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7일 목요일

영사관 이용

피츠버그는 필라델피아 출장소를 이용해야하는 관할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가족관계증명서등을  떼는 거는 워싱턴 영사관에서 신청하여 우편배송을 해달라고 하니 해주더라구요.  워싱턴 디씨에 갈 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신청하려하니 해주십사 부탁드렸더니 해주더라구요. 

워싱턴 영사관은 예약제로만 운영이 되는데 방문자 파킹 공간이 있어요.

모르고 주변 헤매다가 겨우 파킹했는데 가보니 비지터 파킹이 비어 있었어요.

또 대사관으로 가면 안되니 영사관으로 주소 잘 확인해야하구요.


2025년 8월 5일 화요일

마운트 워싱턴 위 전망좋은 OTARU Japanese 레스토랑 오타루 일본 식당

 





제가 간 곳은 아니고 식구 중 한명이 가보고 사진 보내주고 평도 얘기하길레 올립니다. 마운트 워싱턴에 있는 스시집. 전망이 좋은 곳이고 좋아하는 스시를 팔기에 함 가본 곳이라고요. 스시 디스틀레이는 너무 이쁘죠? 한국이나 뉴욕에서 팔거 같은 분위기로 예쁘게 담아주는데 가격이 비싸고 가격 대비 아주 뛰어난 맛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넘 비싸다고요. 그래도 특별한 날에는 가볼만 한거 같아요. 디스플레이가 이뻐서 기분 전환 될듯요.


2025년 8월 4일 월요일

책읽기 :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



 여행의 이유를 재밌게 읽었기에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에세이를 한국의 서점에서 골라 잡았다.

알쓸신잡에서 그의 해박한 다방면의 지식은 유시민 작가조차도 경이롭게 한 지라 김영하 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되고 만나게 될거 같아 골라잡은 책.

자전적인 에세이집인데 전체적인 느낌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자전적 글이다보니 자신이 있게한 아버지 어머니를 회상함으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김영하 작가가 나보다 다섯살 아래이다 보니 비슷한 듯하면서도 좀 다른 세대를 산 듯한데 엄마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글쎄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의 사유의 한계같은 것이 좀 느꺄졌달까, 좀 그랬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를 보면 더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부재한 느낌.

아내와의 만남이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었는데 자신의 삶의 궤적에서 어찌하여 오늘날의 작가로서의 삶이 탄생했을까에 대해 의문하며 풀어가는 그 과정에 아내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가 박학다식한 이유를 알거 같았는데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것들 끊임없이 이것저것 해보는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그날 한 일을 쭉 적어보았는데  30가지 정도의 일을 했더란다. 책읽고 글 쓰고 커피 내리고 요리하고 산책하고 뭐 이런식으로 30가지를 했다는 거. 나도 함 써보았는데 아무리 바쁘게 산 거 같은 날도 10가지를 조금 넘을 뿐. 30가지는 대단한 숫자다. 책도 여러권을 동시에 읽는다고. 초등학교 때도 질문이 많았던 학생으로 선생님이 기억하고. 그런데 그렇다고 이것 저것 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시작한 것은 띄엄띄엄이라도 꾸준히 10년 이상 해나간다고. 그러면  어느 정도 잘하게 된다고. ( 내가 하다 만 온갖 것들이 떠오른다. 이 끈기 대단하다. 하나를 파고드는 집중력과는 또 다른 건데 꾸준함이 참 중요하구나. 나를 돌아보니 좋아하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30년 이상 꾸준히 해온 것은 요리. 내가 할 줄 아는 게 집밥 해주는 거 밖에 없네 했었는데 결국 오래 꾸준히 한 것이 나의 것이 되는구나. 난 지금 어린 시절 내가 젤 오래해왔던 것, 독서를 다시  땡기고 있다. 앞으로 10년 하면 뭔가 내 것이 만들어질까? 성경통독, 블로그 ,10년이상 한 듯.)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를 마치기까지 6번을 이사를 다닌데다가 생일이 늦는데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었기에 친구 사귀귀가  순조롭지않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고 상상을 즐겨하고 이야기를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소설을 쓰기시작한 것은 중2떄부터였다고. 

경제학 대학원까지 갔다가 중퇴했으니 또 ROTC를 하다가 종료 한달을 앞두고 관두기도 했으니, 그 시대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바람,  안정된 돈벌이가 보장된 직업이라는 우상에 맞춰 삶을 살아보려다가 급기야는 집어던지는 일을 했던 듯하다. 

