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상 평점은 3스타인데 넷플릭스 고객님들의 영화취향이 아니었을 뿐 다른 곳 평점은 8/10 이 넘는, 상도 받은 괘 괜찮은 작품.
20년간 데스 로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사형수, 데니엘이 DNA 감식으로 꼭 범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나오면서 드라마는 시작이 된다.
그의 죄목은 같은 학교 여학생의 강간 살인.
18살의 나이에 독방에 갖히어 살다가 38살에 세상에 나오게된 데니엘. 그러니까 20년 동안 창문 없는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며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던져지게 되는데...
20년동안 세상은 초고속으로 바뀌어 아날로그 세상은 디지탈로 변신되고 데니엘은 18세의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던 방식에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20년을 성장한 모습이기를 요구받는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이 중년의 아저씨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른스런 인격체를 형성해가야하는 지점을 맞닥드리는 것.
이 드라마는 데니엘이 그 성장을 이루어내고 아픈 과거 속에서 브로큰 되었던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성적 학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드라마이지만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성장의 문제였다.
그리고 손실된 20년을 안고 살아야하는 데니엘의 실존의 문제.
무슨 희망으로 무얼 보며 어떻게 삶을 해석하며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과연 중요한가 ...
회를 거듭해갈수록 데니엘이 감옥에서 격은 일의 혹독함과 사춘기의 첫사랑을 잃고 걷잡을 수 없게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삶의 그 억울함과 그 삶이 끼친 여동생과 아버지, 엄마의 삶의 손실등이 드러나는데그 속에서 18살 같기도 하고 38살 같기도 한 데니엘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데니엘이 붙드는 것은 감옥에서 성적인 학대를 당했던 그의 아픈 인생에서, 그를 상처주고 힘들게 한 사람도 많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감옥 옆방 동료와 벽을 통해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항상 그의 편에 서주었는데, 특히 동생 아멘타는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오빠의 구출에 인생을 바쳤다. 아버지는 충격 가운데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가 남긴 타이어 가게를 재혼남과 스텝썬과 꾸리며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데니엘은 그점이 오히려 가치없는 자신때문에 그들의 삶마저 헛되게 한다는 자책감으로 더 움츠려들던 마음으로 작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에 대해 죄책감 대신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이제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더이상 다운되지 않게 하겠다는 욕망이 생기더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남았고 지금 이 상태로 있기까지 어떤 이유에서든 메니지해 왔다는 것.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망가지고 상처 투성이의 과거와 어찌될지 모르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그래도 자유롭게 주어진 오늘이 있다는 ....
이 말과 겹쳐지는 장면은 그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며 놀람으로 커지던 눈과 표정이었다. 프레즌 모먼트를 즐기는 것. 삶의 원더를 체험해 가는 것.
그가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모습, 총 26회인데 젤 마지막회에서 나오는 대사이므로 드디어 여기에 이를 때 뭔가 장엄함, 존재의 위엄이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은 데니엘은 대화법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인데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왕따가 될거 같은 존재감이어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의 데니엘은 갑자기 위엄을 갖추고 존엄이 있는 존재감으로 바뀌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이제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가치를 알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존재의 존엄성. 더이상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는.....예수님 안에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을 잠시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을 하며 예기치 않는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때에 20년 격리 생활을 한 데니엘을 보자니 그가 걸어온 한스탭 한스탭들, 그 삶의 버든을 내려놓고 풀어가는 그 모습들, 또 주변사람들의 데니엘로 인한 선택과 갈등들, 그 모든 일 속에서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결국에는 회복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들, 그런 것을 보자니 뭐 몇달 코로나로 이러고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님을.....20년 격리생활 데니엘도 삶을 추스리는데, 그 가족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는 실지로 대니엘과 같은 저런 일이 일어났음을 신문에서 보고, 역사상 전염병에 인류가 시달리는 일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고..... 우리는 너무 안락한 시대와 삶을 살아서 코로나 코로나 하면서 와이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담대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책이든 역사서든 영화를 통해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유익이리라....
이 드라마에서 한 부분,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을 떠나 재활센터 같은 곳으로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데니엘이 엄마의 전화를 씹는다. 엄마는 불안해하며 데니엘을 찾아오는데 데니엘이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데 엄마랑 말하면 엄마의 염려와 걱정 눈빛 속에서 근심거리인 자신의 모습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는 것. 미래를 향해 나가야하는데 자꾸 과거를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피하게 된다는 것.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이들이 엄마와의 대화를 피한다면 데니엘과 같은 이유로 인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데니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했지만 데니엘을 믿어주고 '난 너를 알아 너를 믿어 ' 라고 말해주며 진정한 프랜드쉽을 나누었던 감옥의 옆방 친구처럼 데니엘을 회복 시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모습을 통해 데니엘은 미성숙하고 걱정거리 근심거리였던 자신을 자꾸 보게 되는 것. 아이들에게 이런 실수 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에겐 역시나 친구가 중요함이다.
또 인상적이 었던 것은 데니엘의 스텝 브라더 태디의 와이프 토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나오는데 그래서 데니엘을 침례받도록 인도하지만 그녀 또한 브로큰된 존재로서 자신을 회복하고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 안으로 자기를 구겨넣으며 자기를 잃어버리는 과정은 아닌데 그녀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고 꾸며진 행복을 갖고 있다가 깨져버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남편, 태디의 상처들과 트위스트된 인격.
그둘이 회복되고 성장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대충 구겨 넣어서 대충 맞추고 있다가 완전히 부서지고 깨지더니 다시 추스리고 성장해가는 그 과정....
