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선생이여 랍비여 라고 부르는데 그는 메시아, 구원자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베드로의 최후의 만찬에서의 반응과 너무 다릅니다.
영혼을 구하여 영웜한 심판을 면하게 해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팔아버리지는 않았겠지요. 선생이라 생각하고 따르다가 자기와는 맞지 않자 배반합니다.
은돈 30은 구약시대 노예 1명의 몸값 정도였다고 하네요. 스라랴 선지자는 자신의 몸값을 그 정도로 하찮게 여긴다며 한탄했는데 그래서 토기장이에게나 줘버려라 했는데 예수님 몸값이 그렇게 지불되고 나중에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데 쓰입니다. 예언의 성취인데 유다와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하찮게 대하나를 보여주네요. 요즘돈 천만원도 안되는 돈인듯요.(1세겔이 4데나리온)
300데나리온(노동자일년연봉)에 달하는 향유를 부은 여인과 넘 대조가 됩니다.
예수님을 보는 향유 부은 여인과 유다의 시각이 다르릇 예수님의 이 둘에 대한 평가도 다릅니다.
드림/받음.
귀한 향유/헐값의 은
영원한 칭송/ 태어나지 않는게 좋았을 저주
향유 부은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바로 대접해드리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부연설명) 구약과 신약 사이에 400년의 공백이 있는데요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이 바벨론 피르시아 그리이스 로마로 바뀌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혼란한 정세를 틈타 마카비 혁명이 일어나 독립국가를 이룬 적도 있었구요. 유다는 그런 혁명을 꿈꾸었고 그런 맥락으로 예수님을 평가한게 아닌가 봅니다. 또 이 당시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넬 나라를 재건하여 다윗의 영화를 다시 회복시켜줄 것을 기대하고 꿈꾸었구요. 다윗의 별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다르게 약하고 천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죄를 대속하시어 역설적으로 승리하고 구원을 이룹니다.
다윗의 별은 6각이지요. 보통 우리가 그리는 5각 별이랑 모양이 다르지요.
깊은 나눔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우리는 줄 서기를 좋아합니다. 가능하면 있어보이고 강해보이는 무리들과 연대하려고 노력하지요. 허름해 보이는 그곳에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허름해도 줄을 서는 1인이고 싶습니다. 내뒤에 줄이 없다 하여도 실망치 않고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싶어 지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다짐을 해도 해도, 세상 멋진 줄에 서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슆진 않습니다. 선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길 원합니다.[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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