글에서 그 시대의 시골 살다가 상경한 청년들이 가졌던 서울 문명과 교양있는 듯한 문화생활에 대한 기죽음을 표현했던데 비슷한 시대 사람으로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작가라면 청년 시절부터 좀더 깊은 성찰과 인생에 대한 고뇌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했다. 유능한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니 미래 유명 작가의 꿈으로서는 넘 평범한 보통의 대학생 같다는 느낌. 작가는 모름지기 젊은 시절에도 고뇌하고 인생의 무게를 풀어나가며 해답을 찾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꼭 무거워야하는 것은 아니구나 

몇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조각조각 기억에 남는데, 사람은 변한다고 얘기한다. 작가는 라면 박스를 쟁여놓고 먹었었는데 이젠 제법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고, 담배를 중독이다시피 피워댔는데 이젠 절대 안 피운단다. 또 술도 제법 마셨는데 이젠 비행기 타면 공짜로 주는 술도 거절한다고. 요가를 배우기 시작하여 이젠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서기도 제법한다고. 참 놀라운 변화들인데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우고 변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루어가고 바뀌어간 거 같다.

한 때 작가는 영화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읽은 책에서 잘 쓴 시나리오는 등장인물이 결말에서 시작과 달라져야하고 '도발적 사건'을 통한 '의미있는 변화'가 있어야하는 데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내야한다'고 했단다. 우린 그런 영화를 보며 감동하는데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다고.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인간은 잘 안 변한다로 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특히 성격적인 부분에서 MBTI 같은거 잘 안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긴 인생의 경로를 놓고 보면 10년 20년의 세월이 쌓이다보면 바뀔 수 있고, 바뀐다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되더라. 하나님 믿고 바뀌었다는 고백은 하면서도 안 바뀌는 면에 또 무게를 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

또 인상 깊었던 것은 "조용한 절망' 에 갖혀살지 않았다고 마지막 부분에서 엄마, 아버지, 외숙모의 삶을 평가내린 것. 그렇다고 그들이 대단한 혁명가들은 아니었고,   그럴 평가를 할만치 남다르지도 않았던 듯하다. 아버지는 국졸 이후 취업하였는데  고객이었던 여군들의 귀염을 받으며 그들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직업군인이 되었고 퇴직 후 에는 양봉과 농업에 재미를 붙여 제법 생활을 감당해 나갔고.

결혼 전 여군이었던, 그 시절 흔치 않았던 직업을 가졌던 도시녀 엄마는 결혼 후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시골에 살떄도 기회가 되면 어린 작가를 데리고 서울로 와서는 명동을 누비고 다녔고 뙤직 후의 시골 생활에서 아빠를 끌어올려 은행 예비군 대대장으로 취직시켰다고. 그러나 사교성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술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고. 

작가의 엄마와 아버지는 각자 '조용한 절망'에 갖히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 듯하다. (이부분에서 드는 생각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남을 볼 줄 알고 조화를 이루어낼 줄 아는 것이 참 부부의 모습인데 이 부분이 정말 어렵다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보며 자기 중심적인 부분을 성찰하지 않으면 이 조화를 이루어내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진심 들었다)

외숙모는 특별하셨다. 여자는 고둥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에 반발하여 충주에서 평양까지 공부하겠다고 홀로 왔다가 아버지에게 잡혀 다시 돌아가서는 이번에는 수녀가 되겠다고 하다가 신학생이던 사람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살았다고 한다.  100세가 넘어까지 아파트 노인회장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70대 어린 노인회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지는 않겠다며 반란을 제압을 하고 나서 스스로 사퇴하셨다는  외숙모. 

대단하던 그렇지 않던, 나름 주어진 삶에서 최선의 선택들을 하며 살았던 가족들의 삶이라고 작가는 평가하는 듯하다. 

작가는 이책에 인생 사용법이라는 호기로운 제목을 부쳤다가 제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작가의 삶도 조용한 절망 속에 불안감에 시달리며 심한 우울증 증상을 보인 시절도 있었으나 작가가 되었고, 이런 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며, 그림도 그리고 요가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여행도 하며, 또 세계 여기 저기에서 살아보며 단 한번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삶에 무슨 매뉴얼이 있을까?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사용법이? 나의 조용한 절망은 무엇이었으며 지금 어찌 돌파구를 마련하며 가고 있는가?  이런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이책을 마쳤다. 

