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품 너의 다리미가 이 용기 안에 있다. 이렇게 써 있는데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면이나 린넨 돗들 구깃한거 뿌려 놓았더니 펴지더라구요.
추천합니다. 타겟에서 샀어요.
(홈) 누르면 주제별로 서치 되지만 최근 몇년간 업데이트 못 했어요. 키워드 서치는 하단의 (왭 버전 보기) 눌러 왭버전으로 가서 왼쪽 최상단에서 서치하거나 오른쪽 페이지뷰 밑의 검색에서
갑자기 책읽기가 105에서 137로 숫자가 늘어났는데요, 예전에 초창기에 포스팅한 책 중에 책읽기를 제목으로 넣지 앟은 것들이 제법 있어서 숫자를 다시 밀린걸 정리 하려니 넘 힘들어서 번호를 그냥 달면서 106에서 136까지 달다보니 번호가 갑자기 건너뛰게 되었네요.
AI 이용하면 그런 정리 쉽게해주고 링크 거는 것도 쉽게 된다는 것 같던데 제가 능력 부족이라 일일이 수동으로는 너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요즘은 목록별로 정리하는 것도 안하고 있네요.
최근에 간 여행지나 식당등은 목록에도 안 나오는 것들이 많아서 서치에서 키워드로 찾아서 보셔야합니다.
렘브란트에 관한 이 책은 네델란드 가기 전에 북클럽에서 읽고 가게 되어서 넘 타이밍이 좋았어요.
표지에 나오는 자화상도 직접 보고, 그 유명한 야경을 실제로 영접하고 압도 되었어요. 일단 규모가 넘 커서요.
저 큰 그림 그리라고 돈도 많이 쓰고 오래 기다린 의뢰인이 정말 기가 막혔겠다. 감이 오더라고요. 그 이후 초상화 의뢰가 단절될만 했겠다 싶었어요. 직접 보기 전에는 초상화 하나 맘에 안든다고 그림 손님이 딱 끊기고 파산 지경이 되다니 뭐지?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럴 만 하다 싶고 그 배짱이랄까 자기가 그리고 싶었던 것을 그리고야 마는 렘브란트의 뚝심을 보게 되더라고요.
책 내용은 첫 문장이 "렘브란트가 살았던 17세기의 네델란드는 칼뱅주의의 영향력이 지대하던 곳이다" 로 시작합니다. 카톨릭과는 달리 칼뱅주의는 대규모 제단 장식화나 종교적 작품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이미지 제작에 혐오의 눈길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렘브란트가 남긴 작품 중 1/3이 성서화라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할 수 있죠. 700여점의 성서 드로잉을 남겼는데 드로잉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관찰을 담는 것으로 렘브란트의 에술정신이 성서와 대단히 친밀했음을 보여준다할 수 있다고요.
1630-1640 년대는 화가로서 잘 나가던 시기였고 1642년 아내가 죽고 나서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고 1950년부터는 그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말년에 성서화와 성경적 초상화 제작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부유한 자산가의 집안의 딸이라 재산이 있었는데 죽으면서 유언으로 재혼하면 그 유산을 받지를 못한다는 단서를 붙였기에 렘브란트는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와 사실혼 관계가 되지만 법적 결혼을 하지는 못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생활 면에서 크리스챤적인 거룩함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더 들여다보고 희화하기도 하였던 듯요.
책은 램브란트의 성서화들을 보여주고 그 그림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고 그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므로 레퍼런스 삼아 렘브란트의 그림 여행을 다녀본다면 넘 좋을 그런 책이예요.
성경을 읽으며 그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구도를 짜고 그림을 구상하여 표현해내면서 램브란트가 갖고 있던 생각등을 유추해내는데 그림에 이런 많은 메세지들이 담김에 놀라게 되고 렘브란트의 생각의 깊이와 표현력에 또한 놀라게 됩니다. 특히나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되어 더 강렬한 효과를 줍니다. 같은 성경의 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해도 화가에 따라 해석이 다름이 그림을 비교해가면서 설명되어 있는 부분도 있어서 렘브란트의 탁월한 감성과 표현력에 놀라게 됩니다.
렘브란트의 그림 해석으로 핸리 나우엔의 돌아온 탕자 그림에 대한 해석을 능가라는 것은 없으리라 보기에 여기에 일일이 적지는 않고 혹시 이 책에 나온 그림들을 볼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 책을 뒤적여 보려 합니다.
한사람에게 한조각 먹는다하면 55-60명 먹을 수 있는 분량을 만들었어요. 새가족 환영회에 가져가기 위함인데 대충 샘즈의 고기팩 한 팩 사면 15쪽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4 팩 사서 고기를 발려내야하는 것들은 따로 발려내고 뼈에 잘 붙은 것들로만 골라서 만든 엘에이 갈비 구이.
굽는데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네요. 다음을 위해 적어둡니다.
너무나 풍성했던 음식들, 사진에 다 못 담았네요.
