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일요일

책 읽기 : 아버지의 해방일지

근래에 1등을 찍은 책이라서 리디북스가 아니라종이책으로 사서 읽어보았다.

1등 찍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고 아픈  주제를,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화를 내거나 억울해하지않고, 책임을 물으려고도 않고, 재밌는 문체로 무심한 듯 따뜻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빨치산 출신 부모의 외동딸로 자랐다.
작가 나이가 얼추 나랑 비슷해서 작가의 부모님 시대의.얘기로.나의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를 얼추 짐작할 수 있었는데 작가의 부모님은  고향 구례의 외진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셨다
아픈 이념 분쟁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당했던 아빠였지만 아빠의 주변인들,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사람, 은인, 제법  믿을 만한 사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본인의 흩어진 기억들과 또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조문객들과의.이야기를 통해 조각 그림 맞추듯 알게 되는 그런 즐거리이다.

많은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엄청난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시체를 수습해야할 때 사람들이 아빠를 찾은 얘기. 경찰도, 사고 수습반도 감당을 못하는데, 빨치산 아빠는 수도 없이 많은 전우의 시체들을 보았고 묻었기에 암시렁도 않게 시체를 수습하러 가는데 이날은 마침  모내기 하는 날로 잡아놓은 터였고 주인이 없으면 일꾼들은 설렁설렁 일하기 마련인지라 일꾼들이 떠난 후 볏모를 비워 놓은 구석 모퉁이들을 메꾸는 것은 오롯이 몸도 건강치 않은 엄마 몫이었다고. 

이때 " 농사꾼에게 젤로 중요한 모내기날, 얼굴도 모르는 사람 일에 꼭 가야겠냐"고 엄마가 항의했을때 아빠는 "오죽하면 나에게 왔겠느냐. 당신은 민중의 편애선 혁명가이면서 이런 일에 나몰라라 하먼 되겠느냐?" 고 했다고. 민중 혁명가는 이런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었는데 그 말만 나오면 엄마는 꼬리를 내리고 아무말도 못했는데 그 날도 그러했다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이웃 편, 가난하고 힘 없는 편, 민중 편에 서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자기 일인양 나서는 데 현실주의자인 딸, 작가가 참으로 못마땅하다는 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신념. 격동의 시절에 목숨을 걸고  민중의.편에 서기로 결심했으나 그 신념은 승리하지 못했고 역사가 잘못된 신념이러고 증명함에도 그 정신, 민중 편에 서야한다는 정신 만은 놓치지 않고 모든 의사결정에 결정적  기준으로 삼는 아빠와 그 아빠의 결정에 불만인 듯 하면서도 묵묵히 따르는 엄마, 그리고 그 딸로 태어난 현실주의자 딸, 이 가족의 이야기이다. 실지로 빨치산의 와동딸이었던 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소설.

이 부부를 보며 크리스챤도 종교적 신념으로 살아가는 데 과연 이 부부만큼 진심으로 그 신념대로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부부의 민중편에 서기 신념은 예수님의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람하라" 가르침을 주신걸 생각해보게 한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한자, 병든자, 세상에서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다. 

물론 총과 칼로 싸우고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너무나 멀지만 세월이 지나 민중을 위한 무력 혁명을 꿈꾸었던 지난 세월은  시대 탓으로 돌리며 같은 마을 사람으로, 친구로, 학교선후배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지내며 살아갈 때 정신은 간직한채 신념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이들이 그들이 신봉했던 교리대로 철저히 유물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울림을 준다. 사실 민중을 사랑하는 신념이 정말 자기 것이라면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민들기 실패했다고하여 절망할 필요는 없지 싶다. 민중이 있는 한 신념은 계속될 수 있는 것.

요즘의 시대 정신을 보면 너무나 물질만능에 돈이 우상인 세상이라 이런 신념에 몸바치는 삶에 대해,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고 이런 역사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옷깃을 여미며 생각해보게 된다.

장례식에 모여드는 아빠와의 인연을 은인으로, 감사로, 회한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삶의 진수, 삶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렇게 내려지겠구나 싶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던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진정한 이웃 사랑, 이기적인 자기 사랑과 집착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사람들 마음 안에 의미있는 모습으로 남는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민중을 위한다더니 스스로 우상이 되어 민중을 착취한 븍한의 지도자들 보다는 이런 펑범한 사람들의 삶이 훨씬 큰 울림을 준다. 

유물론적인 그의 신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신념을 살아낸 삶의 방식에는 경의를 표허고 싶다. 스스로를 격하하지 않고, 소외하지도, 소외 되지도 않고, 피해의식에 차 있지도 않고,  분노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았던 삶. 술주정뱅이나 정신병자가 되고 말거 같은 삶의 이력이건만 신념을 붙들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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