아 그리고 작가는 엄마가 처녀시절 여군이었다는 사실을 엄마의 장례식에서나 알게 되고, 외숙모의 스토리도 장례식에서 알게 되면서 우리가 타인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뿌연 안개속에서 형체를 잡아가는 듯하다고 했는데. 그 부분은 나의 삶을 반추해도 그런 듯하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고 나의 부모의 삶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바뀌므로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10년 후에는 분명 나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은,

트레이드밀이 죄수들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저절로 돌아가는 기꼐 안에서 돌려야하나 뭔가 이뤄지는 것은 없는 헛수고를 몇시간씩 하게 하면서 체벌하는 목적으로 고안된 기꼐였다는 것. 그러다가 아마도 곡식울 빻게 했을 거라고.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긴 했었는데 그런거 구나 했다.

또 필라테스는 포로수용소의 좁은 공간에서 몸의 근육을 키우고 건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쳤던 라스트 네임이 필라테스인 사람에게서 유래한 운동이라고 한다.

또 운동 강사, 전문가들은 고객이 그 전날 튀김을 먹었다는 걸 걸음걸이만 보고도 안다고. 튀김은 관절 염증을 일으키므로 걷는 동작이 바뀐다는 것. 튀김 정말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 서울 : 수서에 있는 이지미피부과

 


지인 소개로 이용한 피부과예요.

미용 목적이 아닌 일반 피부과 손님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찾는 소박한 피부과인데요 가격이 과하지 않고 효과는 좋은 편이라고 소개 받아서 방문했어요.

사마귀 2개와 눈거풀에 작은 좁쌀 같이 나온 것들 다수, 점들 다 포함하여 48만원이었어요.

그런 메이저 문제가 없는 경우는 38만원이고요.

일주일 지나니 딱지가 떨어지더라구요. 그 전에는 외출에 지장은 없지만 딱지가 다다닥 얼굴에 픝뿌려져 있으니 좀 꺼려지구요.

수미 케이커리의 빙수


 더운 여름이면 먹고 싶어지는 빙수.

수미 케이커리에서 먹었어요.

스트립디스트릭트의 푸드코트에서 먹었어요.

맛나고 시원했어요.

망고 빙수를 먹고 싶었으나 망고 재고가 부족하여 망고 많이 들어간 과일 빙수로 먹었네요.

2025년 7월 31일 목요일

새단장한 카페, Centred

 













분위기 넘 좋지 않나요?

커피맛도 좋아요. 콜드 블루 찐하고 라떼 담아주는 잔도 뗴뻐요.

허버스크 차는 그냥 티백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콜드 블루 하듯이 제대로 만든다 하네요.

센트르 에뷰느, 파네라 브래드 있는 그 근처에 있어요.

2025년 7월 30일 수요일

월맛의 부케 케잌

 


부케 모양의 꽃 케잌이예요.

위의 꽃은 사실 컵케잌이 모여 있는 거예요. 재밌는 디자인 인데요, 월맛에서 주문하였고 가격은 20불 이예요. 맛은 드레싱이 아주 많은 컵케잌이라 칼로리 많을 듯하여 눈요기 용으로 준비한 케잌이예요. 예뻐요. 

The Thinking Machine : 앤비디아 설립자, 젠슨황의 전기

 앤비디아의 창시자인 젠슨황. 앤비디아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버금가는 자산을 가진 회사가 되었는데, 젠슨황은 1963년, 타이완에서 태어났고 10살에 미국으로 왔다.

그 때 당시 미국과 타이완의 경제 차이는 엄청난데 젠슨의 아버지가 미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자식들은 미국에서 자라게 하겠다는 꿈을 갖고 아들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미들 차일드였던 젠슨황은 우선 삼촌집에 보내졌고 삼촌은 그를 형과 함께 캔터키에 있는 침례 교회 학교로 보냈는데 대학을 준비해주는 학교로 알고 보낸 그 곳은 사실은  문제아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고한다. 불리 당하고 놀림받고 칼잡이 룸메와 함께 했던 1년의 학교생활이었건만 황에게는 어드벤쳐같은 것이었고 그는 그 학교에 보내진 것은 자기 인생 중 일어난 최고의 일중에 하나라고 회고했다. 17살인 룸메는 황에게서 읽고 쓰기를 배웠고 룸메는 황의 싸움실력을 키워주고 보호해주었다. 이때 황은 매일 100번의 팔굽혀펴기를 했었다고. 

1년 후 황의 부모는 미국에 직장을 얻어 오레곤으로 왔고 황은 도시 외곽의 보통의 공립 학교를 다니게 된다. 