하나님 자리를 훔친 내가 만든 신들, 우상에 대한 글인데 저자는 돈과 권력과 지배욕의 총집결지 뉴욕에서 뉴욕커들을 꺠우는 교회 사역을 하신 팀켈러 목사님이신데 지난 2023년 췌장암으로 만 72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변증법적인 논쟁으로 기독교를 설파하여 현대판 시 에스 루이스라 불리는데 글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시 에스 루이스의 글들은 문학적이면서 여유와 위트가 있다면 팀 켈러 목사님의 글은 좀더 긴급한 상황에서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직선 코스로 들어와 찌르고 설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국의 녹음짙은 캠퍼스에서 생산된 글과 뉴욕의 바벨탑처럼 치솟아오른 빌딩 숲 사이에서 쓴 글의 차이가 보인다.
내 나이에는 젊었을 때 가졌던 우상의 헛됨을 어느정도 인지하는지라 이 책은 그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젊은이들이 읽어보면 참 좋을 거 같다.
금융위기로 몰락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뉴스에서 시작하면서 하나님 아닌 우상을 쫒는 것이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를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 공장인데,
성공, 사랑, 재물의 소유, 가정등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인데 그것이 신격화 되면, 우상이 되면 우리를 파멸시키고 절망으로 이끈다.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는데 좋은 것 중 하나가 최고의 것으로 군림하여 다른 것을 짓밟고 군림하면 그것이 우상이다. 그리고 그 우상은 우리를 지배한다. 절망에 이를 때 해방되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뿐이다.
첫번째 다루는 우상, 나의 평생 소원
나이들어 결혼하여 자녀를 갖게 되는 것을 간절히 소원하여 아이를 둘 갖게 되었는데 그 아이들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지나치게 사랑하여 독이 된 한 여성을 예를 들면서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너무 적게 사랑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 결과 엄마의 신이었던 두 자녀는 과도한 기대에 짓눌려 무너지고 만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예를 든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은 우상이 되기 쉬운 존재였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인내하여 갖게 된 아들인가? 이 때 하나님이 이삭을 제사지내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이 명령의 의미를 인신 제사를 원하시는 잔혹하신 하나님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한다. 불순종의 죄의 댓가로 애굽의 장자를 치신 것처럼 너의 죄를 인정하고 이삭을 대속 제물로 하라는 의미였다고 본다. 이부분은 막연히 예수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십자가에 대속하셨으니 이삭이 그 그림자이라고는 알고 있었는데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하는데 하나님이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분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 명령에 따를 수 있었다고 한다. 두려워서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자칫 우상이 되어 망칠 수 있었던 자신과 이삭의 인생을 바로잡고 믿음의 아버지가 된다.
다음으로 다루는 우상은 로멘스.
여기서는 야곱을 본다.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 사랑에 눈이 멀어 외삼촌의 정확치 않은 말을 믿고 7년을 일하며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를 소원했으나 결국 첫날밤은 레아와 치르게 된다. 야곱의 우상이 라헬이었고 레아의 우상은 야곱의 사랑이었다. 레아는 아들을 낳으면 남편도 돌아올 것이라 믿고 불행도 끝나리라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네번째 아이 유다를 낳고 나서 레아는 드디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고백하며 그녀 마음의 가장 깊은 희망을 남편과 아이에게서 떼어내서 여호와께 둔다. 레아의 참 신랑은 누구신가? 누가 그녀에게 구원을 주었나? 하나님 이신 것. 반면 라헬은 끝내 드라빔을 훔쳐 숨기는 등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했다. 야곱은 외삼촌집에서 나와 이삭을 만나러 갈 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씨름을 벌일 뗴 드뎌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된다.
로맨틱한 사랑에서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신격화 한다. 상대를 격상시켜서 자기 흠을 없애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을 지우고 자기의 존재를 정당화하려한다. 즉 구원을 받으려 한다. 이 부분에서는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났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구씨를 향해 "날 추앙해요. 사랑으로는 채워지지 않아. 멍 때리고 바라볼 것도 없이, 꽉 차게, 날 추앙해요" 추앙은 우상에게 하는 숭배가 아닌가?
다음은 풍족한 소유와 소비의 우상
여기서는 다른 나라에서 미국에 오면 엄청난 소비에 놀라는데 정작 그 사회 안에서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기에 사치스런 소비를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탐심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여기서는 신약의 삭개오에 대해 얘기한다. 그시대에는 삭개오같이 살면 부끄러운 일이었고 비난을 받는 일이었는데 현대에는 그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었으니 더욱 위험하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표면적 우상과 근원적 우상의 차이.
표면적 우상은 근원적 우상을 충족시키려는 통로로서 돈, 배우자, 자녀등이다. 자기 세상과 삶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고 돈을 모으로 저축하는데 그것이 지나치다면 돈 자체 보다는 자신이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고 돈은 그를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이 경우 통제하려는 권력욕이 내면적 우상일 수 있다.
다음으로 다루는 우상은 성취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은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병자들이었음을 기억하라
다음은 권력.
여기서는 책의 좋은 내용들을 그대로 옮기고 싶다.
