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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책읽기 59 : 사랑의 과학, 행복한 부부관계에 관한 과학적 연구 : 갈등상황 대화법으로 이혼 가능성을 정확히 예견하는 사랑에 대한 과학적 접근


이 책은 실제로 수식을 써서 사랑의 방정식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 학술책과 일반인 서적 중간 쯤 위치한 책인 듯하다.
연구 많이 한 사람이 쓴 책 중에는 이런 책들이 좀 있는듯하다. 전문인이 아닌 나같은 일반인들이 따라가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많이 스킵했다.
그래도 연구에 대한 신뢰도를 확인 할 수 있는 점애서는 좋았다.

이책을 읽게 된 계기는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를 비롯 몇몇 책애서 이 사람의 연구에 대한 언급을 보았기 때문.
이 분이 만든 러브랩의 리서치에 의하면  부부가 갈등 상황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15분만 지켜보면 6년뒤  이 부부가 이혼에 이를지 행복한 결혼을 이어갈 수 있을지 판별이 가능하다는 것. 그 적중률이 100%에 가깝다는 것. 심지어 결혼을 지속하되 행복하지 않은 부부의 예측도 가능. 적대적이기민 하면 결혼을 유지하나 적대적이면서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 ( detached) 이들은 대체로 평균 16.2년 만에 이혼.

이 분은 사랑의 감정을 수식화하여 표현하는 법을 계발했는데, 이렇게 수식화돤 연구를 하기 이전아지는 심리학자, 상담자의 직관에 의해 부부 문제를 풀고 때로 그에 대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었는데 객관적이지 않고 오류가 많았다고 .이 분 시대부터 여기저기의 동시대적 연구로, 또 컴터의 발달로 감정을 과학으로 접근하는 객관적인 심리학 연구의 시대가 펼쳐진 것. 

오류의 예로 소개한 이론 중 하나로 보상이론. 부부는 서로 보상을 해주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이론
얼핏 들으면 맞는 얘기 같고 당장은 관계가 호전되는 듯했지민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나빠졌다고.  사실은 보상을 바라는 기브 앤 테이크 관계는 거래관계이지 사랑과 신뢰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 무조건적이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지지와 헌신이  있는 부부관계가 더 안정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

어떤 이론이 시간이 흐르면 오류로 밝혀지는 일들이 교육학이나 심리학등애서 종종 일어나는데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너무 다양, 복잡하고 객관적인 데이타 수집과 분석등의 과학적 접근이 어려웠는데 이 책에서는 수식으로 그래프를 그려가며 증명해보인다. 근데 그걸 따라가며 이해하기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어렵다.

엄청난 끈기와 집념으로 연구를 하는 저자는  책에서 밝히길 자신의 부모님이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이혼의 위기 속애서 고통 받았기에 이 주제 연구에 몰두하여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고. 이 분은 아내와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듯하다.

이 책 내용 중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헐 점은 대화를 시작하고 진행해갈때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것과 부정적인 부분의 비율이 5:1 이면 이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
1:1 이면 위기이고 0.8:1 로 떨어지면 이혼한다는 것.

이것은 부부의 대응방식이 갈등회피형이든 다혈질형이든, 수긍형이든 상관없었고 (상식적으로는 갈등회피형은 문제를 피하고 그때 그때 해결하지 않으니 안 좋다고 생각하고 다혈질형은 문제를 크게 만들어 안 좋다 생각하고 수긍형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아미라고 한다) 어떤 형이든 긍정적과 부정적 반응의 비율이 5:1 이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자녀도 잘 자랐다. 이 세 유형의 감정 표현법, 독립성을 원하는 정도, 정직성, 의견불일치와 갈등을 즐기거나 싫어하는 정도 등 다 달랐지만 모두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유지했다.

부정적 대응이 고착상타가 되면 아혼으로 가므로 피해야하는데  부정적 대응의 4가지는 비난, 방어,경멸, 담쌓기

감정코치형인간과 감정일축형 인간 유형의 다른 점을 보면 분노란 감정에 대해 코치형은  목표가 가로막힌 데 다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고 목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일축형은 폭발, 통재력 상실, 공격이라고 여겼다.
슬픔에 대해서도 일축형은 자기연민, 무기력, 수동적, 소극적이라믄 표현을 했고 코치형은 삶애서 무언가가 사라진 상태로 보고 무엇이 사라졌믄지 알아내기 위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보았다.
두려움에 대해서도 일축형은 비겁함, 활동하지 않는 것, 겁내는 것으로 코치형은 자신의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응이고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더 안전하게 만들지 궁리한다고.
즉 감정일축형은  감정을 가치 두지 않고 일축해버리나 코치형은 감정을 잘 이해하고 소중하 다루는 듯하다. 

또 아무리 긍정형인간이라해도 사람이 기분 좋은 상태는 대충 50% 정도라 할때 부부 모두 기분 좋을 확률은 25% 로 줄어든다.
여기에 하루 중 30 % 정도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 둘이 다 기분 좋을 확률은 9%로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감정의 '보수' 작업이 필요한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 은 매우 효과적인 보수 방법이다.
'"이게 다 당신 잘못은 아니란 거 알아.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
문제 해결 방법을 놓고 토론하는 것 같은 인지적 보수는 별 효과가 없고 감정적 보수들 즉,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이해해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등이 효과적이다.

또 사람은 특정 감정에 대하여 복잡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라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초감정 철학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버릇이 나빠지게 하고 자만하게 한다고 우리 옛어른들이 믿었던 것. 같은 그런 것.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을 건전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울면 안돠고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안 좋고 등등.
이러한 감정의 불일치 정도로 80프로의 정확도로 이혼 여부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초감정이 다르면 갈등 해소 방법으로 선호하는 것도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을 얘기를 나누어야한다.

또 갈등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 갈등은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다. 관리해 가야한다. 
생리적 각성상태,  혈압 맥박 호흡등이 과다하게 빠른 상태일때는 의학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거나 공감하는 능력애 장애를 겪으므로 그런 상태를 파악하면 기대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애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심장박동 분당 100회 이상, 산소농도 95프로 미만)
말하다보면 이런 상태를 맞게 되는 경우 있는데 이때는 휴식 시간 20분 이상을 갖고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가서 아무 생각하지 말고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목욕, 명상을 한다.

진단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지외

우리는 끝난 일은 잊지만 끝나지 않은 일은 계속 기억해내므로 후회할 일이 일어났다면 처리하고 끝을 맺는 것이 좋다.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다. 그럴 경우엔 배우자에게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배우자의 성격을 인정한다는 점을 표현한다. " 나는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하지만 조금은 바꾸려고 노력해줘." 이런 접근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공유하는 가치 체계 꿈 인생의 의미를 갖고 지지한다. 신뢰를 쌓고 헌신하고 정성을 다하는 관계를 만든다. 사랑의 관계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에너지를 계속 쏟아부어야하는 시스템이다. 계속 가꾸고 관리해라. 

사랑의 3단계
1. 황홀경에 빠지다
2. 신뢰를 쌓아가다 : 첫 2년간 일어나는 갈등과 화해를 거치는 단계 신뢰형성 방법은 두 사람 모두의 이익을 최대치 하는 방법으로 선택을 하면 좋다. 신뢰가 떨어지면 자기 손실을 줄이려 최악 중 최선을 택하고자 한다. 
신뢰를 쌓는 일은 상대방에게 가장 이로운 바를 머리와 가슴에 담는 일. 배우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배우자를 위해 곁에 있어주는 일.