데니스 레스토랑에서 고등학교때 일했는데  거기서 그는 러쉬 아워의 레스토랑에서 정신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황을 핸들하는가를 배웠다고 한다. 그가 좋아했던 메뉴는 슈퍼 버드 샌드위치, 치킨 프라이드 스테이크. 처음 창업에 대해 두 동업자와 상의하며 창업 플랜을 세울 때도 집에서 가까운 데니스 레스토랑에서 만났다고 하고 그 장소는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그 주소는 2484 Berryessa Road in San Jose

황의  탁구 실력은  전국구급 이고 (탁구장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면서 빠르게 배워나갔다고) 학업 성적도 우수했지만 오레곤 주립 대학에 진학했고 컴터에 관심이 있었지만 컴터공학과가 없어서  전기공학을 공부했고 거기서 미래 와이프를 만나게 된다. 

그는 하드웨어인 칩을 개발했는데 paralled computing 이라는 방법, 당시에는 성공확률 0 라고 여겨졌던 방법을 성공시키며 게임 산업에서 몇백배의 규모로 몸집을 키우는 성장을 하게된다. 또 최근 10년에는 오픈 AI, 딥 러닝 트레이닝 칩으로 몇천배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그의 타임라인을 정리해보면

1963 타이완에서 출생

1973 미국으로 옴

1980 오레곤 주립 대학 입학, 전기공학과

1984 AMD 회사에 입사, 로리와 약혼 

1985 LSI Logic 으로 이직, 컴터 디자인 고객을 위해 제품개발
1988 로리와 결혼, 첫집 구입 4배드룸 이층집

1989 Sun GX 3차원 그래픽 성공으로 주목을 받음

1990 첫째 아들 스팬서가 태어남

1991 둘째인 딸 매디슨이 태어남. 아내 로리는 육아를 위해 일을 관둠

1992 스탠포드에서 석사를 공부한지 8년만에 학위를 받음. LSI에서 알게 된 말라쵸프스키로 부터 창업 제안을 받음 그들은 Sun 에서 황의 포텐셜을 보았고 프리엠과 함께 셋이서 데니스 레스토랑에서 창업을 논의.. 경제적으로 안정된 잡을 관두고 아내도 육아를 위해 일하지 않는 상황에서 집 모게지를 갚아야하는 등의 상황 속에서 창업을 결정. Nvidia 는 라틴어로 invidia 가 envy 라는 뜻인데 거기서 따옴. N 은     New 에서 오고 

1994 회사 오피스를 마련

1995 프리엠이 고안한 NV1 그래픽 가속 칩이 마켓에 나왔고 성공을 거두는 듯 했으나 삼각형을 사용하던 기존방식에서 사각형으로 바꾼 기법은 결점을 드러냈고 1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성장하다가 몇달 안에 실패를 맞게 됨 전문가와의 컨설팅 후 스태프를 줄이고 엔지니어 35명만 남김

1996 데이비드 커크가 고용되고 이 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브 회사로 몰락할 위기였는데 Siga에 NV2를 1밀리언에 판 돈을 에뮬레이터를 이용, 프로토타잎을 생략하는 방법에 혼신을 기울임

1997 커크의 활약으로 성공하여 NV3 를 마켓에 내보냄. 속도를 배가 시키고 리얼 타임 상호작용하는 비디오가 가능해진 상품을 만든 것. 브랜드 네임은 Riva 128. 

창업자였던 프리엠은 파워를 잃어버리고 커크가 부상하면서 리더의 구조가 바뀌게 됨. 커트는 천명을 수하에 두는 지도적 위치에 오르는 반변 프리엠은 수하 직원이 4명이 고작인 상황으로 바뀌게 된다.NV1의 실패가 치명적이었고 엔지니어였지 사람들을 다룰 줄 몰랐다. 프리엠은 특이했는데 스팸 메일을 방지한다고 이메일 주소를 각 사람마다 다르게 수백가지를 만드는 식이었다고. 커트는 황과 잘 통하는 편이었는데 그가 한말, Those people who say that winning doesn't matter? They never won anything.

대성공을 거두고 위기 극복하는 이때에 수익을 내고 있어도 황은 직원들에게 30일 안에 우린 망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하며 긴장 속에 일하도록 했다고. Desperation , not inspiration was mother of victory.

