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책 읽기 : 바울은 성차별주의자인가 : " What Paul really said about Women" by John Temple Bristow

이 책은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남자에게 복종해야하며 교회에서 잠잠해야한다는 내용들에 대하여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를 고민한 남자 목사님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바울의 서신서는 그릭어로 쓰여져 있는데 저자는 영어번역본 성경을 그릭어로 다시 옮겨보면 원본의 글과 전혀 다른 단어들을 쓰게된다는 점에서 그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어들이 갖고 있는 여려가지 의미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번역당시의 사회의 풍습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제한된 인식으로 인하여 왜곡되이 잘 못 전달된 것이 너무나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때로는 여자를 열등하게 여기는 거 같다가,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하여 동등한 존재라고도 하므로 모순된 주장을 펼치는 거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많은 부분이 번역의 오류나 우리가 그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잘 못 이해하는 것이며 바울은 일관되게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자는 먼 옛날,  서구 사회의 여자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부터 시작한다.
남자와 같은 동급의 인간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열등한 존재로 남자와 동물의 중간 정도로 인식되었고(소크라테스) , 또한 남자를 유혹하여 악에 빠뜨리는 존재이므로 경계하고 멀리해야하는 존재(스토아 학파, 금욕주의: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성적인 유혹에 잘 빠지는 존재라고 하는데 남자들이 자신의 약함을 여자들 잘못으로 뒤집어씌우는 느낌?)로도 인식되었다. 활동 범위도 집안에만 국한되고,  권리도 자유도 없었다.
소크라텔레스-플라도-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남녀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남성 중심이었다. 남자는 두뇌와도 같고 여자는 두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손발, 바디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집트, 스파르타, 로마등은 남녀가 좀 더 동등하고 집밖을 나가 사회 활동도 하는 사회였으나 학문적, 철학적인 기반이 약했으므로 철학이 왕성했던 그릭 아테네의 영향을 받아 여성 열등 사상이 이들 사회에 전파되었다. 로마의 학생들은 그릭 철학자 선생님들에 의해 교육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우므로 피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던 유대 사회, 로마 사회의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에도 여자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1. 남편은 아내의 머리
머리,head로 번역될 수 있는 원어는 boss, ruler, leader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cornerstone, foremost, 사람의 몸의 머리 등 포지션상 제일 앞이라는 단어의 두가지가 있는데 원어는 후자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의 리더거나 보쓰라는 의미가 아니며 단지 앞장서는 존재, 주춧돌 같은 역할의 존재라는 것이다.

2.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be subject to
원어는 obey 의 뜻의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군인이 대열에 돌아가 자기 역할을 다할 때와 같은 상황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서열짓기의 개념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고 동등하게 자기의 직분에 맞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전체를  지원하고 써포트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love
사랑의 여러가지 그릭어중 아가페의 사랑이고 이 단어는 위에서 복종하라고 번역된 원어와 큰 차이가 없는 뜻을 지닌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상대방의 요구에 응하고 serve하고 care 하라는 의미이다.

즉 아내와 남편은 남편은 머리요 여자는 복종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남편은 주춧돌 같은 역할을 하고 아내는 아내대로의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서로 살피고 케어해주는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문화적인 한계상황에 의하여 잘 못 해석되고 있는 부분을 살폈는데 바울은 유대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예배 형식을 갖고 있었던 여러 이방 사회에까지 전도를 하였으므로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성차별로 보이는 것들이 그 시대의 배경을 알고 살펴보면 사실은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여성의 동일함의 반영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1. 여자여 잠잠하라 : silence
벙어리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조용히, 캄 다운하라는 말이다. 집 안에 갖혀 공공 장소에 나오지 못했던 여자들이 아주 가끔 나오게 되면 토론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므로 흥분되어 질서 없이 떠들고 큰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대하여 " Please do not talk during the prayers." 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그런 표현을 한 것이지 여자는 교회에서 아무 발언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자들에게 예언의 은사나 가르침의 은사는 전혀 주어지지 않아야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사도행전에 보면 아들과 딸들에게 동일하게 예언의 은사가 주어졌다.

2. 남편에게 물어라
아내는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에서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던 사회였으므로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는 대화할 수 없던 사회였던 것을 이해하면 남편에게 물으라는 가르침이 나온 이유를 알수 있다.
또 그릭 사회의 종교 관습상 성전에는 많은 창녀들이 있었으므로 교회의 여자들에게 말하는 남자는 설령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는 괜한 오해를 받을 소지도 많았다.
따라서 크리스챤 여성에게는 창녀와 구별되는 몸가짐과 옷차림등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요구되었고 바울의 서신서에는 그에대한 가르침이 있다.
또 유대회당은 메인홀에는 남자들만이 모일 수 있었고 여자들은 바깥의 계단으로 올라가서 위에 가려진 공간에서만 참석이 가능했었고 그런 시대에 바울은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하였던 것 자체가 그 시대상황에서는 유대지방이던 이방지역이던 간에 충격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예언의 은사 등이 여자에게도 있었으므로 예배의 참석뿐아니라 예배의 리드 또한 허락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구습과 새로운 예배의 가치관 충돌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하여 남편에게 물어라라고 한 것이다.