3. 헌신하기로 결심하다.
부부 중 한쪽이 뭔가를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제로섬 게임 관계에  있으면 신뢰가 아니라 배신의 관계로 간다. 이런 부부의 남편은 그렇지 않은 남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서로 윈윈하는 협력 관계가 아니라 제로섬 관계에 가깝다면 배신 척도가 상승한다. 
서로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며  손해, 이익을 따지지 않고 헌신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사랑의 3단계. 

친밀한 대화의 4가지 기술
1. 기분을 말로 표현한다.
2. 열린 질문을 한다. 
예)기분이 좋아? 나빠? 가 아니라 기분이 어때? 라고 묻는것.
3. 감정과 요구 사항을 털어놓게 만드는 말을 한다.
예) 그 이야기를 좀 더 해줘. 
4. 관용,공감, 이해를 표현한다.

이런 신뢰의 관계가 쌓여가면 상대방을 대체 불가능헌 고유한 존재로 여기고 정성을 다함으로 헌신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 헌신과 충실한 관계.

뇌과학적 연구들도 소개되는데 신경증 성향을 타고 났어도 뇌는 가소성이 있으므로 마음챙김 훈련등을 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으니 . 부정적 감성의 관성이 작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부정절 감성이 밀물 상태에 빠지면 남들 보기엔 긍정적인 배우자의 특성도 다 나쁘게 받아들이게 되므로 대화의 시작부터 긍정성을 키우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부정적인 일을 곱씹고 되새기는 것은 부정의 관성을 만들어내므로 털어버려야한다. 신경증 성향보다는 우호성의 성품이 단연 좋고 성실성도 영향을 미친다.
딸의 남친을 볼때도 이 점을 살피라.

사람들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는 법을 바우라. 평생을 이 연구이 바친 폴 에크먼 교수의 왭사이트를 찾아보라. pualekman.com
책은 얼굴의 심리학.
맥락에 민감하라.
지금 우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YES 라고 할게 라고 표현해라.
권력을 이용하거나 (부부간 권력은 50프로로 나누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권력관계가  공정하다고 둘다 느껴야한다.) 논리를 통해 yes를 이끌어내는 것은 일시적이다.
논리의 동의는 난 당신 뜻에 동의해. 당신 주장이 설득력 있으니까 이는 다시말해 내가 동의하는데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한 말과 행동에 동의하는 거야.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이 옳다고 나도 확신하기 때문에 YES 라고 말하는거야. 라는 의미다. 이런 동의는 일시적일 뿐 곧 사라지기 마련이다. 
일심동체로의 yes 가 헌신과 충실의 관계에 이른 모습이다.

사랑의 방정식으로 예측하는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먼저 방지하고 치유하는 것인데,
대체로 아이가 태어난  후 부부관계는 악화 되는데 (67%) 미리 2일짜리 워크솹에 참가한 부부 77% 가 예방 효과를 가졌다고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실험은 갈등이 일어났을때 20분 정도 시간을 주고 1. 잡지를 읽게 한다. 2. 상대방의 장점을 체크 리스트를 주고 체크하게 한다. 3. 상대방의 단점을 체크하게 한다. 의 세그룹으로 나눈 후 다사 대화하게 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1 그룹이 개선되었고 2,3 그룹은 같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기고 비디오 녹화를 보니 2그룹은 부정적 감정의 밀물 현상으로 장점을 체크하라 하였음에도 “너에게 무슨 장점이 있기는 한가” 이런 대화를 나누며 긍정적 감정을 이끌어오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즉 초기에, 부정적 감정의 밀물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 보수하는 것이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우선 이 책을 읽는 것은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영어본 초판이 2014년이므로 지금은 또 더 연구가 진행되었을듯하다.여기에 다 요약하지 못한 많은 내용들이 있다.

> 전문지구신혼 부부의 일주일 대화 시간은 평균 35분.  그나마 집안일에 관한 대화가 대부분.
> 갈등 회피형은 서로 멀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 뿐아니라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고.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서 관계회복에 실질적 도움을 줄 책이다.

예전 어느 유투브에서 들은 말도 생각났다.
힘든 상사와 잘 지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상사가 기분이 안 좋아서 부당하게 화를 내면 보통 뭐야 이 사람 이러면서 속으로는 기분이 나빠지나 아무말도 못하는데 이 사람은 “무슨 일 있으세요? ” 라고 걱정하듯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부당하개 그럴 분이 아닌데 화를 내는거 보니 뭔가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보내요? 라는 의미로 묻는 것.
이러면 화를 내던 상사가 잠시 자기 기분을 돌아보게 되고 부당한 요구를 줄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 상사가 자기 일을 터놓기도 하고 둘이 친한 관계가 된다는 것. 이거 좋은 방법인 듯. 신뢰를 쌓는 좋은 대화법이다. 반대로 평소보다 결재도 잘 해주고 기분이 좋으면 굳이 ‘부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 이러지 말라고. 그러면 상사가 ‘아 결재할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기분이 좋아서 결재를 하는구나 ’ 하고 알아차린다고. 이걸 거꾸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gottman.com  에도 실제적인 대화법이 많이 나와있다고 한다.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책읽기 7 논픽션 이어령님의 지의 최전선

오늘은 이어령님을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엮은 지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읽었다. 80이 넘은 학자가 컴터 7개를 놓고 최첨단 시설을 이용하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지식을 흡수한다고....넘 놀랬다. 난 이제사 전자책을 폰에 받아들고는 흥분하고 있는데....
그 책 내용을 쫒아가기엔 책을 안 보고 산 세월이 너무 많아 따라 가기가 힘들었고 또 워낙 하이퍼텍스트적인, 거미줄 얽히듯 생각이 생각을 잇는 글이라서 정리를 하긴 어렵고 그냥 단면들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

3B 가 독특한 생각을 해내는 창조의 원천이라는 글을 보았다.
Bus, Bath, Bed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어나오며 유레카라고 외쳤다는 일화로 보아 배스는 분명한 듯하고 암튼 책상앞이 아니라 오피스가 아니라 버스 안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떠오르고 자려고 베게에 머리를 대고 뒤척이다가 떠으론다고..
또 영국의 해밀튼이라는 수학자는 다리를 건너다, 이것도 또다른 B 인데, 고민하던 수학의 원리를 발견을 하여 그걸 기념하여 교수들이 제자들을 데리고 그 다리를 건너는 행사도 한다고 한다. 런던의 Broom Bridge 가 그 다리라고...
런던에 가면 함 나도 아주 천천히 건너보고 싶다. 




차부다라는 중국말, 별 차이가 없다 그게 그거다라는 말인데 중국과 한국 문화에 이런 부분이 많다고...정확성과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서양문화와 달리 이러나 저러나 큰 차이 없다고 대인배적인 기질로 덮는다고... 산업사회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생산할 때는 이 차부다 문화는 문제를 만드는데  길이에 차이가 많이 나면 불량품이 되는데 그걸 세세히 챙기지를 않는.... 일본은 같은 동양권인데도 소인배 기질. 그래서 산업사회에서 성공....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그 정확성은 이제 기계가, 컴터가 해주기에 이젠 그 걸 뛰어넘는 생명 자본의 시대가 오고 다시 그 대인기질의 융화성, 정량을 재기 위해 되박에 쌀을 담는데 그걸 고봉으로 담아서 정을 주고 받던 그런 한국인의 정과 그런 기질이 생명 자본 시대에는 빛을 발할거라고...
뭘 결정해도 서양은 동전 던지기로 이분법, 양면인데 동양은 가위 바위보... 서로 상대적이고 이기고도 질수 있는,  절대적인 이김이 없고..... 태극 문양처럼 서로 다른 듯 함께 어우러지며 양자와 파장의 넘나듬이 있는 그런 세계에 대한 이해가 쉬운 이런 문화가 힘을 갖게 되는 그런 시대로 가고 있다고...