1998 황과 커크는 스타트업 그래픽칩 개발 회사 중 5년 안에 탑3만 생존하고 넘버1회사가 시장을 컨트롤할 거라 예상하고 엔지이너들을 영입하고 탑 1이 되기위해 힘을 다하기로 한다. 황의 회사는 이제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회사가 아니라 비즈니스 맨이 필요한 상황인데 황은 엄청나게 많은 비즈니스 관련 책을 읽고 직원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출 받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성장을 거듭한다. 황 회사가 디자인한 칩은 타이완의 칩 만드는 회사, TSMC가 담당했는데 회장인 모리스 챙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황은 타이완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방문할 기회를 얻고 황은 그 때 이후 타이완을 방문할 때마다 야시장을 즐겨 찾는다고.

1998 6월에     Riva TNT 가 나온다. TNT는 twin texels를 뜻하고 parallel 기법을 이용하여 더 많은 용량을 필요로하는 그래픽 게임 시장에 출시된다. 이것을 주도한 사람은 죤 카멕. 이 작은 칩이 만불짜리 컴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나은 기능을 제공한다. 비볼디는 마케팅을 담당하여TNT를 이용하여 앤비디아를 브랜드화한다. 이 작은 칩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를 선전해 주듯, 7년 연속 소득 1위였던 프로 게이머,조나단 웬델은 TNT2 를 업그레이드 하며 사용했고 1999년에는 거의 모든 PC에서 그래픽 엑셀레이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회사는 급성장하게 된다. 또 경쟁사였던 3dfx 가 소송에 휘말리게 되며 위기를 맞자 맞고소를 하면서 위기를 가속화시키며 다소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3dfx의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1명당 1밀리언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보고 120명을 영입한다. 그 중한명인 갈릭은 두 회사를 비교하며 3dfx는 체계적이고 깨끗하고 니트한 회사이지만 클린하다 망했고 앤비디아는 암세포처럼 빠르게 숏컷을 택하면서 반응하며 뒤죽박죽인 듯한데 이상하게 생존하고 이때 발생하는 약간의 오류는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흔 같은 것이더라 라고 말한다. 

일하는 환경은 6개월에 한번씩 새상품을 만들어내는 구조라서 항상 데드라인에 쫒기고 일하고 또 일해라 라는 분위기이고 황은 관료적으로 일이 지체되는 것이 있다면 깨부수고 다니면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한다. 게임회사의 느슨한 분위기는 일체없고 복장도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지 않는 분위기. 또 뽑을때 최선을 다해 선별해서 되도록이면 해고하지 않자는 모토라 인터뷰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고 어렵다고 한다. (샘플 인터뷰 질문들을 보니 정말 똑똑하거나 혁신적이어야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같음. 모르는 걸 아는 체하면 바로 탈락이고 답이 없는 질문에 모른다 해도 탈락이라고. 지금까지 인터뷰하며 답한 거에서 유추하여 뭔가 이해가되는 답을 만들어내야한다고) 황의 형제들을 단지 형제라는 이유로 취업시켜주지도 않았다. 막내동생은 인텔에 30년을 일했다. 큰 형에게는 직업대신 큰 집을 사주었다.

2000 황은 그의 전 보쓰였던 타미 리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2001 GPU, advanced computermodeling and digital animation 라인인 Quadro 의 매출은 탑을 겨루는 위치로 올려놓았는데 칩 생산 산업은 패션 산업처럼 빨리 빨리 바뀌어 가므로 마치 포카 토너먼트처럼 거의 도박에 가깝게 신상품을 내놓고 승를에 배팅을 하며  경쟁을 한다.programmable shades 를 넣는 것은 모험적인 시도였는데 큰 성공을 거두고 S&P 스탁마켓 인덱스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여러번의 부침이 있었다. 2002년에는  스탁 마켓에서 90퍼센트의 하강이 일어나기도하고 아카운팅 스캔들로 CFO를 내보내는 일도 있었다.

2004~2006 창업자 중 하나인 커티스 프리엠이 마침내 퇴사하고 스탁을 정리한다. 또게임 마켓이 성장함에 따라 앤비디아의 스탁도 회복이 되어가서 1000명의 직원을 두는 회사로 성장한다.

2005 수퍼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스탠포트 그레주에셋 학생이었던 벅은 컴터그래픽칩을 이용하여 수학적인 계산을 할 수 있는 영역을 새로이 발견하는데 황은 이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를 고용하고 빌 달리하는 스탠포드 컴사 교수를 컨설턴트로 하여 엄청나게 빨리 수학적, 통계학적 계산을 해내고 데이타를 분석하는 수퍼컴터를 만드는 CUDA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게 된다.  이즈음 앤비디아의 직원은 2000명이 되고 이 중 1200명이 resech & development 로 일하게 된다. 이중 큰 공헌자는 Nickolls. 그래픽 카드를 수퍼컴퓨터로 바뀌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시작되고 사이언티스트들, 리서쳐들, 월가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을 고객으로 타게팅하게 된다. 

