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8일 수요일

준비성에 대하여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준비성이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준비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미루고 미뤄서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그러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았고 . 
작년엔 택스 처리 미루다가 급행료급 수임료를 내기도 했으니....

어제는 알탕을 끓였는데 알의 질감이 부드럽다며 뭘 다르게 했냐고 얘들이 물었다.
다른 점은 미리 냉동알을 꺼내 놓아 완전 해동된걸 사용했다는 점이라 말해주었더니 우린 평생 엄마가 급하게 끓여서 딱딱한 알탕만 먹었던거네. 그래서 그 맛밖에 몰랐다가 수십년후 이제서야 부드러운 알탕 맛을 알게 된거냐고 그런다.
타당한 말 같아서 함께 웃고 말았는데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항상 깨어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이런 나의 준비성 부족한 부분이 영성 생활에도 알탕의 제맛을 못 낸거처럼 부족함을 가져왔던 거 같다.

현재를 살기에 급급해하고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거는 내세의 삶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에 합당치 않은 거고  그런 의미에서 준비성이라는 품성이 영성생활에서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려주시고 여러모로 되풀이 되풀이하며 경고하시며 준비시키셨던 것처럼 영적인 준비와 앞일에 대한 대비는 너무나 중요하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열처녀의 비유와 종의 비유등에서 한밤중에도 갑자기 들이닥칠 주인을 대비하며 항상 깨어 준비라하고 이르신다.

그러나 준비성이 많다고해도 그 방향이 현세에 머물러서 잘못되어있다면 그런 준비는 안 하니만 못하겠기에 그 또한 조심해야할거 같다. 곡간에 재물을 쌓는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처럼.

현재의 삶에 대한 집착과 준비는 내일을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라고 들에 핀 백합화와 날아가는 새들도 입히시고 먹이시는 이가 하물며 너희들일지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위배된다. 준비하고 대비하는 일이  먹고 살일에 급급한 준비를 말함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이 리더의 자질임을 실감하는 이때에 준비성의 품성이 더욱  와닿는다.

심판의 날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영생을 바라보며 항상 깨어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겠다. 
이참에  준비성 부족한 내 성격도 고쳐서 좀 여유있게 준비하여 일을 처리하고 현재를 사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더불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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