하게 받음은 이 삶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약속 받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했다. 전 유럽을 복음화 시킬만큼....

믿음은 결국 보이지 않는 실상, 영.생.을 바라고 증거하는 것.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을 그 허다한 증인들은 살아냈던 것이다. 이생의 승리로, 혹은 죽임당함으로...
즉 믿음의 선진들의 삶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 계획 안에서 동일하다.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삶의 계획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수 없을 거 같다. 이땅에서의 모습이 구약의 선진들을 닮을 수도 있고 신약의 선진들을 닮을 수도 있을 거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하는 계획안에서 다양한 역할과 모양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나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있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쓰여질 듯...
마찬가지로, 다니엘과 모세처럼 세상 속에 속하면서 세상 안에서 경력을 쌓고 지혜를 늘려가고 그런가운데 구별되게 이끄신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또한 귀하다는 생각이다.
오지로 선교를 가고 고난을 자진해서 당하고 하는 모습만이 예수님 닮은 모습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닐거라는 것.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에 맡겨드리는 것이고 판단하지 말아야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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