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유대 민족 모두 죽게 되는 위기에서 유대 민족을 구해내는 스토리.
에스더서는 성경 중 얼마 안되는 여성이 주인공인듯한 스토리이지만 알고보면 그녀의 후견인 같은 사촌 모르드게가 큰 프레임을 짜고 에스더는 그 안에서 시키는대로 하고 ( 또 다른 성경, 룻기는 나오미와 룻이 합작하여 보아스를 사로 잡는데 말이죠) 미모라는 '외모' 가 또 큰 역할을 하는지라 왠지 쫌 불편한 느낌이 있었는데요.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보다는 내면에 있다고 믿는지라, 왠지 외모의 미모에 대한 극찬양이 들어가 있는 듯하여 불편했어요. 특히 여성의 미모는 남자에 의해 인생이 확확 바뀌어 남자 맘에 들어야하는 여성들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 여자만 정말 선천적인 것이 전부고 노력한다고 별 향상이 없을 뿐 아니라 지적 능력이나 공감능력, 지도력처럼 시간을 갖고 알게 되고 노력하면서 향상시켜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첫눈에 펑가되는 그런 걸로 인생이 좌지우지 판단 받아야하나. 이런 불편함과 불만이 있었던거죠.
그리고 에스더서를 보면서 그런 불편함이 더 커지는 측면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에스더서의 이해라는 주중 성경공부를 하면서 좀 깊이 묵상하면서 보면서 이런 부분을 다시 보게 되네요.
먼저 인간은 남자든 여자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구나 하는걸 느꼈고 그걸 받아들이기로...
마침 이즈음에 '세상이 탐하는 보석의 역사' 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쓴 글을 폐북에서 보았는데요(김미옥선생님글) 반짝반짝하는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인간의 욕망의 역사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있고 보석 사랑은 남자들도 만만치 않아서 로마 시대의 우정을 나누는 반지는 약혼반지보다 화려했다고... 과학적으로도 인간의 뇌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판단력을 상실한다고 증명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성경은 사라, 리브가, 라헬등 여성의 미모 뿐아니라 사울, 다윗, 압살롬등 남성들의 미모에 대해서도 서술이 돠고 사람들이 얼마나 매료되는가도 말해 주었었지요. 즉 아름다움, 그것도 완벽 대칭이 주는 완전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내재하고 인정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외적인 아름다움에 눈이 머는 존재라는 것도 인정해야겠다로 현실 인정 모드로...
외모 하나로 성공하고 인생이 달라지면 왠지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대충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예술등 모든 아름다움에대한 추구와 맞물려 있는 이걸 내가 넘 심하게 부인하려해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에스더서를 보면서 더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그 외모를 덧입히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더 중요한 깨달음이고 그것은 내면의 아름다움과 맞물려있다는 것.
에스더가 욍비가 된 후 수년이 지난 후에 유대인 말살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즉 한창 이쁠 나이에서 몇년 지났고 왕은 새로운 꽃다운 여자들에게 빠져있을 때에, 한달이나 왕이 에스더를 부른 적이 없는 시점이었던 거죠.
그 때에 에스더는 '너가 왕후가 된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어찌 아느냐, 너가 아니더라도 유대민족은 하나님이 살리실건데 너가 왕 앞에 나아가 도움을 청할지 말지 결정해라' 라는 모르드게의 도전에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오로 삼일을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가게 되는데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타나는.것은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것.( 끊임없이 블편하긴 합니다. 뭐 왕이 항상 신변 의협을 느끼고 측근일수록 더 조심해야하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왕비의 권한이 바닥이네요)그러나 왕은 죽이기는 커녕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나라 절반이라도 에스더에게 주겠다며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하라 하지요.
이 상황. 생각할수록 일어나기 힘든 일.
스윗 16이 젤 예쁠 때인데 몇년 지나면 피부부터 빛을 잃어요. 대학 졸업반쯤 되면 한창 때 피크를 지난 느낌이 있어요. 거기다가 왕은 에스더를 이미 알고 있었고 왕후였고...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처음보는 여자라는 농담이 있듯이 새로움은 아름다움에 더하여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욕망이 덧입려지는건데요.
이 시점애서 에스더가 뭔가 다르고 새로와 보이는 매력이 있었을거 같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네요.
그 새로움은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풀어내고 정리하고 결단한 에스더에게 하나님께서 덧 입혀주신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내면의 변화가 외모의 변화로 흘러나오고...
또 아름다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고...
그렇게 에스더의 미모는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며칠동안 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지속되었고....
한번 결심을 굳힌 에스더는 더이상 사촌의 후견 아래 있는 어자아이가 아니라 자기 인생과 민족의 생사를 책임지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유대인에게 자기와 같이 삼일동안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자고 명을 내립니다. 또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왕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잔치를 열고 적, 하만을 그 연회의 자리에 초대합니다. 두번째 잔치에서 아버지뻘되는 연배의 최고의 권력자 하만과 왕 앞애서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에스더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하만의 못된 민족말살 계획을 폭로합니다. 삼자대면 상태에서 폭로,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지혜롭게 말을 던지고 왕의 마음에 호소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왕은 지속적으로 에스더의 미모에 빠져있구요. 왕 앞에 나타난 날의 그 날 한 순간의 조명빨이나 분위기 탓이었으면 그 다음 날이면 뽀삽이 드러나듯 깨질텐데 그보다는 성숙하고 깊은, 죽음마저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는 당당함과 처연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에스더는 극적인 반전으로 모르드게와 그의 민족을 죽이려던 하만의 음모를 밝히고 민족을 구합니다.
이 극적인 사건을 기리기 위해 부림절이라는 명절이 생겼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중요 명절 중 하나라고 하지요. 에스더의 미모는 민족을 구하는 미모였던 것.
미모, 아름다움이 지적인것, 정서적인거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 궁극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 있을 때 사람은 가장 절정으로 아름다운게 아닐까합니다.
그나저나 가을,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절로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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