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3일 금요일

드라마 The Crown을 통해 보는 필립, 그의 삶

지난 4월 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이 99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The Crown을  시청 중이라 여왕 옆의 조연이었던 그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1921년에 그리스 왕가에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엄마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엄마는 한쪽 귀가 잘 안들리고 지적으로 느린 분이셨기에 요양시설로 가게 되었고 나중에 호전된 후에는 수녀가 되었다. 누나등 나머지 가족은 그가  하이 스쿨 보딩 스쿨 다니던 때,  비행기 사고로 한꺼번에 잃게 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는 1947년에 결혼 했는데 결혼 당시는 그녀는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5년 후 여왕의 부군이라는 조연의 자리, 결코 인생의 주인공일 수 없고 주인공을 보필하는 자리로 운명이 정해진다.
인생에 대해 꿈을 꾸고 운명을 주도적으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하는 자리였는데 자아가 강한 필립은 그 자리에 안착하기까지 갈등을 많이 겪는다.
한편 수녀가 되어 존재가 감추어졌던 엄마는 그리스 빈민촌에서 봉사하며 사시다가 80세가 넘어서 버킹엄 궁전으로 오는데 필립은 처음엔 그녀를 반기지 않지만 나중엔 그녀의 신앙의 영향을 받는다. 

더 크라운 에피 7에선  갱년기, 미들 라이프 크라이시스를 겪는 듯한 필립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고 여왕의 옆자리를 지켜야했던 그는 닐 암스트롱등 우주인들이 달에 첫발을 딛는 모습에 흥분하며 그 스스로가 파일럿이기도 하기에 더욱,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간 그들에게 매료된다...그리하여  그들이 버킹엄 궁전을 방문하자 따로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자리를 만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그들을 맞이하는데...
막상 그 영웅들을 만나보니 그들은 그저 쉽게 감기에 걸리고 버킹엄 궁전 생활에 호기심을 갖고 흥분하는 평범한 청년들인데다가 달에 발을 딛고 지구를 보는 그 역사적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냐고 질문하자 위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프로토콜을 따르기에 바빴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필립은 여기서 깊이 실망하며 '저런 성취를 하며 살았어야하는데' 하는 자기 인생에 대한 후회를 접고 인생을 새롭게 보게 된다. 달나라를 정복하는 인간이라지만 거기 갔다고 인간이 위대한 것도 아니고 생명을 걸고 도전한 달나라는 그저 더스트 덩어리일 뿐이고.... 자기가 못가본 길에 대하여 안달하며 동경했건만 그 길을 간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들은 오히려 필립의 삶을 경이로워하고....이때 .필립은  엄마의 너의 faith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인생에서 거두어지지 않는 허무에 대하여 깊이 느끼며 사제에게  help를 구한다. 
이런 필립의 삶의 여정을 보면서 재밌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의 모습이 가정에서 2인자로 살아가는 주부들의 모슴과 많은 부분이 겹쳐져 보인다는 것.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느라 자신의 꿈을 잊었던 여자들이 바쁜 시간을 지나고 40대 후반쯤 되면  갱년기와 함께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들. 희생의 삶이 억울하고 인생 헛살았다 싶고 좀 방황하게 되지 않나싶다.
그러다가  꿈을 쫒아가는 삶도 벌거 없다는걸 깨닫게 되는 나이가 50줄 들어서 중반을 넘어가면서가 아닐까 싶다. 남편들이 은퇴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자기 일을 갖고 있는 여자들도 건강의 문제를 호소하기도하고 더 이상 올라갈 데도 없고 내리막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인생이 참 별거 없다고 느껴지는 때. 
필립이 하인 중 하나가 관둔지 한참 되었는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가 어딨냐고 찾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나이쯤 되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흰머리 염색을 몇번씩 하고  눈이 침침한 그 나이쯤 되면, 비로소 알게 된다.
1인자로 살아본들 그 삶에도 큰 의미가 없고 삶은 이러나 저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못 가본 길에 대한 환상이 거두어지면서  자기 자리에 대해 만족하고 더이상 토를 달지 않으며 그 이후의 남은 인생에 대해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보게된다. 즉 철이 든다.

필립은 그렇게 나머지 반의 인생을 살다가 병원에 한달 입원했다가 윈저성에서 24일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9988234는 아니지만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 심장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한두달 아프고 돌아가셨으니 부러운 복받은 인생이다. 인생 중반에 크리스찬으로서 신앙을 회복하고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로 기독교인의 모범이 됐다"고 평가를 받았으니 정말 복 받은 인생이다.

로얄 하이니스나 평범한 나나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비슷하구나 싶다. 경험치는 다르겠지만.. 
나도 이젠 블링블링한 것들, 데즐링 한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철든 어른으로 살아갈 나이가 되었고 중심에 서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주어진 나의 인생과 화해를 하고 잘 지낼수 있는 나이가 된거 같다.


댓글 4개:

  1. 여왕옆에서 이인자로살기도쉽지않았을거야 국적까지포기하고 자기뜻대로 켤혼식도 못정하고~~ 그렇지만 장례식은자기하고픈대로 그게진정한 위너가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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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에 대충 써서 방금 전 사진도 올라고 손을 좀 봤어요. 다시 함 읽어보면 좀더 정리된 글일겁니다. 조연의 삶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였지요. 의지 강하고 남성적이고 충동적인 면도 있어 나쁜 남자 성향이 강하나 섬세하고....상처도 많은 가정환경이구요. 왠지 저는 넘 공감하게 되더라구요.시즌 3 잘 만들었어요. 필립역 배우는 배우 선정도 잘 한듯해요. 여왕은 계속 적응이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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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작가는 평범한 것도 비범 하게 보고 또 새로운 가치도 부여하나 보다.
    글 잘읽었어.
    신문 잡지에 소개한 그의 어떤 스토리 보다 더 머리에 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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