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7일 목요일

이기적 유전자 지배 사회와 예수님의 이타성

유전자 지배사회를 읽고 나서 예수님의 이타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기 돠고 예수의 제자된 삶에 대한 가치를 더욱 생각하기 되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이런 책을 읽으면 믿음이 흔들려야 맞는데 신기하기도 반대 효과를 낸다.

책의 뒷부분, 기독교에 대해 나름 해석한 부분에서 오류도 보게 되고 이 책의 저자는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보지는 못했구나 싶다

생존과 번식을 하려는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그렇게나 인간을 이끄는데 단 한 세대의 변이로 ( 책에 의하면 생식 DNA 복제가 잘못되면 수정을 꼼꼼이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고 변이가 생존에 더 유리할 수도 있으니 100%로 하지는 않고 총 3×10^9 개의 뉴클레오티드에 약 300개 오류 발생한다고, 즉  즉 10^7에 대해 1개 발생하는 비율) 예수님같은 분이 갑자기 태어날 수 있겠나 싶어서 예수님의 이타성이 너무나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거다.

창조론에 대해서는 창조과학자들이 성경을 과학책처럼 보고 창세기를 곧이 곧대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지구역사가 6,7천년이라 하는건 아니지 싶다. 모세가 창세기의 저자라고 보니 계시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그 당시 사회의 인식 수준에서 이해하도록 기록한 것이지 과학적으로 이해하라고 하신 것은 아닐거 같다

기독교인인 우종학 교수가 진화론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청소년들에게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 주장하는, 진화가 일어나되 무작위로 일어나느냐 신에의한 디자인과 계획이 있느냐로 무신론과 유신론을 봐야한다는 입장도 떠오른다. 이 입장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냐 안 하냐로 진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계획과 디자인대로  우주는 창조되었고 진화되었다고 본다. 
무작위냐 신이 컨트롤 하느냐를 생각해보면 볼수록 무작위인데 이렇게 질서있고 아름다운 우주와 자구가 존재할수가 있나 싶다.

창세기에서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다고 하는 부분과 하나님 닮은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한 부분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적으로  호모 사피언스가 만들어지고 농경 사회를 이루는 어느 시점, 생존과 번식 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아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어느 시점에서 이기성을 믈리칠 수 있는 '영'이 불어 넣어진 건 아닐까? 

'생기' 는 물질이 아니니 과학적 접근으로  찾아낼 수 없는 영의 영역이 작동하는 부분이 아닐까?

양심이라던가,  이타성이라던가. 하는 것들. 
이런 인간의 특성들은 특별한데 이런 특성들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블어 넣으신 후 갖게 된것은 아닐지.
이기적 유전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이 인간에게는 존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이타성의 표본을 보여주셨고 또 더 중요하게 나의 도덕성이나 나의 힘으로 그 경지에 이룰수 없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이기적 유전자에 져 버린 베드로를 만나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믈으셨는데 아가페적 사랑을 믈으셨지 않나. 이에 베드로는 주미이 아십니다. 라며 친구 간의 우정의 사랑으로 답을 했고. 베드로는 아가페의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알았을까?

이기적 유전자를 극복한 이타적 삶의 추구. 이것이 예수님 제자된 기독교적 가치관의 핵심이구나 싶다.

예수 제자가 된다는 것. 예수님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이 유전자 지배사회를 읽고 나서 더 명확히 정리가 된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  덕분이 아닐까.

오늘날도 자연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태양, 달 등 자연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지배하는  유일신이라는 생각이 그 그 옛날에 툭 튀어나온 것도 놀랍고 ( 이건 저자도 놀랍다고 했다) 완벽한 이타성으로 하나님의 아들, 인간의 유전자가 없는 존재가 오셔서 이기적 유전자로 인한 죄들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신약의 사상도 놀랍다.

세대를 거듭하며 서서히 진화하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세계관이 아니지 않나?

세상 다른 종교는 인간이 진화하며 생각할 수 있 인간적 한계 안에 있는 종교관인것 같다.
이타적 도덕성이 우월하고 멋있고 추구할 바인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종교심과 수련을 통해 이루어가자는 것이니까 점진적이다.
불교의 경우  한 세대로 안되니 윤회를 통해 여러세대에 걸쳐 이루어가고. 
모든 인간 성인들은 그 이타성의 완전한 경지를 이루려하나 실패하고 성철 스님도 내 죄가 저 수미산을 덮는다고 했다고 하지 않나.
인간의 유전자로 극복이 안되는 걸로 이해된다.

그런데 기독교는 점진적이지 않고 인간 본성을 거스르고 혁명적이다.
세상 시초부터 종말까지 기록돠고 많은 저자가 한 주제로 수천년에 걸쳐 기록한 책.
성경은 누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에 의해 계시되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책이다.
인간이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계몽이라 한다던데 계몽으로 나올 수 없는 책이다.,
그걸 유전자 지배사회가 더 명확히 깨닫게 해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