3. 아담이 먼저 지어졌고 이브가 나중에 지어졌으며 이브가 유혹을 받아 죄를 짓게 했다.
이 부분은 누가 더 나은 존재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만연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쓴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최초의 인간은 자웅동체였고 반으로 갈라져 아담과 이브로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선악과를 딴 이브의 행동을 선하다 보고 지식을 갖게 되어 인류의 큰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찬사했다. 이러한 영지 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창세기를 불러내어 설명한 것이지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우월한가, 죄를 더 많이 지었는가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여자는 남자의 영광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여자는 아담의 뼈로 만들어져 아담의 부수적인 존재로 아담의 자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죄의 유혹에 빠져 아담을 죄짓게 했다라는 것이 그 당시 만연했던  창세기의 해석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첫째로 여자가 남자의 부산물로 만들어지고 남자를 죄짓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자는 남자의 영광임을 강조한다. 또 둘째로 남자가 혼자 홀리하게 잘 살수 있는데 여자로 인하여 죄에 빠지게 되므로 여자는 남자에게 불필요한 존재인양 품하하는데 사실은 남자는 여자가 필요했기에 창조되었슴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함을 강조한다. 또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동일한 창조물임을 강조한다. 

5.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시내산에서 내려올때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를 쳐다 볼 수 없었고  모세는 베일을 써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렸던 것에서 시작되어 유대인들은 예배시에 남자들도 모두 머리를 가렸다.
여자들은 밖에 나갈 때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가리게 하였고 머리를 내리면 유혹을 하기 위함이라 생각했고 창녀라 여겨졌다.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내리면 오늘날 웨딩링을 던져버리는 것보다도 더 큰 이슈가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방사회는 관습이 달랐고 로마시대는여자들은 머리를 길렀으나 창녀들은 머리가 짧았다. 이처럼 머리를 가리는 것과 헤어스타일이 다른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바울은 가이드라인을 주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남자들에게는 모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므로 즉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이므로 남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여자들에게는 당시 관습으로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이 관습상 남편을 모독하는 일이었고 이방 풍습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과 마찬가지이므로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머리의 길이와 수건에 그러한 의미가 없으므로 개신교에서는 자유롭게 하였다.

6. 결혼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결혼하지 않으면 성인의 남자로 여겨지지를 않았고 결혼과 자녀의 양산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의 상징이었다. 강간과 간음은 죽음의 벌로 다스려졌다, 혼전 순결은 중시되었으나 도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부의 부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결혼하여 자신의 혈통을 잇는 재산상의 가치의 개념으로 중시되었던 것이고 남자들은 창녀에게 가는 행동이 전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었고 일부 다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맥락으로 볼 때 도덕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이방 사회도 마찬가지였고 로마 사회는 창녀들이 합법적인 직업군으로 인정되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드나들던 사회였으므로 이런 성적인 문란은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고 어지렵혔다. 한편 스토아 학파는 아예 즐거움을 주는 어떤 행위도 부정하게 여기며 금욕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런 사회 상황에서 바울은 그 당시 창녀들이 들끓었던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며 도덕의 개념으로 성에 대하여 가르친다. 당시는 크리스챤에게 고난이 예정된 상황이었으므로 가족에 대한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며 성적인 빠지기 쉬울거 같으면 결혼하여 유혹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부다처가 그 당시 크리스챤 사회에서도 불법은 아니었으나 한 남편과 한 아내가 좋다고 가르치고 자녀는 꼭 낳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즉 여자를 후손 양성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 아내와 남편을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에 비유하며 결혼의 순전함과 관계의 동등함과 하나님의 선물인 성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당시 사회의 어느 철학과 종교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남자가 동등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에 의한 초기 교회 안에서 남녀의 동등성은 여러 다른 교회 초기 문건에서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살펴 본 것은 위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는 다른 해석으로 뒤바뀌어 마치 바울이 성차별주의자인양 비추이게 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준다.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수용이후로 기독교는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그리이스 철학의 사상, 헬레니즘의 영향등이 스며들게 되고 여자와 성을 거룩함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어거스틴과 같은 교회 지도자는 결혼을 부정했는데 이러한 지도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추종 철학자들 등의 영향으로 성경의 바울의 글들이 재해석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았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권위를 인정하는 입장을 지녔다. 아퀴나스는 이브는 아담을 돕는 자로 지음 받았는데 가장 중요한 도움이 아담의 후손을 낳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의 다른 도움은 남자로 부터 받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노예와 여자를 거의 같이 취급하는 사고를 나타냈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아이를 낳는 존재로서 남자의 우주는 온 세상이요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있지만 여자의 우주는 오로지 남자요 남자에게 존속되어지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계속적으로 이어져와서 바울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도 변질된 채 가르쳐지고 있는 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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