거시기라는 말, 단어가 생각이 안나면 거시기 하면 다른 사람이 대충 또 알아듣는 그것. 영어로는 whatchamacallit. what you may call it 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뭔가 분명히 서로 알고는 있으나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걸 찾는게 창조적인 삶이란다.

특허에 대한 이야기. 문명의 발달은 특허권과 연관이 깊다고...이탈리아에서 최초의 특허가 시작되는데 지적 재산권에 10년간 독점권을 보호해주자 과학자, 기술자들이 몰려들어 르네상스의 불꽃이 타올랐다고....미국도 건국헌법에 특허법이 표시될 만큼 특허 중시했고 에디슨등 발명왕 탄생.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링컨 대통령도 특허를 갖고 있고 특허청건물 정면의 글귀는 링컨 대통령의 어록에서 인용하였다고..."특허제도는 천재라는 불꽃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다.(The patent system added the fuel of interest to the fire of genius.) 그런데 특허는 그 독과점으로 지적 개방과 공유를 방해하므로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기에 대공항 시기에는 반특허 분위기였다가 레이건 이후 친특허 분위기로....오바마는 친특허.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을 촉진시켰다는 제임스 와트는 독점권을 연장하고 조금이라도 증기기관을 발전시키는 기술과 기업은 소송을 걸어 오히려 산업 발전을 막기도 했다. 특허가 끝나자 마자 마력이 6배 증가하고 효율성도 5배 높아지고 파생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던 것이 특허권이 산업 발전을 막고 있었다는 반증. 자체 기술 개발을 못하고 기술 보호로 소송을 늘이는 그것은 어찌보면 몰락의 반증. 애플과 삼성의 소송 또한 그런 면에서 볼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허의 시대, 산업자본 시대에는 그닥 빛을 발할 자원도 재주도 부족했지만 생명자본 시대에는 자원이 많고 앞서갈 가능성이 많다고...한류열풍처럼 감성을 건드리는 물건, 무형의 상품들 그런 개발의 잠재성, 생명을 아우르며 인간의 정을 중시하는 문화, 유연성을 갖는 그런 부분은 준비되어 있다고....싸이가 히트친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것.

아, 그리고 www.wired.com 에 가면 지의 최전선, 생생한 아이디어들이 올라온다고... 이런 생각들이 이론이 되려면 2,3년 걸리고 책으로 만들어지려면 5,6년 걸린다고...결국 시장에 나온 책들은 10년묵은 아이디어들이라는 것. 싱싱한 생각들을 살펴보려면 인터넷 서치를 해서 지식을 건져 올려야...노학자가 컴터를 7개나 갖고 있는 이유.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책읽기 6 논픽션 : 무료 한국책 다운 받기 / 백년을 살아보니

영어책 읽어야지 하다가 한글책도 안 읽고 문맹처럼 지내오다가 영어든 한글이든 기독교 서적이든 아니든 아무튼 많이 읽자가 올해의 신년결심 중 하나인데 리디 북스 (ridibooks)  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어요. 전자책 위주로 판매하는 사이트인 것 같아요.

회원에게 1월말까지 10여권의 책을  60일간 무료로 대여해주는 이벤트를 하네요.
회원가입은 아이디, 비밀 번호 이외에는 이멜, 이름, 태어난해, 성별 정도 기입하구요.
회원가입하면 주는 혜택들도 있구요.

컴터, 아이패드, 스마트폰 등에 다운 받을 수 있는데 저는 폰에다가 다운 받았어요.
먼저 리디북스 앱을 다운 받고 나서 프리 이벤트 중인  책을 하나 골라 다운 받았어요.
간단히 얼마 안 걸려서 책 한 권이 내 손안에 떡....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김형석님의 수필집이 가장 끌려서 다운 받았는데 한권으로 제한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책들도 읽고 싶은대로 다운 받을 수 있어요. 
폰으로 일반 기사 보는 것보다는 더 보기 좋고 읽기 좋네요. 활자크기 조절도 가능하구요.




덧: 신세계네요. 손에 들고 다니며 읽으니 3시간여만에 대충 다 읽어버렸어요. 쉽게 쓰여진 수필집이라 더 빨리 읽혀지기도 했지만요. 
나이들면 다들 고향 생각하고 맥박이 느슨한 글쓰기를 하게 되나봐요. 글 솜씨의 평준화가 일어나는 듯... 80넘기면 그리 되는 듯 해요. 삶을 뒤돌아보며 느끼는 것이 비슷하고 은퇴로 일선에서 물러난데다가 육체적인 한계로 체험하는 일상이 비슷해서인지 글쓰기도 비슷해지는 느낌.. 얼마전 고박완서작가님의 노년의 글을 읽고서도 그런 느낌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네' 라는 표지글 때문이었는데 이 분은 연세대 교수님이셨으니 촌부와는 다른 삶을 사셨으리라 생각했는데 40여살까진 월급 받아 호구지책 하기에 바쁜 가장이셨다고 하네요. 자녀가 6명인데다가 어려운 시대를 지내셨으니.... 나중에야 강연갈 때 돈 많이 주는 데로가 아닌, 일이 더 보람있게 느껴지는 데로 선택의 기준을 바꿀 수 있었다고....
또 대한 민국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여유로, 경제적으로 그 정도는 살았으면 좋겠고 그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봉사하고 애쓰며, 즉 사랑이 있는 고생을 하는 그게 인생의 행복이다는 것이 이분 글의 결론이네요.

그 사랑이 가족과 이웃을 넘어서 더 넓게 더 크게 되면 더 많은영향력을 끼치며 행복한 고생을 하는 삶이 되겠기에 슈바이쩌, 안창호,간디 등의 삶을 나누기도 하셨고..... 이 분은 그렇게 살지는 못하셨고 40대까지는 호구지책하는 가장으로 사셨어도 크리스챤이시기에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도리에 맞게 살며 봉사도 하시며 감사하며 살아오신거 같아요. 자식들도 모두 잘 키우신거 같구요.
돈이나 명예등에 휘둘리지 않고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연구하면서....

정말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하여 사랑이 있는 고생을 하는 그것이 가장 인생 잘 사는 거라고 느끼기는 하는데 뭘로, 무슨 재능으로 나눠주며 살아야할지 그게 고민이네요. 

2017년 9월 7일 목요일

책읽기 5 논픽션 : 여자는 아니라구요? Why not women? Loren Cunningham & David Joel Hamilton


이 책은 미션 필드에서 실제로 일하며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 단체 Youth With A Mission 의 창설자인 저자가 여성 일꾼의 필요성과 은사 부어주심을 절실히 체험하면서 기독교에서의 여자의 리더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 공동 저자인 고대 언어에 정통한 해밀턴은 고대 철학과 문학 등에 나타난 고대 서양 문명의 여성 비하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두 저자 모두 남성분인데 성경의 여성관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먼저 커닝햄 목사님의 저술 부분을 보면,

1.여성비하는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우월감, 프라이드로 인함인데 인간의 프라이드는 기독교 교리상 죄의 본성이 아닌가? 여성비하의 생각들은 남자를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만드는데 방해가 되는, 남자에게도 무척이나 해로운 생각인 것이다.




2.과연 예수님은 여자를 비하하였고 사역에서 제외 시켰는가?
예수님은 여자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세례는 요한에 의해 받았지만 기름 부음은 두 여인의 향유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받았고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여자들이었다. 즉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의 중요 사역게 여자들이 동참하였다.

3.사역 현장에서 여성 리더들의 활약이 사역 초기에 왕성하게 불을 일으키게 하는데 크게 공한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남자들이 조직의 리더가 되고 여자들은 물러나게 하는 경우가 많고 또 성경의 특정 구절로 여자들의 리더쉽을 부인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나는데 이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스르고 왕성한 사역의 확장을 방해하게 한다.