하나님은 착하고 젊잖게 살려는 이들을 복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에 삶의 핵심 목표는 희생이나 자기 부인이 아니라 행복과 좋은 자아상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긴 했지만 문제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 삶에 딱히 개입할 필요가 없다. 이런 하나님관을 품으면 스스로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내 영혼의 선장이 된다. 구원과 행복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게 달린 것.
그런데 우리 성공은 생각만큼 그렇게 자신이 잘나서 된게 아니다.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요인은 하나님 손 안에 있다. 누구든지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과분한 은총의 수혜자이다. 권력과 재물과 영향력의 위계에서 세상의 정상에 오른 이들도 사실은 지극히 천한 자 일 뿐 어느 누구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다. 즉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 은헤의 산물이지 우리 행위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얼마전에 유투브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가 부자가 되는냐의 50프로를 차지하고 어떤 집에 태어나느냐가 30프로 였나 , 내가 부자가 되는냐를 결정한다고. 어느 나라에 태어나고 어느 집에 태어나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여기서의 성경은 느부갓네살왕이 꾸었던 꿈 얘기가 나온다. 권력자가 불안해하던 모습과 그의 마지막생의 비참함에 대하여 말한다,
다음은 문화와 종교
여기서 미국 문명은 하나님- 국가 -자아 순서를 밟고 옮겨갔다고 말한다.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하나님 중심의 나라를 선포하였고 그 이후 미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 자리를 미국이라는 국가가 대치해버렸다는 것. 그리고 요즘은 자아가 젤로 중요한 사회이고. 이러한 문화가 우상이 된다.
성경말씀은 요나에 대하여 말한다. 자신의 국가가 우상이 되어 원수 국가 앗수르를 회개하게하는 메시지를 전하느니 죽는게 낫겠다는 요나 선지자을 어떻게 다루시는지에 대하여.
또 팀켈러 목사님은 분명하게 인종적 우월함과 문화적 편협함은 은혜의 복음과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우상의 폐해는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면 내 삶은 의미가 없어. 저것을 잃거나 실패했으니 나는 다시는 행복하거나 용서 받을 수 없어. 이런 거짓된 신념을 유발한다. 이런 신념은 평범한 실망과 실패를 확대해 삶 자체를 꺽어 놓는다.
우상숭배란 단지 예배 의식의 한 형태가 아니라 유한한 가치에 기초한 정서와 생활 방식 전체이며 피조물을 신처럼 절대화 하는 일이다.
우상 식별법
첫째, 혼자 있을 때 무심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점검해라
둘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점검해라
세째: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희망이 꺽일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깊은 절망과 분노라면 조심하라. 그 감정의 뿌리를 캐보면 우상이 딸려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지 않으면 우상은 다시 자라난다.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더없이 기뻐할 때 자신의 죄를 가장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결과가 두려워 회게한다면 정말 죄를 슬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딱하게 여기는 자기 연민이다. 두려움에 기초하여 회개하면 죄 자체를 미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죄의 매혹적인 위력은 그대로 남는다. 자신의 신상을 위해 죄를 삼갈 뿐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적 고난과 사랑을 기뻐하면,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그분이 치르신 대가를 보면 죄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그 분이 담당하셔야하는 죄값이 보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기초한 회개는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지만 기쁨에 기초한 회개는 죄를 미워하게 한다.
그리스도 안의 기쁨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우상 자체는 거의 언제나 선하기 때문이다. 직장과 가정을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은 이제부터 직장과 가정을 그만 사랑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리스도를 훨씬 더 사랑하면 그런 것에 집착하여 노예가 되지 않고 바르게 사랑하게 된다.
외면적 행실의 규범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평안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만 마음을 두는 것은 다르다, 존 뉴턴은 그 소명이 단연 가장 어렵다고 고백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행실에서 자아를 부인하는 일은 의와 능력의 근원으로 행세하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자아를 부인하는 일에 비하면 차라리 쉬워보인다. 지적인 이해로는 도달할 수 없고 기도와 묵상과 공중 예배등의 영적 훈련으로 체화되면 그 자체가 삶을 빚어낸다.
이 곳은 로렌스빌에 있는데요, 여길 가본 것은 아니고 뉴욕에서 플로팅 세라피에 가봤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도 있나 찾아본 거예여.
플로팅 세라피란 가정용 베스터브보다 좀더 튼 곳에 물을 채워넣고 소금을 넣어서 누우면 몸이 뜨게 만들고 그 안에서 긴장을 풀로 릭렉스하는 세라피라고 하네요.
이스라엘 사해에 가면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뜨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음악을 틀어주고 천정에는 별 그림 같은 것도 있고요 물에 몸이 뜬 상태에서 릴렉스 하면서 정신과 몸의 긴장을 풀어주눈 요법인데 소금물이 몸에 닿는 감촉이 좀 강하고 하여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한테 애기해준 사람은 다시 갈 거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모두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더욱 느꼈을 뿐이라고요.
아 그리고 소금은 엡손 소금을 쓰는데 그게 관절염에 좋고 수면에도 좋다고 하네요.
그냥 집에서도 하면 좋을 듯요.
그래도 이런 거도 있구나 처음으로 알게 되어 함 올려봅니다.
피츠버그에도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