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2일 금요일

크리스찬의 시간 활용

집콕 하면서 요즘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성경읽기와 기도에 쓰고 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평생의 습관이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하루 24시간의 일부가 아니라 하루 중 에센셜한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회사 다니는 큰딸이 집에서 아래층에 내려와서 식탁에 앉아 식구들이 다 모이길 기다려 밥먹는 이 시간이 꽤나 시간을 가져간다고 하더라. 회사에서 카페테리아에서 음식 집어와 일하며 먹는거랑 다르다고....다 차려 넣은거 먹기만 하는데도...) 을 빼고 남는 시간에서 할애하는 시간이므로 제법 많은 포션이다.

그런데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조금만 늦어도 뒤쳐지는데 2000년전쯤 쓰여진 성경책을 보며 그것도 이미 알고 있다 여겨지는 내용에 매일 매일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며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쟁을 쫒아가고 뒤쳐지지 않을 수 았을까?

꾸준히 해보면서 나의 답은 그래도 해야한다 이다.

올해로 7, 8번째 성경 통독을 하고 있는거 같은데 처음엔 어디서든 성경 구절을 조금이라도 접했으면 크로스아웃을 해가며 정말 일독을 하는데 급급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성경에 담겨 있는 지혜가 내 삶의 근간을 탄탄히 잡아줌을 느낀다. 
그 힘으로 나머지 남는 시간들을 방향성을 갖고 쓸수 있음이 얼마나 유익한지....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보낸다. 놀아서, 유용한 일을 안 해서 낭비가 아니라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 흔들리는 시간들이다. 또 불안과 염려로 소비되는 시간들이다.
내게도 그런 시간들이 많았는데 특히 나의 석사과정 2년이 그러했다.
그걸 하느라 시간과 돈을 쓰고 나의 건강과 가족의 삶도 어느 정도 희생시켰던거 같다.
뭔가 하지 않으면 뒤쳐질 거 같고 가정주부의  삶은 내 옷이 아닌거 같고....막연한 불안감과 방향모를 열심과 성실. 그렇게 시작된 공부였다.
내 인생에 그때처럼 잠을 적게 자고 열심히 살았던 적은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그냥 낭비되는 시간이었음을 할수 없이 인정해야한다. 
둘째가 태어난지 백일도 안되었을 때 GRE 시험을 보고 ( 그때 책보면 눈 안좋아진다 했는데 신경 안썼다. 다행히 지금 내눈은 좋다.) 육아와 공부 두마리 토끼를 잡느라 꽤나 허걱거리며 애를 썼었는데 지금 그 시절이 내게 가져다 주는 보상은 거의 없는거 같다. 마이너스를 꼽으라 하면 꽤나 길게 리스트를 쓸 수 있다.
그 때 2년차때 장학금을 신청 했었는데 처음에 안 되어서 하나님의 뜻인가 포기하면서도 아쉬워 담당자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게 주효했는지 다시 받게 되어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의 뜻이 뭔가 참 아리송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공부를 해도 내영광을 위해서고 안해도 나를 위한 것아므로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들어갈 여지가 없었든듯....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막바지에 이를쯤 세째를 임신했고 나는 더이상 선택과 갈등의 여지가 없이 전업 주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석사학위증 종이 한장  남긴거 이외엔 아무런 결실 없이 날라간 2년. 돈도 많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쏟았고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간이었건만 얻은게 별로 없는 시간들이었다 

방향성을 잡아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낭비되는 시간들을 모아주고....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지금도 그런 시간들이 많고 앞으로의 미래의 내 시간들에도  송두리째 2년을 열정적으로 날려버린 것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걸 생각하면 하루의 1시간반의 시간은 전혀 길지가 않다. 경쟁에 뒤처지는 시간 소모도 절대 아니다. 
삶의 에너지를 주고 의미를 부여하며 방향성을 잡아 나가는 시간들. 그날 일어날 일들에 좀더 성숙한 인격체로 반응하고 나아가게 할 시간들이다.
그리하여 그 시간들은 나의 삶과 또 그 시간들이 이끌어줄 영생까지의 시간을 조명하며 나를 조율하고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들이다.
잘 살고 싶다. 하나님 안에서 현명하게, 지혜롭게 잘 살고 싶다. 그 하루의 시작을 쏟는 1시간 반의 시간부터 잘 살기를 소망한다.~

마침 오늘의 말씀 묵상이 이런 생각과 딱 연관이있다.

사울의 삶과 죽음
 머리 아파가며 참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 삶인데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주빛 좋은 옷을 입혔고 금장식을 달아주기도 한' 왕인데 그의 삶의 마지막은 결코 아름답거나 선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적군의 성전에 시체가 걸리는 죽음. 하나님을 조롱하는 그들의 먹이가 된 죽음.
우리가 모든 수고와 열심으로 이 생을 살다가 이런 결과를 맞는다면 어떠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들들 손을 잡고 축복해주며 하나님의 축복이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라며 하나님 품 안에 안기는 죽음. 
야곱같은 믿음의 조상들, 그들의 삶도 만만치 않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그러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들이 하나님 옆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죽음은 삶의 낭비, 삶의 허비를 보여주네요.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하나님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면서 고통하다가 비참하게 죽습니다. 열매 없는 소비의 삶.
영생에 이르는 삶에 집중하며 허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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