4.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와 특정 장소, 상황, 시간에 의해 상대적인 내용이 있는데 이 둘을 잘 구별해야하며 성경 말씀은 또 다른 성경 말씀을 레퍼런스로 삼아 이해해야한다.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리버럴리즘의 오류에 빠지고 상대적인 내용을 절대적으로 이해하면 리갈리즘의 오류에 빠진다. 여자여 잠잠하라와 같은 성경구절은 상대적인 내용으로 그 시대 상황과 배경을 함께 살피며 이해해야한다. (그 설명은 바울은 성차별주의자인가 라는 내용에 쓴 것과 등일하다.)

5. 하나님께서 필요와 그의 사역 디자인에 따라 부어주시는 은사, 기프트는 여자들에게도 부어졌고 리더로 세우셨다. 성경에서 살펴보면 구약에서는 드보라가 있다.미리암은 모세, 아론과 더불어 출애굽의 리더였다.신약에서는 더 많은 여성 리더들이 있다. 교회의 일꾼 뵈뵈는 리더였고 챔피언이었으며 유니아는 사도였다.브르스길라와 아굴라에서 예외적으로 여자인 브리스길라를 아굴라 앞에 기록하였다. 안나와 필립의 네명의 딸은 선지자였다. 이외에도 많은 여성 사역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 현대 교회는 세계적으로 2/3가 여성 성도이며 이들에게 여성 리더들의 활약이 요구되어 있고 사역 현장에서 실제로 여성의 리더쉽을 세우는 왕성한 기름부으심이 있다.

6. 왜 제자로 부른 12사도는 모두 남자였는가는 예수님께서 오셨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의 제약 속에서 이해해야한다. 예수님은 노예제도가 있는 사회에 오셨는데 노예를 폐지하지 않은 것처럼 갑자기 이 세상을 이상 사회로 바꾸고 변혁하려 한 것이 아니라 3년간의 예수님의 사역에 집중하시고 그 당시 사회가 갖고 있던 관습들을 거스르지 않으시며 사역하셨다. 여자의 사회 활동이 제한되었던 당시 상황 속에서 12사도를 남자로만 부르셧지만 여러 사역 현장에는 여성들이 항상 함께 했다.

7. 여자는 교회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말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들이 성경 구절로 쓰여졌고 그것을 남자들이 읽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쳐질 수 없는 성경구절이다. 브리스길라는 아굴라를 가르쳤고 예언의 말씀이 여자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전해졌다. 바울은 39명의 동역자의 이름을 기록했는데 1/4 이상이 여자였다.

해밀턴에 의한 고대 연구는 성경의 시대적 배경을 다루면서 좀더 역사적, 문화적, 학술적인 접근을 한다. 

1. 그리이스 신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등 여러 고대의 문학작품에는 여자가 악의 근원이 되며 열등한 문제 덩어리로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남자의 소유물이나 파워 플레이에서의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제우스는 헤라를 때렸고 모욕했고 끊임없이 바람을 폈다.

2. 소크라테스-플라토-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제왕의 스승이었으므로 이들의 철학이 서양 사회 전역에 퍼지는 데 공헌을 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를 열등하며 겁장이이고 정직하지 않다고 했다.

3.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은 공공 창녀촌을 합법화 하는 법을 만들고 장려하였고 가정 생활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만들었고 그리이스 시대의 남자들은 짐나지움에서 토론하고 자유롭게 활동했지만 여자들은 문밖 출입을 못하고 어둡고 지저분한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였다.

4. 여자들은 노예와 다를 것이 없었는데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고 비즈니스를 경영하지 못했고 교육을 받지 못했다.

5. 로마시대에도 여권은 낮았다. 여자들은 고유의 이름 없이 패밀리이름의 변형으로 이름지어졌으며 가족신인 불씨를 보존하는 일을 맡았지만 결혼하면 남편의 신을 모셔야했다. 남편은 간통한 아내를 죽일 수 있었고 술에 취하면 간통의 위험이 늘어나므로 술에 취하여도 죽일 수 있었다. 키스로 인사하는 유래가 술 냄새를 맡기 위함이라는 설이 있다. 원하지 않은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는데  남자아이를 버리는 것은 법으로 금했으나 첫여자아이를 제외하고는 여자아이를 버리는 것은 허용되었다. 이시대의 무덤을 보면 남자 성인의 수가 여자 성인의 수보다 2배로 많다. 여자는 성인이 될때까지 살지를 못한 것이다. 이러한 세대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콘스탄틴 대제 시대까지도 이 법은 유효했다.

6. 로마시대의 여자들은 노예와 가축들과 다를바 없는 소유물로 취급 받았다. 소수 엘리트 여자들의 예외가 있고 전쟁에 나가 죽은 남자들때문에 가사경영을 운영해야하는 경우등이 있기는 하였으나 소수였고 실용주의였던 로마인들에게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바텀라인 생각은 여자를 존중하는 생각이 없었다.

7.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배신과 전쟁과 여신에 대한 악의등이 얼룩진거에 비하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이브는 아담에게 아름다운 선물로, 파트너로, 친구로 지어졌다. 하나님이 그의 이미지로 만든 출생이 같고 , 운명과 비극과 희망이 같이 나눠지는 존재였다. (shared origin, desitiny,tragedy, hope) 얼마나 여성에 대한 관점이 다른지 혁신적이다.

8. 돕는자, 핼퍼는 원어의 의미가 수학 선생님이 학생을 도울 때 쓰는 그 핼프와 같은 단어이고 서번트가 아니다. 아담이 리더이고 이브가 돕는자라는 상하위 개념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원어는 시편에서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자 라고 할 때의 그 핼퍼와 같은 단어이다. 그 옆에 동등함을 뜻하는 수식어가 함께 있다. 영어로는  a help corresponding to him....equal and adequate to himself . 따라서 Woman was created not to serve Adam, but to serve with Adam.

9. 고대 문화로 여자는 결혼과 더불어 집을 떠나오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라고 말한다. 여자의 가치가 남자의 소유물의 일부가 아니라 남자가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함께할 존재로 여겨지는데 이는 가히 혁명적이다.

10.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명령은 남자와 여자에게 함께 주어졌고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죄의 현장에도 you 의 단수형과 복수형이 나눠지는 원어에 복수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아담도 그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후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희망의 메세지, 여자의 후손은 offspring은 seed와 같은 의미인데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고대의 인식, 여자는 밭이고 남자가 씨다라는 인식, 여자에게서 씨가 나올수 없는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 

11.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당시의 남성 우위의 문화에 젖어있던 랍비들에 의하여 변절된다.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마리엘과 같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여자는 대체로 남자보다 열등하고 남자보다 죄가 더 많고 남자를 죄짓게 하는 존재로 가르쳐졌다.해롯왕의 성전 시기에는 성전의 구조상 여자들은 예배에서도 소외 되었다. 대부분의 랍비는 여자에게 토라를 가르치지 않았다. (가마리엘은 딸들에게 토라를 가르쳤다.) 여자들은 하나님과 가까와질 기회를 남자들보다 한 스텝 멀리 남자라는 매게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어떤 랍비는 사라가 갱년기를 지나 아이를 임신한 것은 사라가 더이상 여자가 아닌 내부가 남성화 된 시기에 아이를 가진거라는 괴설을 내놓을 만큼 남성 중심 사상이 심화된 유대사회가 되었다.

