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1일 화요일

책 읽기: 작가 박완서

박완서작가님의 두 자저선적인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연달아 읽었다.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나는 화염병과 최루탄에 얼룩진 대학생활이 한탄스러웠는데 1950년에 대학 일학년이었고 이념 갈등을 겪었던 그 시대의 너무나 솔직하고 생생한 기록인 박완서의 작품을 읽고나니 투정이었구나 싶다.
싱아를 따먹던 시골에서의 어린 유년 시절은  찬란했으나 그 이후 우리나라 근 현대사와 함께했던 박작가님의 성장기는 제대로 성장하기가 어려운, 인간다움을 지니고 살기조차가 어려운 그런 시절이었건만 60이 넘은 나이에 쓴 글이라 그러할까? 어떠한 주장이나 피해의식 없이 그 어려운 시절을 그저 이겨내며 버텨온것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헤집으면서도 제삼자이기나 하듯 감정과입을 보이지 않고 자신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묘사하고 있어서 더 생생한 증언이었다. 
어디 박작가님만 그러할까? 박작가님은 1931년 생인데도 신여성을 만드려는 엄마의 극성스러움때문에 학문과 소양을 갖추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알았던지라  쓰는 작업으로 쏟아내며 그 험한 세월의 경험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빚어낼 줄 알았던 것이고 우리 부모 세대, 모두들 그런 모진 생을 온 몸으로 겪었을 터이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싸매며 새살을 돋게 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무방비 상태로 세월을 견디고 때로 독소에 자신을 상해가며 그렇게 살아오셨을 터.(부모 세대를 이해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서 마침 한국 방문시 읽게 되어 넘 감사했다.)
어떤 책에서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 그 작가 책을 더 찾아 읽으며 그 삶을 알아가는데 박작가님에 대해서 그 전에 갖고 있던 생각은 차도녀를 지향하는 듯한 중산층의 심리 묘사가 넘  뛰어나서 그런 성품을 지니신 분 정도일거라 생각했다가 이 자전 소설들로 완전히 깨어졌고 더 알고 싶어졌다. 
다른 책은 당장 구할 수 없고 인터뷰 기사를 여기 저기 찾아보고 있는데 딸넷을 낳고 마지막으로 얻은 아들을 그가 30대일때 잃고 하나님께 무슨 죄로 이런 벌을 주시냐며 절규하며 얻은 답이 가족, 친척, 친구가 아닌 남에게는, 소위 이웃에게는 물질도 감정도 주지 않고 철저히 무관심했던 것이 죄라는 깨달음이었다는 글을 읽으며 어느정도 내가 생각한 점도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도녀의 이미지, 우리 여성들이  한때 모두 막연하게 꿈꾸던 이미지가 아니였던가 싶고...취향이라는 걸 갖출 여유를 갖고 세련된 모습이 되어  자기 세계를 가지면서 둘레를 에워싸는 적당한 찬미와  깔끔한 감정의 교류 속에 사는 것. 박완서작가님의 엄마에게는 딸을 신여성을 만들겠다는 꿈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그런 꿈. 자신이 살지 못했으면 자식에게라도 살게 해주고 싶은 , 사실 허상일터인 그런 꿈을 꾸며, 난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데 가정사든 사회상이든 삶의 굴곡이 그걸 가져다주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나.
그걸 하나님이 여지없이 깨버리시고 더 크게 품 고 더 큰 꿈을 가지고 관계의 지경을 넓히라고 허무르신 사건이 서울의대 마취과 레지던트였던 아들을 데려가신 것이 아닐까. 이 두권의 책도 그 이후에 태어났고....
그리고 why me? 에서 why not me? 의 깨달음에 대한 고백도 있었는데 우연히 어린 수녀의 수다를 엿듣고 아들 잃은 고통의 구원의 실마리를 보셨다고 하셨다.  그 어린 수녀는 남동생에게 불만 가득했었는데 어느날 이런 남동생을 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닐텐데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불만이 사라지더라는 얘기를 친구와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카톨릭 신자였던 작가의  눈을 더  크게 뜨게하고 종교적인 깨달음의 지경을 넓히고 박작가님의 어머니의 삶의 방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도약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들을 잃고 기도원으로 들어가 머무는데 그 때 만난 한 수녀님이 환자 병구환을 하면서 똥오줌을 받아 나오는데 꽃병이라도 들고 나오는 듯 환한 표정이라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을 읽으며 작가님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수 있을거 같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땐 미국에 살게 된 나는 봉사와 기부가 보통사람에게도 당연히 여겨지는 미국 문화에 일찍 노출되었던 것아 축목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했다.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언제나 자기 몫을 챙기는 생존 자체가  최우선이였던 한국정서를 일찍 벗어나 시각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인터뷰에서 관심있게 본 것은 박작가님의 큰딸이 본 박작가님은 자유와 균형감각을 중시했다고 하는 부분. 이념이나 사상에 의해 개인의 소중한 삶의 영역을 빼앗겼던 충격. 이념 갈등 속 오빠를 잃은 것으로 충분히 아프게 경험하셨으니...
이념 뿐 아니라 심지어 지나치게 삶의 목표에 매진한다던가 너무 성실하다던가 이런 것조차 그저  여가시간을 갖고 쉴 시간을 갖는 소소한 것이 더 중요한 삶의 알맹이인데 그런 것을 빼앗아가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얽매는 경도된  삶의 지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의 나와 통하는 느낌.
박완서, 우리의 어머니 같은 작가님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싶다. 특히 60세 이후의 작품들을...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이웃사랑에 대한 깨달음응 얻고 남긴 글을 옮겨본다. 이런 고백이 있었기이 그리도 솔직하게 자전적 소설을 쓸 수 있었던거 아닐까?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 · ·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내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내게 족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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