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1일 화요일

책 읽기: 여행의 이유 (김영하)



이 작가는 알쓸신잡 티비 프로에 나온 작가인데 유시민과 견줄만큼 박학다식해서 시선이 갔고 거기서 얻어들은 한마디로 내 무릎에 스티치 자국을 남기게 했던 작가.
알쓸신잡에서 패달 보트를 타길래, 좀 어린애같네 했는데 그 이유가 여행을 하면 시선을 달리해서 볼 수 있는 걸 즐긴다며 보트 타기 등을 꼭 한다고...
그리하여 나도 오하이오파일의  작은 폭포를 만나서는 그 폭포 안에서 바라보면 어떨지 궁금하여 강을 건너 폭포 뒤 동굴로 가려는 시도를 하다가 미끄러져 무릎팍을 깨고 3바늘 꿰매었다.
작년 여름, 한국 갔다가 서점에서 이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집을 발견하고는 내깨진 무릎팍이 생각나면서 사갖고 왔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이 작가는 나와 5살 차이가 나는데, 글을 읽으며 첫번째 드는 느낌은 세대차이였다.
나의 한국 책 읽기는 미국에 온 이후로는 스탑이 된지라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공지영. 쓰고 보니 다 여성 작가인데 그 전의 태백산맥등 그런 세대까지 였고 내 전세대는 엄마세대로 이해하고 내 세대는 내가 살아왔기에 이해하면서 공감하며 읽었는데 이 작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전쟁 전후 세대의 시대가 주는 상처들을 안고 가는 치열함, 아픔, 끈적끈적함 그런 것이 없고 담백해진 것 같다. 시대랑 상관없는 자아에 대한 추구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글에 보이고, 시대상황과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걸로 자기 삶이 피폐해지지는 않아서 담백하게 객관화시켜 다룬다는 느낌.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아이덴터디로 글쓰기와 여행을 꼽을 만큼 여행을 즐기는데 그 이유가 초등학교때 군인이었던 아빠를 따라 일년에 한번씩 전국 각지를 돌며 이사를 다녔던 데서 시작된다. 그리 이사를 다녔으면 어느 한 곳에 안착하고 싶을만도 한데 그게 불가능해져버린 소울이 된거 같다. 누구를 만나도 곧 헤어지겠지를 생각하고(서른의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동창생을 한명도 초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이하다.) 어디에서도 여행자같은 자세로 살게 되다보니 여행지의 호텔에서 낯선 호텔 프론트에서 자기 이름을 알아주고 낯선 곳에서 환영받는 그 느낌이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이런 기작을 자기도 모르게 입력되어 있는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이 살아간다고 표현했다. 즉 그에게 여행은 그 프로그램의 반응.
너무나 개인적인 여행에 대한 이유라서 공감과 연결고리를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는 여행 전문가이고 나는 이제 막 자유부인이 되어 여행이라는 걸 시작해보려는 입장이므로 그의 얘기들을 경청해보기로....

첫 여행의 스토리는 여행을 가려다 실패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국에서 몇달 살며 글쓰기를 하리라 작정하고 떠났다가 어이없게도 비자가 없어서 중국공항에서 바로 돌아온 후 첫 해외여행이었던 사회주의 중국을 동경하던 운동권 대학생때의 기억을 떠올렸고 집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집에 있었으나 여행을 한거와 같았고 또 소설쓰기를 통하여 여행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그 소설의 인물의 세팅 안에 빠져 들어가 그 동선대로 살아가기를 하다가 나오는....자기 찾기, 소설, 여행의 연결고리....즉 여행에는 실패했으나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들을 다 경험하고 찾은 그런 얘기.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흠 이런 것이 여행이라면 깃발 여행을 다니며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텐데 작가가 얘기하는 여행 얘기에 좀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그 다음은 여행은 삶의 일탈과 그와 더불어 리셋 경험을 하게 한다는 스토리.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 봐도 맘이 무거워진다. 아니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이 부분은 백퍼 공감. 아마도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밥 안하고 사먹는거, 빨래 청소 안하는 것 만으로도 여행이 좋을거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 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상처부분은 이젠 그 상처를 느끼는 감성조차도 무뎌지는 나이인지라 내겐 집이 편안함과 안식과 그런 좋은 기억으로 더 많이 있기를 원하고 아이들도 그러하길 원한다.이 집밖을 못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런대로 잘 지내니 그러한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엄마의 착각일까? 여행 끝나고 돌아와서 역시 집이 최고야. 보통 그러지 않나....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중략....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중략...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엇을 것이다. "