12. 예수님이 오셨을 때 요람에서 십자가까지 여자들이 함께 하고 지켰는데 예수님의 구원의 메세지가 젠다 바이어스가 아니라 젠다 인크루시브 였기에 이 세상의 불합리와 억압을 절실히 느끼는 여자들에게 더욱 어필한 것은 당연한 결과 였다. 그 당시 여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인격적으로 여자들을 대해주는 사람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예수님은 랍비와도 달랐고 선지자와도 달랐음이다. 간음한 여자 앞에서, 무죄한 자는 돌을 던지라했듯이 여자가 더 죄인이고 남자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존재라는 더블 스탠다드를 갖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같은 룰을 적용하셨던 그 예를 생각해보라.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의 남자들과 얼마나 달랐을지를...
이혼에 대한 가르침에서도 남녀에게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또한 누가복음 13장 16절에 등굽은 여자를 고치시며 아브라함의 딸이라 하시는데 랍비들의 가르침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표현만이 있을 뿐이었다.

13. 예수님을 가르키는 'Son of Man' 인자라고 번역되는 그 표현의 원어는 anthropos 는 man 보다는 human이나  person 이라 번역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male 이나  man의 원어는  aner 이다. 

14. 구약의 할례는 남자에게만 주어졌지만 신약의 세례는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다.

15. 그리스 로마의 문학 작품, 탈무드등에서는 여자에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신약에서는 여자들의 활약과 역할에 대하여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예수님은 여자들에게도 성경의 의미 복음 진리를 가르치셨다. 성전이나 회당이 아닌 들판에서, 바닷가에서 전해진 진리는 여자들의 접근성을 제한하지 않았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보라. 예수님이 한 사람과 나눈 가장 긴 대화의 기록이며  그 내용의 깊이는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와도 비교될만하다. 결과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은 많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열매가 있었다. 

16. 혈우병 앓는 여인의 힐링 사건에서 불결한 여인이 랍비와 접촉하는 것은 유대법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건만 여인은 예수님의 옷깃을 잡았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리 중인 여인들을 불결하다 구별짓던 관습에서 해방되어 여자들의 하나님의 백성됨에 참여함을 제한하지 않았다. 

17. 12제자들이 남자인데, 남자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갈리리인이었고 예수님을 3년동안 직접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롯 유다의 배신 이후  그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람이 제자의 후보로 올라오는데 두사람, 요셉과 맛디아였다. 그 이후 교회가 성장하자 처음처럼 그  3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람으로만 리더를 세울수는 없었고 7명의 deacon이 세워진다. 그런데 동시에 7명의 여성들이 diakoneo (동사) 하였다고 나오는데 그들은
베드로의 장모,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한의 엄마 마리아, 살로메, 요안나,수산나, 마르다 이다. 즉 이들은 남성 집사들과 버금가는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 누가 복음 8장 1절에서 3절에는 12제자와 더불어 섬긴 여인들이 언급된다. 최초의 부할의 소식 전달자는 여자였다. 즉 여자들은 복음 사역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19. 누가 복음 11장 27절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다라는 군중 속의 한 여자의 외침은 여자들이 아들이나 남편이라는 매게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당시 사상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런데 거기에  바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이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더이상 남자라는 메개체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새로운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개인의 순종임을 나타내준다.

20. 바울은 어떠한가? 철저한 유대식 교육을 받았던 바울이 다메섹 상의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로 진리에 의하여 변화한다. 
당시의 사회의 3가지 코드, 남편과 아내/부모와 자식/주인과 종.
사람들은 이 세가지 코드에 누구나 속하였고 그것은 사회의 지배구조를 나타내었다. 그런데 이 세쌍의 코드에 대해 말하면서 바울은 자식(35 words)과 종(59)에게 당부하는 말을 부모(16)와 상전(28)에게보다 더 많이 남긴 반면 아내(40)와 남편(150)의 코드에서는 압도적으로 남편에 대한 당부의말이 더 많다. 지배 구조의 낮은 쪽에 더 많은 당부를 하게 되는 패턴이 부부사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자식과 종에게는 부모와 주인에게 obey 하라는 말을 하지만 아내에게는 obay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상호 submission 하라고 한다.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하게 submission 하며 서로에게 순종하는 관계여야한다고 가르친다. 또 다른 사회의 대칭코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다. 유대인 남자는 아침에  침대에서 눈뜨자 마자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음을, 여자로 태어나지 않음을, 종으로 태어나지 않음의 축복에  감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여자나 다 주님안에서 동등하고 자유하다고 한다. 바울은 종이 있는 사회 체계를 인정하지 않거나 정면 도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진리인 상위 개념을 제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사실앞에 모든 사람이 성령의 이끌림으로 회개하고 변화하기를 소원하며 가르친 것이다. 그러기에 종의 제도를 없애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께 하듯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주인에게도 그 위에 상전이 있음을, 매사에 주님의 도리에 따라야함을 가르친다. 결국 노예제도는 주님의 원리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또한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동등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22. 고린도서의 여성 리더쉽을 살펴보자.
고린도서가 쓰여지던 시대 배경을 보면 그 당시 고린도는 번창하는 항구도시였고 항구도시답게 창녀들이 많았고 아프로디테여신등의 이방 성전이 많았고 성전 종사자들인 창녀의 숫자가 엄청났다. 또 음주가 성행했던 도시였다. 고린도서에 취하지말라는 말이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돕는데 이 부부는 로마와 에베소에서도 바울을 도왔고 부부의 이름이 같이 성경에 7번이나 언급된다. 그런데 5번 브리스길라가 앞선다. 브리스길라가 아내인데 아내의 이름이 앞서고 아볼로 같은 영향력있는 지도자를 가르쳐서 양성하기도했다. 일설에 의하면 브리스길라가 히브리서를 썼다는 설도 있을만치 가르치는데에 은사가 있는 여인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글로에는 고린도전서 1장11절에 보면 하우스교회의 해드, 리더였던 것 같은 해석이 가능하고  바울은 그녀의 평가를 경청했다. 
16장15절에는 스데바나가 언급된다. 그녀의 이끌음을 따르라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인물 뵈뵈. 그녀는 바울의 추천, 보증을 받았고 바울은 그녀를 보내면서 로마교회에 당부하기를 그녀를 성인(세이트)를 맞이하듯 예의를 갖추어 영접하고 소용되는 것을 공급해주라고한다. 그녀는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음에 틀림이 없다.

23. 바울이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하나님을 섬기며 싱글로 살아도 좋다고 한 부분도 획기적이다. 여자의 가치는 결혼과 아이 생산으로 매김되었던 사회였고 하나님의 일에 참예함은 남자에게만 허용되었던 유대 전통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가르침이었다. 결혼의 가치를 폄하한 가르침이 아니라 남녀 공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우선하라는 가르침이다.

24. 여전히 걸리는 문제,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고린도 전서 11장 3장의 구절은 머리의 원어가 해드라는 뜻 보다는 origin/source 라는 단어가 맞다는 것으로 풀어나간다.  authority/ leadership 으로 해석하면 아래 그림과 같은 위계질서를 설명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서술 순서가 일치하지 않고  소스, 근원의 뜻으로 해석할 때 더 자연스럽다.  그러할때는 다음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고 특별히 The man과 a woman이 단수형 인 것으로 인하여 모든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를 말함임을 알수 있고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졌으므로 이브의 근원이 아담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순서를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고 둘째 아담인 크라이스트를 보내신 그 구조와 맞물린다.


이 부분의 성경 구절은 결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의지해야함을, 파트너쉽을 갖고 서로 힘을 모아 하나님을 섬겨야함을 설명한다. 이 부분의 설명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 거 같다.

