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6일 토요일

죠지 플로이드 사건의 역사적 배경 george floyd historial background

흑인들의 저항 역사에 대한 다큐를 보았어요.
90년대에 미국으로 와서 주로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살아 온 나에게는 백인 경찰의 죠지 플로이드에 대한 행동들이 넘 이해가 안가는데 이 다큐를 보고나니 그 역사적인 배경등이 이해가 좀 되는 듯해요.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미국에 실려오고 남부에서 목화농장에서 주로 일하다가 링컨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되지요.(1862년) 이 떄 갑자기 엄청난 노동력이 갑자기 없어져버리면서 남부의 경제시스템에는 큰 타격이 오게 되는데요 이때 경제 타격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법을 교묘히 이용해요. 
노예제도는 폐지되고 강제노역을 시킬수 없고 모두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법이 제정 되었는데  이 법  적용에 예외가 있는데요, except criminal, 범죄자는 제외한다는 단서가 있어요. 
어떻게 이용할까요? 
흑인들을 범죄자로 만듭니다.
쓰레기를 버렸다거나 사소한 법규를 어기면 백인에게는 관대한데 흑인들은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강제노동을 시킨거지요. 이 때 엄청나게 많은 수의 흑인들이 감옥에 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잘 몰랐어요. 
그렇게 공권력은 처음부터 흑인에게 부당하게 행사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백인들에게는 이 차별이 넘 당연했던거지요.

1915년 국가의 탄생이라는 무성영화가 나오는데 흑인들은 동물적이고, 강간범이고, 범죄를 쉽게 저지르는 인간이하의 사람들이라는 사상을 부추키며 불에 기름을 붇는 격이었다고 합니다.  KKK 단이 나오고 흑인을 죽이고 괴롭히는 이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인양 영웅시하는 영화였고, 이런 미친 사회분위기가 한동안 만연합니다. 이 상황을 피해서 흑인들이 북'쪽으로 많이 이주하기도 했구요.
이런 가운데 1880년대에 제정된 흑인 차별법. 짐 크로법(1965년에 폐지) 은 정당성을 얻어가며 위세를 떨칩니다.
버스, 식당, 학교, 교회, 심지어 식수대까지....모든 곳에서 백인과 흑인을 구별합니다. 흑인에게는 불가능한 유권자 조건(문맹 시험을 치르는데 라틴어가 나오고 흑인 세대가 짧아 할아버지가 없는 걸 이용, 할아버지가 인증을 해야한다등 말도 안되는 차별이 흑인에게만...)을 제시하면서 실제적으로 투표권도 박탈됩니다. 어떤 주에서는 95프로 넘던 흑인 투표율이 1프로를 못 넘는 일이 일어납니다. 흑인을 세컨 시티즌 그룹으로 낙인찍는 차별법으로 백인과 흑인은 같이 할 수가 없고 흑인은 위험하고 형편없고 백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법으로 보증한 거죠. 남부에서 제정된 법이지만 미전역에 퍼집니다.

이 차별을 잘 보여준 영화가 그린북이예요. 
60년대 중후반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합니다.(마틴 루터킹의 유명한 I have a dream연설이 1963년)
천재적인 흑인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뉴욕에서 출발하여 남부까지 순회공연을 다녀요.
피츠버그도 들릅니다. 부잣집의 거실에서 멋진 연주를 하는데 공부도 많이 한 이 피아니스트는 품위도 있고 메너도 좋아요. 부랑아가 아닙니다. 그리고 백인들은 그 음악에는, 그가 무대에 있을 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요.
그러나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자 집 밖에 있는 헛간 같은 곳을 가르키지요. 피아니스트의 날렵하게 차려입은 연미복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순회 공연 내내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구요. 그의 운전기사는 백인인데 백인은 갈 수 있는 식당을 고용주인 피아니스트는 못가고 흑인 전용 호텔은 너무나 허름하고.....불과 몇십년 전까지 이런 사회가 미국이었던 거지요.

한국이 50년대의 전쟁 세대와의 소통이 어려운 걸 생각해보면 60년대 중후반까지 이러한 분위기였다면 그 차별의 법이 법적으로 바뀌었다고는 해도 그 뿌리까지 뽑히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흐르고 그 세대가 사라져야 해결될 실마리가 보일거라 보여지는 힘든 일이죠.
겉으로는 차별이 없이 웃고 있는 백인들이 속으로는 흑인을 다른 급의 동물과 인간의 중간쯤으로 생각하고 본다는거죠.
그런 마음이 표현된 것이 아니라면 죠지 플로이드를 8분간 무릎으로 누르고 숨을 못 쉬며 엄마를 부르는 그를 죽든 말든 상관않는 경찰이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흑인은 그들이 보호할 시민이 아닌거.
흑인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경찰도 피해를 많이 입다보니 나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예요.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미국의 역사속에서 흑인들에게 항상 불공정해왔고 경찰이 시민의 지팡이라면 그 시민은 백인들이었던 거죠.

오늘 NPR을 듣는데 모닝쇼의 감독인 흑인 여자를 인터뷰하더라구요. 그녀는  세아들을 갖고 있는데, 아들들이 틴에이저가 되면 교육을 한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손 들으라 하면 바로 손들고 저항하지 말고 너 엄마가 NPR에서 일한다고도 말하고....소수의 흑인들만 이런 불안감 속에 사는게 아니라 흑인 엄마들은 모두 우리 아이가 혹시나 감옥에 가게 되는게아닌가 염려 속에 산다는 거예요. 이 여인은 백인들과 일하고 직장에서는 그들의 보스인데도 이런 걱정을 하며 사는 거죠. 실제로 통계로도 흑인 남자 아이의 1/3 가 감옥에 가는 경험을 한다고 하죠. 물론 잘 못해서도 가겠지만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엮이는 경우도 허다해요. 특히나 그녀의 맏아들은 피부가 더 까맣고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더 불안하다고 하네요.
한국 사람들은 키 큰 아들, 좋아하는데 이 엄마에겐 키 큰 아들이 더 걱정인 거예요. 
이런 정도인지는 몰랐어요. 범죄자 가정에서 자라나는 일부 흑인들이 겪는 어려움인줄 알았는데 경찰과 흑인의 역사는 시작부터 뒤틀려 있었고 흑인들은 누구나 사회적 지위가 있던 없던 이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거.

미국 시티즌이고 미국에서 살다가 죽을거고 아이들도 모두 미국인인데 제가 미국을 너무 몰랐더라구요.
이번 사건으로 흑인과 경찰의 그 오래된 갈등관계를 이제 좀 이해하게 되네요.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다보니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흑인 범죄자가 많다보니 경찰들이 선입견을 갖고 대하고....단순히 이 정도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훨씬 깊고 아픈 차별의 역사가 있었어요. 특히 경찰과 공권력의 차별 행사의 역사가...

이제 정말 바뀌어야할 거 같아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

조금이라도 이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도네이션을 했는데 저는 잘 몰라서 딸의  추천을 받아서 흑인 운동 단체를 정하고 도네이션 했어요.
링크 겁니다.

NAACP Legal Defense and Educational Fund - https://www.naacpldf.org/support/other-ways-to-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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