2006 후반에 첫제품이 만들어졌으나 2007에는 고작 1/10000 의 비디오게임 하드웨어 소유자만이 쿠다제품을 다운로드할 뿐이었다. 이즈음 황의 관심이 쿠다팀에 몰두되어있는 동안 본연의 사업인 비디오게임 칩 상품은 하자로 인해 리펀을 해주어야하는 등 회사는 적자를 내게 되는 기간이 있었다. 게다가 2011년에는 Nickolls의 멜라노마 암이 재발하면서 죽는 일이 일어난다. 그는 마직막 호흡을 갈아넣어 슈퍼컴터가 가져올 미래를 바라보며 계발에 몰두했던 엔지니어였다. 

그러나 2012년까지도 이 소프크웨어의 다운로드는 이익을 가져오지 않았고 이미 포화되어 감소되는 상황인 듯보였다. 주주들은 황의 CUDA에 대한 투자를 믿지 못하게 되고 CEO 자리에서 내쫒기는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2012 토론토대학의 대학원생인 Alex Krizhevsky는 ImageNet's compitition 에서 CUDA 를 이용하여 neural network 가 수많은 이미지 데이타를 스스로 학습하여 이미지를 선별해내도록 훈련시켜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황이 바라던 고객의 포문을 열게될 가능성을 보게 된다.Krizhevsky 가 사용한 앤비디아의 GPU는 인텔의 CPU 보다 수백배가 빠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계가 사람처럼 볼 수 있게 된 SuperVisiion network 는 컴터공학계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토론토 대학의Krizhevsky의 지도교수는 Hinton, 그의 연구동료는 Sutskever. Alexner이 세람의 연구 결과는  44밀리언 달러에 구글에 팔렸고 이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카탄자로는 앤비디아의 첫 AI 리서쳐였는데 그는 문학과 컴터사이언스를 더블 메이저하고 버클리에서 세아이의 아빠로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그가  대학원 시절, 인텔에서 인턴쉽을 할때 그는 페러렐 컴퓨팅으로 바꾸어야함을 이미 알아보았던 천재였지만 1년차 인턴의 말은 무시되었다.  앤비디아에서는 카탄자로의 AI 모델,  cuDNN를 황에게 직접 보고하자 황은 바로 관심을 보이고 이것을 O.I.A.L.O 라고 인식했다. Once In a Lifetime Opportunity 그는 카탄자로에세 어느 직원이던 마음대로 갖다쓰라고 말했다. 황이 첫번째로 이 사업에 뛰어든것. 이제 앤비디아는 더이상 그래픽 칩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딥 러닝 회사라고 선언한다. 황의 경영방식은 관료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오른팔 개념의 2인자도 없다. 다만 30여명의 바이스 프레지던트가 바로 보고를 하도록 한다.  이러했기에 2014년 무렵, 갑자기 카탄자로는 앤비디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후에 그는 3배의 월급 인상으로 다른 회사를 이직했다가 다시 앤비디아로 돌아오는데 앤디비다 같은 회사는 없다 라고 말한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있었고 몇몇회사들이 AI산업에 뛰어들었고 고 이 회사들은  앤비디아의 GPU 를 살 수 밖에 없고 앤비디아의 매출은 뛰어오른다. 얼론 머스크도 주주를 모아 만든 회사, 오픈 AI 로 이 산업에 뛰어든다. 황은 슈퍼컴터 DGX를 직접 머스크에게 전달한다.

2017년 노벨 물리상과 화학상은 앤비디아의 GPU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해 한해동안 앤비디아의 수입은 1빌리온달라를 넘었다. 직원은 만명이 넘었다.  삼각형 모양의 현대적인 새로운 사옥은 최초로 슈퍼컴퓨터가 디자인한 빌딩이었다. CUDA소프트웨어는 2.7밀리언번 다운로드 되었다.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플랫폼 옴니버스를 계발했고 그해 말의 소득은 3빌리온이 넘었다. 2017년은 Good year 였다.