25. 구약의 시대에도 여예언자가 있었다. 사라 미리암 드보라 한나 아비게일 훌다 에스더가 그들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여자들도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언하였다. 요엘의 예언대로 남종과 여종에게 영을 부어주고 예언하게 하리라는 일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사역을 여자라고 하여 제한하지 않았다. 단지 메너를 가르쳤을 뿐...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는 이미 다른 책에서 나온 부분과 다르지 않다. 그릭, 롬, 유대의 서로 다른 머리 스타일과 풍습의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으면서 문화적인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26.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구절의 원어를 보면 남자는 여자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인 반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기도 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즉 남자 여자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요 특별히 여자는 남자 혼자 만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하였으므로 파트너로 남자와 함께 하여 하나님을 만족시킨 귀한 존재감으로 남자의 영광이기도 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여자와 남자를 사이드 바이 사이드로 그의 사역으로 부르셨다. 

27. 여자여 잠잠하라는 문장 구조를 설명하면서 방언하는 것, 예언하는 것, 여자 순으로 모두 조용할 것을 언급하였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한다. 즉 교회 안에 질서를 세우면서 방언, 예언등 혼란과 무질서가 생기는 부분에 대하여 잠잠히 순서를 지킬것임을 가르치고 또한 그 때 당시 여자들의 교회에서의 활약에 대하여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또한 조용하라한 것이므로 남자든 여자든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되는 것들에 대하여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이라는 것이다. 왜 특별히 여자들이 혼란과 무질서를 일으키게 되었는지는 다른 책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하다.
문장 구조 그림은 다음과 같다.



28. 고린도 전서 14장 34절의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는 유일하게 복종의 대상이 빠져있는 문장이다. 그 다음 남편에게 물어라로 인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로 오해하는데  율법 즉 구약에 의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구절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잠잠하라는 시편 구절처럼 복종과 잠잠함은 서로 연관이 있는 단어이며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순종하며 잠잠히 그의 말씀 들음에 집중하고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미니스트리를 하는 여종과 남종 모두에게 적용될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또 여자에게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라는 것은 여자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는 것이다. 묻고 배워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라고....

29. 다음으로 디모데서에 나와있는 구절들이 이어지는데 전서 2장 11절-15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라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설명하기 난해한 구절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여자들의 리더쉽과 가르침을 허용하고 독려했던 바울이 돌연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구절의 여자는 단수형임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복수의 여인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에베소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이 횡행했고 이 편지를 쓰던 시기는 박해가 심했던 시기이다. 특별히 이브가 뱀의 거짓에 현혹된 것처럼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있는 한 여인에게 그녀의 가르침을 허용하지 말고 그 거짓에서 벗어나도록 순종하는 자세로 배우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false teacher인 한 여인을 경계한 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의 이름을 쓰면 좋을 터인데 그러지 않고 그냥  a woman 이라고 한 것은 이상하지 않나? 성경책에는 그렇게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 처음은 아니고 두세군데 더 있다고 한다. 
디모데의 엄마와 할머니는 신실한 여인들이었고 디모데의 신앙이 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여인들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중시한다. 또 바로 앞의 10절에서 여자들의 단정한 옷차림에 대하여 말하면서 professing godliness하는 여자들이라 하는데 profess 는 claim openly 하는 것, 즉 퍼블릭 스피킹을 하는 것, 미니스트리를 하는 것이라고 볼수있다. 즉 사역하는 여자들의 옷차림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 후서 2장 2절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는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의 사람들은 원어는 males으로 번역되는 단어가 아니라 persons, human 으로 번역될 젠다인크루시브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즉 바울은 여성의 가르침을 제한하지 않았고 디모데서에서 가르침을 금지한 것은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한 여인에 한정된 것이었다. 

30. 디모데 전서 3장 11절의 여자들도 이와같이 단정하고... 이부분의 원어를 보면 women 이나wives로 둘다 사용되는 고어 단어를 썼는데 NIV의 their wives는 형편없는 번역이라 볼수 있다. their에 해당하는 말이 원어에는 없다. 원어대로 하면 Likewise/In the same way, women/wives are to be worthy of respect,...로 영역할 수 있고 문장의 구조와 다른 구절과의 연관성등을 볼 때  women 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우리말 해석은 '여자들은' 으로 되어있다. 여자들은 으로 해석하면 여자들도 집사로 활약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감 한마디:
이책에서 어떤 부분은 억지 꿰어 맞추기 식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대로 남성 위주의 사회가 최초의 바울의 서술 의도와는 다르게 번역 과정에서 변절 시킨 부분이 있고 그렇게 쓰여진 성경을 아무 의심과 검증없이 받아들였던 것이 우리의 사고를 굳게 하여 원래의 바울의 의도를 검증하며 베일을 벗겨 주어도 그걸 억지 주장이라 여기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교회에서 같은 여자로 부터 여자의 역할을 제한 하는 말들을 너무나 당연히 들어왔기에 그게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인 세월이 너무 길어서 그 틀을 또 깨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서 예수님 오실 당시의 사회의 여성의 지위와 가치가 어떠했는지를 정말 잘 알게 되었다. 오히려 동양권 보다도 더욱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거 같다. 유교의 충효사상은 부모로서  엄마를 존중하는 면이 있다. 또 성적으로 불교 유교 모두 성전에서의 성교가 의식이 될 그런 종교가 아니고 성적으로는 억압하는 면이 컸기에 성적 대상으로만 여성을 보는 시각도 약했던 거 같다. 남자들이 성욕은 훨씬 큰데 그 해소되지 않는 욕망을 여자가 유혹해서라니 하고 여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찌질함이 서양 역사에는 너무나 깊은거 같았다. 여자를 가두고 억압하고... 지금 중동권의 여권의 모습이 결국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문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그 당시 문화를 이해하고 나니 그것을 어떻게 예수님께서 혁명적이다시피 깨뜨리셨는지를 더욱 감격스럽게 보게 되었고 인간의 문화 속에서 나온 철학과 지식으로는 나올 수 없는, 당대의 잘 낫다는 지식인들의 왜곡된 여성관과 대비되면서  은혜와 감격이 있었다. 본 투비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 하늘 나라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분이었기에 그리 행동할 수 있으셨을 거 같다. 
그냥 성경을 읽을 때보다 시대배경을 알고 보니 대비되면서 커다란 예수님의 인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인 나를 예수님이 어찌 대우하시고 밸류를 두시나로 이어지니 이 세상이 뭐라하든, 또 어떤 면에서는 여성 억압의 유교 사회의 전통이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뭐라하든간에 예수님이 나를 보는 것,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가치를 매김하는 것은 예수님 한 분 뿐이기에....그런 자유함이 주는 행복감을 이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사회의 제한성 속에 있었던 바울이 다소 여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하여도 그건 그닥 문제되지 않을 거 같은 생각 마저도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예수님과 동행했던 바울이 예수님과 다르게 여자에 대한 인식을 가졌을리가 없다고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이건 좀 심한 해석인데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바울은 인간인지라 예수님 같을 수는 없었을 거 같기도하다.
아무튼 이 책은 바울 서신들에 대한 분석에 큰 지면을 할애했지만 나는 예수님을 다시 보며 큰 은혜를 받았다. 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던 중동 지방은 여자들의 암흑시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부 성경 구절을 보고 어쩌면 그것이 당시 스칼라들의 문화적 한계로 번역상의 오류가 반복되며 왜곡된 표현일 수도 있는데 그로 인하여 기독교를 멀리하고, 여성 비하의 종교라 생각하는 현대의 여성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거 같다.
나 또한 성경책을 보며 그 부분이 많이 맘에 걸렸었던 적이 있었기에....
지금 내 마음 속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마음에 새겨진다. 구원에 관한 깊은 얘기를 여인과 나누시는...또 간음한 여인에게 죄있으면 돌을 던지라 하시던 모습도....
이러한 예수님을 바로 이해한 곳에서는 성경이 들어가고 읽혀지면서 여권이 신장하였다. 우리나라도 그런 곳이다. 기독교가 들어와 여성을 가르치는 학교가 세워졌던....
항상 약한 자의 편이 셨던 페미니스트 예수님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7년 6월 9일 금요일

