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책 표지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드는 이 소설은 아마존 밀림에 사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존 밀림에 사는 노인이 연애 소설을 읽는다고?
여기엔 사연이 있다. 이주민 백인 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14살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곧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여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면서 고향마을을 떠나게 된다.
어린 부부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곧 우기가 찾아와 살 길이 막막해지는데 이 대책없는 부부를 수아르족, 원주민 인디오들이 도와준다.
그러나 행복의 시간은 짧았고 아내는 두해를 넘기지 못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상처를 안은 채 수아르족과 더불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며 살아가던 그는 어느 순간 연애 소설 읽는 취미에 빠지게 된다.
역경과 고난을 뜨거운 사랑으로 이겨내고 해피 앤딩을 맞는 줄거리의 연애소설을 달달 외우도록 읽는 것.
그래서 그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 된다.
이 노인의 지나 온 삶의 궤적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노인의 또하나의 독특한 아이덴터티는 백인임에도 수아르족의 언어를 일아듣고 그들의 생존 방식, 생활방식을 잘 안다는 것.
이 특성때문에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의 삶에 방해를 받게 되는데 소설은 이 노인이 연애소설을 구하려고 읍 규모의 마을, 엘 이딜리오에 내려왔다가 살해당한 백인 시체가 강을 타고 내려온걸 발견하여 소동이 난 현장에 함께 있게 되면서 시작된다.
마을의 읍장은 수아르족의 짓이라고 단정을 하는데 노인은 상처를 살펴보고는 사람이 아니라 살쾡이의 짓임을 담박에 알아챈다. 밀엽꾼의 총에 자식들을 잃은 암살쾡이가 사람을 해친것.
분노에 찬 암살쾡이는 매우 위험한 동물이 되어 이 마을 주민들을 해칠수 있으므로 읍장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져 소탕작전에 나서게 되고 노인은 어쩔수 없이 그 팀에 가담하게 된다.
그런데 노인은 마구잡이로 새끼들을 죽인 밀엽꾼의 처사를 몹씨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노인은 수아르족의 사냥규칙을 떠올렸는데 그들은 어린 새끼들은 죽이지 않는다. 특히나 살쾡이는 영리하고 위험한 동물이므로 일년에 한두마리 잡아 가죽으로 장식품를 만드는 이상의 살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밀엽꾼은 살쾡이 가죽으로 돈을 만들려고 어린 새끼나 어른이나 닥치지 않고 총을 휘두른 것이다.
이 소설은 환경문제 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노인을 통하여 수아르족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읍장, 밀엽꾼, 이주민들, 노다지꾼들이 얼마나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며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지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 소설의 크라이막스는 밀림에서의 암살쾡이와의 대결.
읍장과 무리들은 총만 믿고 만만히 봤던 암살쾡이에게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마을로 돌아가고 노인 혼자 일생 일대의 사활을 건 암살쾡이와의 일대일 대결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노인은 암살쾡이가 바라는 바가 복수와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죽음임을 알아채게 된다. 자식들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절망적인 어미의 행보를 알아채는 노인.
그것을 알 수 있는 노인 또한 비슷한 심정인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살아가기엔 참 역겨운 세상에서 이 노인은 암살쾡이의 그 비통한 마음을 알아채는 것.
작자해설에서 번역자는 암살쾡이와 노인의 대결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의 물고기와 어부의 대결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노인은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갖고 귀환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보여주는데 이 소설은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노인과 암살쾡이의 교감을 보여준다.
자연은 우리가 싸우고 정복해야할 대상인가, 서로 배우며 공존하며 살아야할 대상인가를 묻는다.
이 책이 " 삶의 발명" 이라는 책애서 언급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는 이마존 일대가 자본주의에 의해 훼손되고 주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었다고 얘기한다. 그리하여 적당한 선을 지키던 인간과 야생동물 서식지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바이러스의 경계도 무너지고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의 노인과 암살쾡이의 교감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작가의 풍부한 삶의 경험으로 녹아낸 소설이라 아마존 지역,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그 지점의 삶을 깊이 있게 보여주며 환경과 문명의 충돌이 코로나와 환경문제 발생으로 임계치를 넘어서는 듯한 오늘날의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지혜로운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소설 중 여기에 밑줄을 그었는데,
" 그 사이 차츰 밀림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주인없는 푸른 세계에 매료되어 마음 속에 간직해 오던 증오심을 잊었다.
그는 배가 고프면 가장 맛있는 과일들을 골라 먹었다. 움직임이 늦어 보이는 물고가는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숲 속애서 동물의 발자국을 쫒다가도 구미가 당기면 화살을 쏘아 잡았다. 밀림의 밤을 느끼고 싶으면 카누 위에 몸을 눕히고 친구가 그리울 때면 수아르족을 찾았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자연 속애 함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애서 설익힌 과일을 먹는게 아니라 나무애서 직접 따서 잘 익은 과일을 먹는 것.
갓 집은 물고기와 고기류의 싱싱함.
밤하늘의 별빛들의 눈부심.
이런걸 느끼며 사는 기간이 내 삶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
문명을 떠난 위대한 자연 속애서 충만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자연속에 충만하신 하나님.
욥기를 읽으면서도 느낀 부분인데, 하나님께서 정성껏 만드신 자연을 인간은 너무 파괴적으로 개발하고 망쳐온 거 같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어떤 생물도 멸종의 위기를 맞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쾡이, 두루미, 고래, 등등 그들에게서 하나님이 심어주신 지혜를 발견하며 그들을 존중하며 서로의 삶의 영역을 인정해주며 그렇게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민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이 총을 휘두르고 힘과 권력을 마구 내뿜는 무지막지한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을 잘 다스리고 경영하며 상생을 아는 지배자였더라면 오늘날의 환경 위기, 자연과 인간이 공멸하거나 혹은 인간은 사라지고 동물에게 이 지구를 내어주는 미래를 생각하며 두려워하지는 않았을텐데 싶다.
이 책, 환경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다.
노인과 바다식으로 자연에 접근하는 것, 정복의대상으로 지연을 보는 것, 이제는 그쳐야할 거 같다.
10여개국에 번역된 유명한 소설답게 재밌게 잘 쓴 소설이다.
잘 읽었어요.
답글삭제오소리를 잡아먹는 친구를 어찌해야하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나에게도 권해서 ㅠ
와. No No. 절대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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