대체로 재밌고 제법 괜찮은 드라마. 데니엘과 태디의 성격이 대조되고 태디의 와이프 토니와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 두 여인의 성격이 대조되는데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의 톡톡 튀는 말투와 개성을 보는재미도 있다. 연기는 주인공 데니엘과 스텝 브라더 태디가 정말 잘 한다.
그의 죄목은 같은 학교 여학생의 강간 살인.
18살의 나이에 독방에 갖히어 살다가 38살에 세상에 나오게된 데니엘. 그러니까 20년 동안 창문 없는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며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던져지게 되는데...
20년동안 세상은 초고속으로 바뀌어 아날로그 세상은 디지탈로 변신되고 데니엘은 18세의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던 방식에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20년을 성장한 모습이기를 요구받는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이 중년의 아저씨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른스런 인격체를 형성해가야하는 지점을 맞닥드리는 것.
이 드라마는 데니엘이 그 성장을 이루어내고 아픈 과거 속에서 브로큰 되었던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성적 학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드라마이지만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성장의 문제였다.
그리고 손실된 20년을 안고 살아야하는 데니엘의 실존의 문제.
무슨 희망으로 무얼 보며 어떻게 삶을 해석하며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과연 중요한가 ...
회를 거듭해갈수록 데니엘이 감옥에서 격은 일의 혹독함과 사춘기의 첫사랑을 잃고 걷잡을 수 없게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삶의 그 억울함과 그 삶이 끼친 여동생과 아버지, 엄마의 삶의 손실등이 드러나는데그 속에서 18살 같기도 하고 38살 같기도 한 데니엘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데니엘이 붙드는 것은 감옥에서 성적인 학대를 당했던 그의 아픈 인생에서, 그를 상처주고 힘들게 한 사람도 많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감옥 옆방 동료와 벽을 통해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항상 그의 편에 서주었는데, 특히 동생 아멘타는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오빠의 구출에 인생을 바쳤다. 아버지는 충격 가운데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가 남긴 타이어 가게를 재혼남과 스텝썬과 꾸리며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데니엘은 그점이 오히려 가치없는 자신때문에 그들의 삶마저 헛되게 한다는 자책감으로 더 움츠려들던 마음으로 작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에 대해 죄책감 대신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이제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더이상 다운되지 않게 하겠다는 욕망이 생기더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남았고 지금 이 상태로 있기까지 어떤 이유에서든 메니지해 왔다는 것.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망가지고 상처 투성이의 과거와 어찌될지 모르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그래도 자유롭게 주어진 오늘이 있다는 ....
이 말과 겹쳐지는 장면은 그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며 놀람으로 커지던 눈과 표정이었다. 프레즌 모먼트를 즐기는 것. 삶의 원더를 체험해 가는 것.
그가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모습, 총 26회인데 젤 마지막회에서 나오는 대사이므로 드디어 여기에 이를 때 뭔가 장엄함, 존재의 위엄이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은 데니엘은 대화법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인데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왕따가 될거 같은 존재감이어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의 데니엘은 갑자기 위엄을 갖추고 존엄이 있는 존재감으로 바뀌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이제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가치를 알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존재의 존엄성. 더이상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는.....예수님 안에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을 잠시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을 하며 예기치 않는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때에 20년 격리 생활을 한 데니엘을 보자니 그가 걸어온 한스탭 한스탭들, 그 삶의 버든을 내려놓고 풀어가는 그 모습들, 또 주변사람들의 데니엘로 인한 선택과 갈등들, 그 모든 일 속에서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결국에는 회복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들, 그런 것을 보자니 뭐 몇달 코로나로 이러고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님을.....20년 격리생활 데니엘도 삶을 추스리는데, 그 가족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는 실지로 대니엘과 같은 저런 일이 일어났음을 신문에서 보고, 역사상 전염병에 인류가 시달리는 일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고..... 우리는 너무 안락한 시대와 삶을 살아서 코로나 코로나 하면서 와이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담대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책이든 역사서든 영화를 통해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유익이리라....
이 드라마에서 한 부분,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을 떠나 재활센터 같은 곳으로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데니엘이 엄마의 전화를 씹는다. 엄마는 불안해하며 데니엘을 찾아오는데 데니엘이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데 엄마랑 말하면 엄마의 염려와 걱정 눈빛 속에서 근심거리인 자신의 모습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는 것. 미래를 향해 나가야하는데 자꾸 과거를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피하게 된다는 것.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이들이 엄마와의 대화를 피한다면 데니엘과 같은 이유로 인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데니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했지만 데니엘을 믿어주고 '난 너를 알아 너를 믿어 ' 라고 말해주며 진정한 프랜드쉽을 나누었던 감옥의 옆방 친구처럼 데니엘을 회복 시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모습을 통해 데니엘은 미성숙하고 걱정거리 근심거리였던 자신을 자꾸 보게 되는 것. 아이들에게 이런 실수 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에겐 역시나 친구가 중요함이다.
또 인상적이 었던 것은 데니엘의 스텝 브라더 태디의 와이프 토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나오는데 그래서 데니엘을 침례받도록 인도하지만 그녀 또한 브로큰된 존재로서 자신을 회복하고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 안으로 자기를 구겨넣으며 자기를 잃어버리는 과정은 아닌데 그녀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고 꾸며진 행복을 갖고 있다가 깨져버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남편, 태디의 상처들과 트위스트된 인격.
그둘이 회복되고 성장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대충 구겨 넣어서 대충 맞추고 있다가 완전히 부서지고 깨지더니 다시 추스리고 성장해가는 그 과정....
대체로 재밌고 제법 괜찮은 드라마. 데니엘과 태디의 성격이 대조되고 태디의 와이프 토니와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 두 여인의 성격이 대조되는데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의 톡톡 튀는 말투와 개성을 보는재미도 있다. 연기는 주인공 데니엘과 스텝 브라더 태디가 정말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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