When breath becomes air



몇달 전 쯤 많이 유행하고 서점 젤 선두에 나와있던 책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뉴로서전 레지던트를 거의 마치고 학교에 남는 꿈의 포지션이 거의 확정되어 있던 중에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하게 된 저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며 자서전적인 기록을 한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때와 기한을 모를 뿐.....모르다보니 영원히 사는 냥 살아가다가도 막연한 불안감이 들고는 한다.
그런데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저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신기술에 의한 치료가 진행되면서 약에 대한 몸의 반응에 따라 라이프 스팬이 6개월일수도 10년 일수도 있는 상황에서  일을 쉴지 아이를 가질지 계획하고 결정하는....좀더 데스퍼레이트한 상황이라는거 이외에는 죽음이 딱 언제가 될지 모르기는 마찬가지 상황에서 병과 싸우며 일상을 살아내야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절망적 운명을 축소판으로 압축해서 살아내야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런상황에서 그가 하는 선택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열심히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잠시 치료로 쉬었던 레지던트에 복귀하여 끝내 수료증을 받고( 그 수료증을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란 거의 없었음에도...) 아내와 아이를 만들어 딸을 낳기도한다. 그리고 책을 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



저자는 대학시절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메디칼로 진로를 택했다고 했는데 다시 글쓰기로 진로가 바뀌었다고나할까......이 책은 미완성의 진행형적인 끝마무리로 딸아이가  6,7 개월 무렵에 끝이난다.

말기암의 고통에도 글 속에 녹아나오는 그의 모습에는 운명에 결연히 대처하는 처연함 속에서도 품위와 젠틀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함이 있었다. 
성실함 성실함 성실함....
숨이 날아가 공기가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날까지 뚜벅뚜벅 성실하게 그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가꾸워온 스킬과 지식과 인간됨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용한다.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동정하며 방황하지 않는다. 그런 과정이 있더라도 매우 짧게 필연의 과정으로 ...그걸로 주어진 짧은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는다.
탈렌트 김영애씨가 생각나기도 했다. 암에 걸려서도 드라마를 끝까지 찍던...그것이 그녀의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었다면 끝까지 하는게 맞겠지.
버켓 리스트를 채워가는 말년의 삶도 의미 있겠지만 늘 하던 일을 하며 자신의 재주와 스킬을 마지막 날까지 성실히 사용하고 해내는 이런 삶도 멋지다.
나의 말년의 모습은 어떠할지.....나또한 이 저자와 같은 순간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맞이 할텐데 잘 살아야하지만 또 잘 죽어야한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가 죽어가는 순간 조차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의 바탕에는 독서와 인문학의 힘이 있다고 느꼈다. 내면에 인문학의 영역이 폭넓고 깊게 축적되어 있을 때 삶에 의미부여가 되고 위기의 날이 와도 추하게 쓰러지지 않고 품위있고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책 좀 읽어야지.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책읽기 4 논픽션 : 바울은 성차별주의자인가 : " What Paul really said about Women" by John Temple Bristow

이 책은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남자에게 복종해야하며 교회에서 잠잠해야한다는 내용들에 대하여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를 고민한 남자 목사님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바울의 서신서는 그릭어로 쓰여져 있는데 저자는 영어번역본 성경을 그릭어로 다시 옮겨보면 원본의 글과 전혀 다른 단어들을 쓰게된다는 점에서 그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어들이 갖고 있는 여려가지 의미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번역당시의 사회의 풍습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제한된 인식으로 인하여 왜곡되이 잘 못 전달된 것이 너무나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때로는 여자를 열등하게 여기는 거 같다가,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하여 동등한 존재라고도 하므로 모순된 주장을 펼치는 거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많은 부분이 번역의 오류나 우리가 그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잘 못 이해하는 것이며 바울은 일관되게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자는 먼 옛날,  서구 사회의 여자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부터 시작한다.
남자와 같은 동급의 인간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열등한 존재로 남자와 동물의 중간 정도로 인식되었고(소크라테스) , 또한 남자를 유혹하여 악에 빠뜨리는 존재이므로 경계하고 멀리해야하는 존재(스토아 학파, 금욕주의: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성적인 유혹에 잘 빠지는 존재라고 하는데 남자들이 자신의 약함을 여자들 잘못으로 뒤집어씌우는 느낌?)로도 인식되었다. 활동 범위도 집안에만 국한되고,  권리도 자유도 없었다.
소크라텔레스-플라도-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남녀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남성 중심이었다. 남자는 두뇌와도 같고 여자는 두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손발, 바디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집트, 스파르타, 로마등은 남녀가 좀 더 동등하고 집밖을 나가 사회 활동도 하는 사회였으나 학문적, 철학적인 기반이 약했으므로 철학이 왕성했던 그릭 아테네의 영향을 받아 여성 열등 사상이 이들 사회에 전파되었다. 로마의 학생들은 그릭 철학자 선생님들에 의해 교육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우므로 피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던 유대 사회, 로마 사회의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에도 여자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1. 남편은 아내의 머리
머리,head로 번역될 수 있는 원어는 boss, ruler, leader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cornerstone, foremost, 사람의 몸의 머리 등 포지션상 제일 앞이라는 단어의 두가지가 있는데 원어는 후자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의 리더거나 보쓰라는 의미가 아니며 단지 앞장서는 존재, 주춧돌 같은 역할의 존재라는 것이다.

2.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be subject to
원어는 obey 의 뜻의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군인이 대열에 돌아가 자기 역할을 다할 때와 같은 상황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서열짓기의 개념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고 동등하게 자기의 직분에 맞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전체를  지원하고 써포트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love
사랑의 여러가지 그릭어중 아가페의 사랑이고 이 단어는 위에서 복종하라고 번역된 원어와 큰 차이가 없는 뜻을 지닌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상대방의 요구에 응하고 serve하고 care 하라는 의미이다.

즉 아내와 남편은 남편은 머리요 여자는 복종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남편은 주춧돌 같은 역할을 하고 아내는 아내대로의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서로 살피고 케어해주는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문화적인 한계상황에 의하여 잘 못 해석되고 있는 부분을 살폈는데 바울은 유대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예배 형식을 갖고 있었던 여러 이방 사회에까지 전도를 하였으므로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성차별로 보이는 것들이 그 시대의 배경을 알고 살펴보면 사실은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여성의 동일함의 반영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1. 여자여 잠잠하라 : silence
벙어리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조용히, 캄 다운하라는 말이다. 집 안에 갖혀 공공 장소에 나오지 못했던 여자들이 아주 가끔 나오게 되면 토론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므로 흥분되어 질서 없이 떠들고 큰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대하여 " Please do not talk during the prayers." 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그런 표현을 한 것이지 여자는 교회에서 아무 발언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자들에게 예언의 은사나 가르침의 은사는 전혀 주어지지 않아야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사도행전에 보면 아들과 딸들에게 동일하게 예언의 은사가 주어졌다.

2. 남편에게 물어라
아내는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에서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던 사회였으므로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는 대화할 수 없던 사회였던 것을 이해하면 남편에게 물으라는 가르침이 나온 이유를 알수 있다.
또 그릭 사회의 종교 관습상 성전에는 많은 창녀들이 있었으므로 교회의 여자들에게 말하는 남자는 설령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는 괜한 오해를 받을 소지도 많았다.
따라서 크리스챤 여성에게는 창녀와 구별되는 몸가짐과 옷차림등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요구되었고 바울의 서신서에는 그에대한 가르침이 있다.
또 유대회당은 메인홀에는 남자들만이 모일 수 있었고 여자들은 바깥의 계단으로 올라가서 위에 가려진 공간에서만 참석이 가능했었고 그런 시대에 바울은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하였던 것 자체가 그 시대상황에서는 유대지방이던 이방지역이던 간에 충격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예언의 은사 등이 여자에게도 있었으므로 예배의 참석뿐아니라 예배의 리드 또한 허락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구습과 새로운 예배의 가치관 충돌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하여 남편에게 물어라라고 한 것이다.

