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피카소의 입체주의 처녀작, 아비뇽의 처녀들



아름답지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다섯명의 나부들. 눈은 기울어져 있거나 귀가 변형되어 잇고, 몸통은 작은 면으로 분할되어 있다. 해부학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원근법도 명암법도 파괴되어 공간이 들쑥날쑥하다. 피카고 당시의 미학 개념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그림을 두고 동료들마저 미쳤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러나 절친한 화상 칸바일러는 이 글미의 가능성을 알아봣고 동료 브라크는그의 그림 방식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루 피카소와 브라크는 함께 입체파라 불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전개했고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화상이엇던 칸바일러는 직접 입체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책까지 써서 입체파를 알려 나갔다. 피카소의 명성에서 브라크는 동지이며 아이디어 제공자로서 큰 힘을 보탰고 칸바일라는 최고의 명성으로 가는 카펫을 깔아준 셈이다.
이상은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라는 책에 나와있는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 설명을 옮겨 봤어요.




이 작품은 뉴욕의 모마 미술관에서 찍어 왓어요.
주위의 경악한 모습에 놀란 피카소는 30년동안 세상에 이 그림을 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시절에 피카소와 함께 한 여인은 첫사랑이었던 페르낭드 올리니에. 이들은 동갑내기로 1904년, 23세 일 때 모델과 화가로서 만나게 되는데 올리비에는 쾌활한 성격의 유부녀였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생활을 묘사하던 청색시대에 올리비에를 만난 피카소는 그녀의 사랑과 도움으로 침울한 청색을 벗어나 마침내 입체파,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이 작품을 내놓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생활은 9년만에 끝이 납니다.

수많은 여자를 사랑했다고 하고 그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피카소. 피카소를 사랑했던 여인들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피카소의 예술혼은 여자들의 기를 빼앗아서는 활활 불타올랐나보아요. 그런 그의 인생은 의미를 두고싶지 않지만 그림의 천재성은 대단한거 같이요.
사진의 출현이후 사물의 재생이 아닌 다른 존재감을 찾던 미술계에 같은 소재를 색감과 각도의 변화를 주며 그 때의 인상과 느낌을 표현하려 했던 인상파가 나타났었지요. 인상파의 시도도 창의적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정도의 테두리 안에 있었던 듯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상에 입체감을 주고 선을 단순화하여 추상화시킨 피카소의 출현과 그의 시도들은 입벌어지게 획기적이고 놀라운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림의 세계에 새지평을 연 것이지요.
어떤 그림들은 어린 아이의 장난 같기도 한데 14살에 라파엘로 수준의 그림을 그렸다고하니 실력없는 화가는 아닌게 분명한가봐요.
피카소는 다작을 남긴 작가로도 유명한데요, 회화 1885점, 조각 1228점, 도자기 2280점, 스케치 4659점 3만점에 달하는 판화 작품을 남겨서 근 5만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고 하네요.
또 그 명성에 걸맞게 가장 비싼 그림값을 자랑하지요.

비싸게 팔린 그림 10위 안에 드는
파이프를 든 소년, Garcon a la pipe, 1905 이예요.

duga5.jpg

또 다른 10위권 그림, 도라마르의 초상, Dora Maar au C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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