2017년 초에 구글 연구원이던 Polosukhin, Uszkoret, Ashish Vaswani 를 포함한 8명의 연구원은  self -attention mechanism 으로 영어, 독일어 번역기를 계발하고 이 기법을 transformer 라고 이름붙인다. 이 기법은 창작도 가능하게 한다. 이 스타트업은 구글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위기에 있었으나 오픈 AI 에서 가능성을 보고 기존에 하고 있던 인공게이머 사업을 접고  트렌스포머 기법을 이용하여 물음에 답하고 스스로 창작을 할 수 있는   GPT를 만들게 된다.  오픈 AI에1빌리온을 투자했던 아미크로소프트는 2019년, 100빌리온의 수익을 내게 된다. GPT2가 쥐의 브레인 정도였다면 인간의 뇌 수준으로 가동하려면 엄청만 규모의 컴푸터가 필요하게 되고 황은 슈퍼 컴터나 데이타 센터를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AI 공장을 만들어내야하는 단계가 되었다. 황은 다른 회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하고 글로벌하게 공장을 키운다.

2020년 앤비디아는 300여개의 툴 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게임, 에니메이션, 천문학, 기후학, 수학, 물리, 파이낸스, 바이오캠, 컨텀 컴퓨팅 등등. 이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라이센스를 페이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소프트웨어를 끼워주게 되면  하드웨어를 바꿀 때 계속 앤비디아를 찾게된다. 마침내 2020년 7월 앤비디아는 인텔도다 더 높은 밸류를 갖게 된다. 하지만 팬데믹기간이라 제대로 축하할 수는 없었다. 또 AMD, 황이 처음 입사했던 회사이고 코카콜라와 팹시콜라처럼 라이벌 관계였던 회사도 추월한다. 사실 AMD의 사장인 리자 슈는 황의 조카였는데 업계에서 만나기 전에는 서로 혈연관계인지 몰랐다고 한다. 황의 엄마가 리자의 할아버지와 형제인데 많은 자녀가운데 막내였던 황의 엄마는 친구네 집에 보내져 키워졌기에 린다와 황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리자 슈는 황과 달리 타이거맘에 의해 키워졌는데 닥터 엔지니어 피아노연주자 중 하나를 미래 직업으로 고르라 했을 때 엔지니어이를 골랐는데 어려워보여서 하고 한다.( 이 대목에서 유전자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황의 외가 쪽 유전자가 뛰어난 듯)

이 무렵, 황은 금요일마다 회사 전 직원에게 가장 중요하게 일하고 있는 5가지를 적어내라고 하는데 랜덤리 직원들의 이메일을 읽고 수백통의 이멜을 보내며 스태프들과 교류하며 회사를 키워간다. 실무진과 소통하며 감각을 키워간 것.

2022년 챗지피티가 나오게 된다. 2023년 3월엔 지피티4가 나온다. 지피티4는 바 시험을 통과하고 AP시험에서 5 점수를 받고 GRE 시험에서 어떤 분야는 99퍼센트를 기록한다. 이 시점부터 저자는 자기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피티4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100밀리언달러가 들어갔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뉴럴 네트워크가 아니라 많은 뉴럴 네트워크의 혼합물이다. 2024년에 출시한 소라는 리얼 타임비디오를 만들어내는데, 이런 혁신 기술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딥페이크등의 문제점도 생기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AI 일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에 살게 된 것.

2023년 앤비디아는 슈퍼컴터의 물량 반을 다른 회사에 팔고 클라우드를 유지하기 위해 물량 반은 남긴다고 발표하는데 이 시점에서 게이밍쪽 자산보다 데이타 센터 자산이 더 많아지게 된다. 2023년 5월 앤비디아는 세계에서 6번째 자산의 회사가 된다. 다른 한명의 얀비디앞창업자 ,말라커브스키는 2023년에 주식을 팔았다고.

2023년 후반에 앤비디아의 또 다른 건물이 오픈한다.  최신AI 기능이 탑재된 건물. 

AI는 엄청난 전력소모를 하고 사람들의 디맨드가 항상 있으니 수리를 할 때 조차 파워 오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또  환경문제등을 유발한다. 엄청난 전력 소모를 견디지 못할터이니 앤비디아에 더이상 투자하지 말라는 의견도 나온다. 더 나아가 컵터가 스스로 배우는 셀프 러닝 시대에 그 다음에 뭐가 올지 과연 황이라고 해서 알까? 이런 문제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비디아 스탁은 가장 주목받는 스탁이 된다. 또 가장 일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앤비디아 엔지니어들은 총 만오천개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점심시간 카페티리아의 직원 구성을 보면 1/3은 이스트 아시아, 1/3은 사우스 아시아, 1/3은 백인이다. 인디안 푸드 라인이 젤 길다. 대체로 이들의 부모 중 한명은 엔지니어이고 어릴 때부터 전기교류보드를 만들어본 사람들이다. 1/4 정도가 여성이고 황의 아내가 커리어를 접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황은 여성들의 직장 생활에 우호적이다. 흑인은 1 프로 정도.