3. 아담이 먼저 지어졌고 이브가 나중에 지어졌으며 이브가 유혹을 받아 죄를 짓게 했다.
이 부분은 누가 더 나은 존재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만연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쓴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최초의 인간은 자웅동체였고 반으로 갈라져 아담과 이브로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선악과를 딴 이브의 행동을 선하다 보고 지식을 갖게 되어 인류의 큰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찬사했다. 이러한 영지 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창세기를 불러내어 설명한 것이지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우월한가, 죄를 더 많이 지었는가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여자는 남자의 영광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여자는 아담의 뼈로 만들어져 아담의 부수적인 존재로 아담의 자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죄의 유혹에 빠져 아담을 죄짓게 했다라는 것이 그 당시 만연했던  창세기의 해석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첫째로 여자가 남자의 부산물로 만들어지고 남자를 죄짓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자는 남자의 영광임을 강조한다. 또 둘째로 남자가 혼자 홀리하게 잘 살수 있는데 여자로 인하여 죄에 빠지게 되므로 여자는 남자에게 불필요한 존재인양 품하하는데 사실은 남자는 여자가 필요했기에 창조되었슴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함을 강조한다. 또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동일한 창조물임을 강조한다. 

5.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시내산에서 내려올때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를 쳐다 볼 수 없었고  모세는 베일을 써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렸던 것에서 시작되어 유대인들은 예배시에 남자들도 모두 머리를 가렸다.
여자들은 밖에 나갈 때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가리게 하였고 머리를 내리면 유혹을 하기 위함이라 생각했고 창녀라 여겨졌다.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내리면 오늘날 웨딩링을 던져버리는 것보다도 더 큰 이슈가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방사회는 관습이 달랐고 로마시대는여자들은 머리를 길렀으나 창녀들은 머리가 짧았다. 이처럼 머리를 가리는 것과 헤어스타일이 다른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바울은 가이드라인을 주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남자들에게는 모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므로 즉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이므로 남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여자들에게는 당시 관습으로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이 관습상 남편을 모독하는 일이었고 이방 풍습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과 마찬가지이므로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머리의 길이와 수건에 그러한 의미가 없으므로 개신교에서는 자유롭게 하였다.

6. 결혼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결혼하지 않으면 성인의 남자로 여겨지지를 않았고 결혼과 자녀의 양산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의 상징이었다. 강간과 간음은 죽음의 벌로 다스려졌다, 혼전 순결은 중시되었으나 도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부의 부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결혼하여 자신의 혈통을 잇는 재산상의 가치의 개념으로 중시되었던 것이고 남자들은 창녀에게 가는 행동이 전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었고 일부 다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맥락으로 볼 때 도덕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이방 사회도 마찬가지였고 로마 사회는 창녀들이 합법적인 직업군으로 인정되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드나들던 사회였으므로 이런 성적인 문란은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고 어지렵혔다. 한편 스토아 학파는 아예 즐거움을 주는 어떤 행위도 부정하게 여기며 금욕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런 사회 상황에서 바울은 그 당시 창녀들이 들끓었던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며 도덕의 개념으로 성에 대하여 가르친다. 당시는 크리스챤에게 고난이 예정된 상황이었으므로 가족에 대한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며 성적인 빠지기 쉬울거 같으면 결혼하여 유혹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부다처가 그 당시 크리스챤 사회에서도 불법은 아니었으나 한 남편과 한 아내가 좋다고 가르치고 자녀는 꼭 낳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즉 여자를 후손 양성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 아내와 남편을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에 비유하며 결혼의 순전함과 관계의 동등함과 하나님의 선물인 성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당시 사회의 어느 철학과 종교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남자가 동등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에 의한 초기 교회 안에서 남녀의 동등성은 여러 다른 교회 초기 문건에서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살펴 본 것은 위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는 다른 해석으로 뒤바뀌어 마치 바울이 성차별주의자인양 비추이게 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준다.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수용이후로 기독교는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그리이스 철학의 사상, 헬레니즘의 영향등이 스며들게 되고 여자와 성을 거룩함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어거스틴과 같은 교회 지도자는 결혼을 부정했는데 이러한 지도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추종 철학자들 등의 영향으로 성경의 바울의 글들이 재해석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았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권위를 인정하는 입장을 지녔다. 아퀴나스는 이브는 아담을 돕는 자로 지음 받았는데 가장 중요한 도움이 아담의 후손을 낳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의 다른 도움은 남자로 부터 받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노예와 여자를 거의 같이 취급하는 사고를 나타냈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아이를 낳는 존재로서 남자의 우주는 온 세상이요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있지만 여자의 우주는 오로지 남자요 남자에게 존속되어지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계속적으로 이어져와서 바울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도 변질된 채 가르쳐지고 있는 면이 많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 Red Letters by Tom Davis

성경책에서 빨간글씨로 써져있는 부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이다저자는  빨간글씨로 써진 부분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크리스찬이 되라고 촉구한다예수님은 약한자병자가난한 버림받은 죄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셨다 지극히 작은자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과 같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님을 찾으라고 말한다지극히 작은자약한 고통 받는자특별히 에이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라고...
 책은 일종의 보고서 같았다에이즈라는 질병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감염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가에 대한... 통계자료와 사례들이 사실성을 입증해 주었다.
에이즈는 성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전염되는 병이므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 인식하기 쉬운데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부모로부터 감염되는 경우생계를 위하여 어쩔  없이 성을 팔다가 걸리는 경우강간에 의한 경우부도덕한 남편으로부터의 감염등 본인의 죄성과는 무관하게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런 일들을 실제로 일어났던 사례를 들어  심각성을 실감할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다그리고 묻는다특별히 무죄한  어린아이들이 당신의 자녀라면 어찌하겠냐고....
그리고 도움을 실천할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여러 단체들을 소개하며 행동하는 크리스챤이 되라고 한다.
이런 비극이 지구 한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국부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것같지도 않아 답답한 느낌만 들었다
우선 이책이 2007년에 쓰여졌으므로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통계를 찾아 보았다 통계그래프는  급속히 증가하던 에이즈 환자의 수가 2006 무렵부터 둔화를 보였고  이후2010년까지의 통계가 나와 있는데 제자리 상태로 머문것을   있었다다행히 지금 증가 일로의 상태에 있지는 않은  같았다.   신생아의 감염율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고 2015년에는 제로 상태로 이르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데이타들을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져서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같아 다행이었다수년내에 적어도 신생아가 감염되는것은 막아질것같다.
그러나  이후 신생아가 자라면서 구조적인 가난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저하를 직면하며 감염에 노출되는 문제는 호전되지 않은  답보 상태임을   있다 
 책을 읽고  몰랐던 에이즈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환자의  상당수가 성적으로 활발할 나이가 아닌 15 미만의 아이들이 라는  3세계의 ....
서구사회에서는 남성대 남성의 성적인 접촉으로 인한 발병율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같은 3세계에서는 어린아이들특별히 여자아이들이 낮은 사회적인 지위와 가난으로 인하여 희생 되고 있다고 하는점이 마음아프다아프리카가 어쩌다  지경이 되었는지기독교의 책임도 크다는데  원인부터  공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