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욥기 33~37장 엘리후

엘리후는 욥의 세친구와는 다른 견해를 보입니다.
욥의 세친구는 욥이 죄가 있을거라 정죄했고 욥은 그런 친구들에게 화를 내며 나는 이렇게 벌 받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변론을 해왔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인과응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일어난 일에 대해 친구들처럼 뭔가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죄가 욥에게 있을거야라고 종교적 틀 안에 갖힌 생각에 매여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더 시선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하실거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욥기(욥) 36장 -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 맞추는 이 견해는 욥기 1장에서 이 고통이 시작된 이유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맞는 말인 거 같아요.

하나님의 공의를 욥의 의로움보다 상위 개념으로 두기에 그 이해를 위하여 친구들처럼 욥의 잘못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권선징악의 틀안에 가두지 않고 더 넓게, 더 광대한 뜻 안에서 보려고 합니다. 

엘리후가 스스로 젊다고 얘기하는데 그래서 생각이 더 열린걸까요? 창조주 하나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 그러나 공의로우시고 지혜에 가득차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옮깁니다.
36장 말미부터 시작하여 37장에 이르는 하나님에 대한 엘리후의 말들은, 38장, 39장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일깨우는 부분과 비슷한 면이 있는 듯해요.

즉, 이 욥의 고통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인간을 뛰어넘는 엄청나게 다른 분이시니 알기 어렵고 인과응보의 틀 안에 메이신 분도 아니시다. 그러나 공의로우시고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엘리후의 주장인거 같아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확대되는 느낌이예요.
벌주고 복주는 신에 대한 개념.우상숭배에서 조금 더 쎈 신 정도로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개념애서 훨씬 넓어지고 광대해진 느낌.
이것이 욥기로 알게 되는 또하나의 축복이구나 싶어서 이번 성경통독애서는 욥기로 은혜를 많이 받네요.
'인간이 만든 신' 우상의 신에 대한 개념과 차별화되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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