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는 독서를 좀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책은 손도 못대고 성경 읽기로 바빴는데 분량이 많다보니 정말 대충 대충 읽게 되어서 연대를 꼼꼼이 짚어보지 못한지라 목사님의 강의로 배운건 많았지만 연대순 성경 읽기로 특별히 큰 유익을 준거 같지는 않았는데 진도가 밀려 몰아치기를 하면서 읽은 신약에서 느낀 점이 컸다.
예수님 살아 생전에는 제자들이 3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하면서도 정말 멍충이들 같이 예수님 말씀 그리도 못 알아들었는데 예수님 부활하시고 승천 하시기까지 40일, 그 이후 성령의 불이 내려오기까지 10일. 이 50일 동안 너무나 바뀐거다. 1095일동안 안되던 것이 50일 동안에 되어진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겪었기에 그 소망으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긴 것은 그 전부터도 이해가 되었는데, 성경에 대한 이해가 발전한 것이 놀라웠다. 예수님 살아생전에는 어부 출신다운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스칼라가 된 것같은 이 변화는 어찌된걸까?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야고보서 모두 유려한 글과 말씀으로 선포하는데 그 깊이와 그 이해도 그런 것이 놀라웠다. 성경공부 시간에 배우기로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회를 주도하면서 율법을 폐하고 기독교의 근간을 세우는 인물인데 어찌 그리 변화할수가....그들이 구약을 꿰뚫으며 유명한 랍비들과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재끼는 이 탁월함은 어디서? 학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데? 이런 부분이 놀라웠다.
이 시대에는 무슨 광풍이 몰아치듯 기존의 것을 싹쓸어가고 새로운 신앙 체계가 세워진다.
신약의 많은 서신서를 쓴 바울. 바울은 사실 사도라지만 예수님을 직접 본 날들은 정말 짧은데 이 분은 어디서 또 이런 지식을 쌓았는지 사도들을 능가하며 성경을 풀어서 설명하고 곳곳에 제자를 세운다. 아라비아에서 3년 다소에서 10년 내공을 쌓았다지만 그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들은 또 어찌 알았단말인가? 제자들은 3년을 예수님께 듣고도 몰랐었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의미를 알거 같았다. 마가의 다락방에 불같이 내려온 성령이 이들을 사로잡고 성경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을 열어주셨다. 이 시기에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등 성령께서 곳곳에서 역사하시며 기독교의 체계를 잡아주셨다.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난 바울에개도 성령님은 역사하셨을 것이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하는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성령님이 여기저기에서 역사하심을 증거하며 이 부분도 그 시대에 큰 역할을 했음은 사실이지만....) 성경을 알게 하시는 것. 성경을 뀌뚫어 그 맥을 짚고 예수님으로 관통함을 알게 하시는 것. 그것이 성령의 가장 큰 역할이심을 알겠다. 성령의 힘으로 구약의 구름이 걷히고 모두한 목소리로 여기저기서 같은 얘기를 하면서 구습을 걷어내고 새술이 새부대에 담아졌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삼위 일체가 모두 나타나시어 이젠 우리가 구약의 계시가 이루어진 시대에 성경을 밝히 볼수 있게 된 시대에 살게됨이 감사하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성경을 이해하게 도우심에 감사.
그런데....
요한계시록. 여기서는 다시 답답해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대한 계시인지라 마치 구약시대에 메시아에 대한 계시를 보며 막연했을 그모습처럼 뿌옇게 된다.
구약에도 다윗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 경험한 인물이 있었듯이 하나님께 붙어있으면 조금은 실루엣이 보일려나.
지금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깨닿게 된 것으로 일단 기쁘다. 이제 성령님의 지혜가 나를 어디까지 이끄실지 기대하며 그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으리.
마음이 기쁨으로가득하기를~~~
답글삭제넵, 교회 용어로 성령 충만하기를 이라고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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