난 여행지에서 잠깐 잠만 자더라도 좀 좋은 호텔에 머물기를 원한다. 미국 생활을 학생의 와이프로 시작했고 그 시절 중고가구들은 아직도 우리 살림의 일부이다. 세련되게 정돈된 호텔에 들어서면 내 집과 다른 그 분위기가 좋다. 수영장이 있거나 부대시설이 있을 필요는 없는데, 그것들 때문에 스타 수가 올라간 호텔은 내겐 과소비이고...그러나 방만큼은 깔끔하고 새집 같은 분위기를 주는 호텔이 좋다. 새롭게 갈아지는 시트, 매일 치워져서 새롭게 리셋되는 공간. 내게도 그 느낌이 여행의 큰 즐거움 중에 일부인거 맞다.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이는 직업과 다르다. 발상은 무게가 없다.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여있을 필요가 없다. "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거같다. 어디 여행한 번 못해본 작가가 자신에게만 파고들어 그 깊이와 상상력 만으로도 멋진 소설을 써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옛날 여성 작가들이 그러했다.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정착할 필요가 없음은 부럽다. 김영하 작가도 몇몇 외국에서 살아봤다고 한다. 청약저축으로 집을 마련하기 보다는 적금 부어 여행을 떠나고 낯선 곳에서 살고...그러했다고.... 부럽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상황에 처하게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에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현재만 살아가는 건 맞는데,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상에 있는 삶에서 잠시 일탈을 해서 여행지에서의 그 현재만이 나의 과제인 삶을 사니까.....그런데 난 여행 중에 끊임없이 후회한다. 이렇게 했더라면 더 싸게 여행했을 텐데....저걸 선택하는게 나았을텐데....그런류의 후회를 끊임없이 한다. 결정을 내리고 돌릴 수 없으면 잊어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큰 딸과 다르게 나는 현재에만 집중하지를 못 하는 편이다. 어쩜 나는 여행지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도 후회가 많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대한 예비와 걱정은 또 그리 많이 안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점도 큰딸과 다르다. 큰딸은 미리미리 챙기고 준비하고 비행기 타러 가면 젤 먼저 보딩하러 와있는 승객 5위 안에 항상 든다. 여행의 자세가 삶의 자세이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젤 중요한거는 현재를 즐기는 것. 

오디세우스를 예를 들며 여행이 노바디였다가 썸바디가 되게도 하고 썸바디 였다가 노바디를 경험하게 한다고 한다.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여행을 가면 시골 여행지에서는 여행객이라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고 썸바디가 되는데 그걸 즐겼던거 같다고 했다. 또 작가로 알려진 이후에는 여행을 가면 한국에서는 썸바디였는데 여행을 가면 노바디가 된다고도 했다. 우리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이 부분은 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동양인은 눈에 띄니까 우리는 노바디이기가 어렵게 썸바디로 눈에 띄는 면이 있다. 나는 주고 한국사람들만 만나니까 나 말고 우리 애들 얘기다. 숨어있을 수가 없는 존재인 면이 있겟다. 그게 어떤 느낌일까? 평생을 다수가 아닌 소수로, 마치 여행객처럼 이방인처럼 여겨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썸바디였다가 노바디가 되는 경험. 
작가는 오디세우스는 자길 모르는 섬에  당도하여 자기를 알아주기를 뽑내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혀영과 자만은 여행객의 적이고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고 자신을 낮추라고 충고한다. 
썸바디였던 적도 없기에 이걸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낯선 여행지에서도 썸바디처럼 보일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에서의 직함, 자기 나라에서 유명인, 이런것은 소용이 없다. 어디에서나 썸바디로 보일 수 있는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겉치장, 외모가 아닐까. 겉모습이 멋져 보이는 것이 최고. 그래서 사람들의 활동영역이 자기 고향을 벗어나지 못했던 옛날 보다 전세계로 활동영역이 넓어진 요즘사람들이 더 외모지향적인걸까?
사람을 깊이 알아야할 필요가 없는 가벼운 만남, 말조차 섞을 필요가 없고 그냥 거래만 오가면 되는 만남, 평판이 필요 없는 만남, 독서의 양이나 지식의 수준이 재어지지 않는 만남.
여행의 만남은 대체로 그러하고 그럴때도 썸바디이고 싶은 사람,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은 외모 치장에 바쁜 걸까? 공항에는 명품솹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그걸로 치장을 하며 낯선 곳에서 썸바디이고 싶어하는 걸지도...

다음은 영국령이었던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의 청년의 영국 유학이야기.
넘 똑똑해서 총독의 눈에 띄어 영국에서 몇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온 마사이족 청년이 유목민인 종족이 이동해버려 자기 식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몇달을 엄청 고생해서 찾아가자 자기들한테는 생존 스킬인 유목민 경로찾기를 못하는 이청년이 바보가 되어 돌아왔다고 마카이족사람들이 한탄하는 스토리. 
미국 살다가 한국을 갔더니 예전에 한국에 살때 안 보이던 것이 보이며 실망한다. 미국에 다시 돌아오면 한국의 좋은 것들이 생각나고 만족하지 못한다. 여행을 하고 견문이 넓어지는게 우리에게 과연 무얼 주는 걸까? 만족하지 못하는 영역을 자꾸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사이 청년이 영국에서 배운 신문물이 유목생활의 동족에게 도움이 될까? 영국을 잊지 못해 돌아간다면 조국과 가족을 등지고 떠남은 또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40살부터 대학과 방송에 걸쳤던 잡을 관두고 이탈리아, 밴쿠버, 뉴욕, 부산, 서울 이렇게 이동하며 살아온 작가는 이주와 여행 사이의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여행 중에 다시 여행 하고 싶은, 여행 중의 삶이 다시 일상으로 다가오는 그 시점에 대해 말하면서 일상의 부재인 여행의 맛에 대해 말한다. 소설 또한 우리에게 그걸 제공하고 김영하 작가에게는 소설, 여행은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 어린 시절의 이주 경험으로부터 프로그램된 삶 그 자체인 것.
여행할 때나 소설을 읽을 때나 드라마를 볼 떄나 비슷한 기작이 일어나는데...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중략...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이런 여행은 깃발 여행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으며 짧은 단기여행으로도 안 될거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행은 커녕 집 밖도 못나가는 이 시점에 이런 책을 읽다니...
그러나 이 책 읽기로 내 경험이 통합되고 뇌를 사용하며 사고력을 깊이하는 그런 활동은 충분히 한 거같다. 김영하에게로 겉핥기식 여행을 했달까...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기대를 갖게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