이젠 젠슨 황의 어떤 점이 이렇게 회사를 성장 시킬 수 있었나 봐야할 때이다. 잰슨은 제법 소리를 지르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면서도 인간적이고 다소 유머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의 한 예로. 직원이 아팠을 때 병원비를 건넨거, 직원이 직장을 바꾸려하자 부하직원 10명이 있을 뿐인, 황이 나의 존재를 알리가 없다 생각되는 사람임에도 직접 찾아와서 무릎을 맞대고 설득하려고 하였다는 일화 등등이 있다.) 

야단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더 일하게 만들고 직원의 최대피를 끌어내기 위한 황의 전략적 방법이고 회사가 생존하고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들 인정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 테크 회사가 흔히 갖고 있는 암벽등반, 운동 시설, 놀이공간등은 전혀 없고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라고 한다고. 

황은 그렇게 황을 따라 죽도록 일해도 좋다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이 신기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앤비디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황을 숭배하는 듯하다. 

황이랑 대화를 해보면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지라 때로 서로 상반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매일 4시에 일어나고 옷은 토마스 버버리 모노그램셔츠를 24개 사서 돌려가며 입는다. 가죽 자켓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AI의 잠제적 위험성에 대해서는 일란 머스크가 위험성을 나타낸 반면 황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래에AI가 우리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도 있다는 위험에 대하여 상당 수 과학자들이 우려를 보이지만 황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보고있고 이 부분을 저자가 질문하자 황은 톤을 높이기 시작하여 직원들이 경험하는 소리지르기를 저자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고 오히려 친밀감이 들었다고.

책 마지막 부분에 AI의 잠제적 위험성에 대해 저자는 다시 또 질문울 던지는데 아마도 가장 미래를 선도하는 사람으로부터 미래를 어찌 예측하는지 듣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데 황은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사이파이 소설류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지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아닌 것. 냉정한 비즈니스적 로직으로 이 자리에 온 것. 그랬기에 자꾸 미래에 대해 묻는 것을 불편해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기업가는 타고나는 거 같다는 것. 혁신적인 변화를 선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거 같다.

1년 단위로 뭔가 일들이 진척되는 전기를 읽으며 컴터 공학 산업은 정말 빨리 바뀌는구나 싶고 함께 긴장도 하고 에너지도 얻고 부지런해지기도 하는 듯한 시간이었다.

유익했던 책이다.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오리엔탈 마트에서 본 뉴올리엔즈 커피, 새로나온 초코렛 두바이스타일

 동네 중국마트 갔다가 낑낑대며 뉴올리언스에서 사온 카체 드 몬드 커피가 진열대에 있어서 깜놀. 가격도 좋아요. 8불대. 

이 커피를 요즘 마시고 있는데 커피에 치커리를 섞어서 맛이 더 쓴맛이 나고 커피향은 약해요. 그래도 그 카페에서 먹을 때는 라떼로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요즘 느끼기엔 그닥 맛있지는 않다는 느낌이예요. 그래도 마트에서 보니 반갑네요.




또 하나 마트에서 발견한 것은 두바이 스타일 초코렛. 한국에서도 이런 스탈이 인기라고 작년에 누가 갖다주어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젠 미국에서도 만드네요. 그런데 맛은 한국거가 더 나은 듯요.  가격은 비싸네요. 12불이었나 14불이었나 그랬어요. 초코랫 안에 너트류룰 아주 파인하게 갈아서 반죽한거 같은 것이 들어있는데 그 양이 작네요. 




2025년 7월 27일 일요일

오랜만에 간 그랜 콩코스

 









오랜만에 간 그랜 콩코스. 옛날 기차역이 레스토랑으로 변신한 곳이고 명소라 할 만한 곳인데 이젠 젊은이들의 취양에는 못 맞추는 듯, 다른 곳들은 예약 차는 금요일에도 예약하기가 쉽더라고요. 

몇번 올때마다 창가쪽으로 안내되었었는데 이번에는 메인 홀쪽에 앉게 되었어요.

손님 대접하기엔 좋은 듯요. 음식 사진을 많이 못 찍었는데 해물튀김들어간 파스타를 시켰었는데 약간 짰어요. 스테이크는 맛이 괜찮았고요. 다른 포스트에도 이곳이 소개되어 있어요 애피타이저 디쉬들은 다 맛있었어요. 메릴랜드 스타일 크랩케잌은 처음 먹어봤는데 좀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