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께서 청년기에 읽고 크게 영향을 받은 책이 소유냐 존재냐 라는 에릭프롬의 책이었다고 한다.
어디에서 듣고 적어 놓은 것인지 노트 한 구석에 긁적여 놓은 글에서 비슷한 맥락의 글을 보았다.
소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지만 경험, being은 우리를 더 오래 행복하게 한다.
경험을 사라. 돈으로 물건을 사지 말고....
여행을 가고 음악회를 가고 책을 읽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라.
스토리텔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은 철학적으로 풀었다면 위의 글은 알기 쉽게, 카톡에 한 번날리기 쉽게 쓰여진 글인데 살아갈수록 맞는 얘기인 거 같다. 뭐 소유한 것도 별반 없긴 하지만 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큰집을 사야 나중에 팔때도 더 많이 남긴다며 젊었을 때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충고 따위는 듣지 않을 거다.
유럽에서 학위를 하고 포닥을 일본에서 하고 미국에 와서 생활하는 분을 아는데 참 얘기 거리가 많으시더라. 우리 세대에는 외국 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었는데 젊어서부터 이곳저곳 살아보아 아는 것도 많고 식견도 있고 스토리도 많아서 부러웠다.
그러나 이야기 거리는 좋은데를 많이 간다고 생기는 것은 아닌거 같다.
친구가 경험한 것인데, 아이들 어릴 때 비행기 타고 좋은 데 가서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고 다녔다고 한다. 좋은 경험, 추억을 만들어주려고....그런데 그럴 때 보다도 교회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영화 보고 같이 햄버거 먹고 그럴 때 훨씬 더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더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유명하고 좋은 곳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며 가까운데라도 함께 다니고 이런 저런 이벤트를 만들어 즐기고 그런 것들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행복하게 하는 거 아닐까....
아이들 어릴 때 그런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주지 못하여 아쉽다.
더 어린 버젼의 내가 경혐하는 것과 이 나이의 내가 경험하는 것은 같은 곳을 가더라도 넘 다른데 감수성 풍부하고 모험심 있고 창의적인 발상이 반짝반짝 할 때 좀 더 많이 경험하는게 풍성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는 거 같다.
내 인생은 심심하니 참으로 별 얘기거리가 없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이야기 거리 하나.
앤아버 살때 학교의 패밀리 하우징이라는 시설에 살다보니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었고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다들 악기 하나씩을 하는데 악기 연습을 독려하는 의미로 한달에 한번씩 집집마다 돌며 콘서트를 가졌다.
아이들은 그 날 연주 후 친구를 만나 놀고 맛잇는 거 먹을 생각에 즐거웠고 엄마들은 아이들 실력이 늘고 남 앞에서 연주해보는 경험이 쌓이는 효과를 노렸다. 또 아이들만 친구랑 노는게 아니라 엄마 아빠들도 소셜의 기회였기에 즐겁게 그날을 기다렸었다.
그러다 한번은 연말에 작은 콘서트홀을 빌려서 진짜 연주회처럼 손님들도 초대하여 콘서트를 가지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 이상으로 커버렸는데 작은 거실에 복닥복닥 모여 연주회랍시고 하던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앞으로는 어떤 얘기거리를 만들며 살아갈까..... 분명 여유와 시간은 더 많이 생길거 같은데 다리 힘도 없어지고 감수성도 떨어지고 소재도 궁해질 거 같다. 일상에 쫒겨 멋진 스토리를 만들 때를 미루며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제보니 이미 놓쳤구나. 이런 후회를 하지는 말았으면.....
덧: 전에 라스베가스 갔을 때 야외 수영장이 에펠탑 바로 옆에 있어서 꽤나 괜찮았었다. 같이 간 둘째 딸이 배영 자세로 누워서는 엄마 이렇게 누워서 하늘 봐. 멋져 이러는데 30년전에 배운 수영을 까먹은거다. 머리로는 몸에 힘빼고 누우면 되는 줄 아는데 굳어져 버린 몸은 말을 안듣더라. 추억을 만들래도 내 몸이 말을 안 듣고 추억의 재료가 불량하면 안되는 걸 깨달았다. 수영을 할 줄 알았다면 불가사리도 만들고 싱크로 나이즈도 하는 건데....
지금 수영에 도전 중이다. 목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손주들과 수영장 정도는 가볍게 가서 놀아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 우리 세대는 뭐든 힘드네. 60년대...이런거 가르쳐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해서 다 우리힘으로 해야해.
덧: having은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 그런데 being 은 성경적으로 보면 영생까지 갖고 가는거 같다. 예수님이 부할하셨을 때 제자들을 다시 찾으셨고 제자들과 있었던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으셨다. 나의 having 은 사라지지만 나의 being 은 영생하는거 아닐까? 죽으면 다 사라지고 뭔가 신비로운 영만 남는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
이 지상에 보물을 쌓지말고 천국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being 이 천국의 심판의 재료요 천국행 티켓을 가름하는 거 뿐아니라 죽음 이후 천국까지 가져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이 다들 흰옷을 입고 있던데 분명 명품 옷 소유한다고 천국까지 가져가는 것은 아닐것이고 부할할 때 그 옷 입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옷만 같은 것이 아니라 내면까지 다 똑같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를 셀수 없이 델고서 영생을 하신다는게 영 재미없는 일일거 같다. 성도 각자의 being, 그 안의 스토리들은 다 각자 지니고 있는거 아닐지....
한편 힘들었던 일, 나쁜 스토리도 다 갖고 영생한다면 과연 천국이 맞나? 이런 생각도 들지만 그런 스토리도 결국은 나를 천국으로 이끄는 여정이었다면 이생에서처럼 그런 스토리들이 고통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거 같다.
갑자기 물질이, 소유가 정말 쓸데 없이 느껴진다.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의 오실 메시아가 본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리 누누히 얘기했는데도 못 알아본 사람들처럼 성경책에 천국에 보화를 쌓으라고 그리 누누히 얘기했는데도 죽고 나서 아차 하는 것은 아닌가 정신이 바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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