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예수님과 기적

오늘 요한 복음 6-8장을 읽다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 사이 긴 침묵의 시대를 지나며 모세처럼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던 것처럼 선지자가 나타나 기적을 행하며 나라를 잃고 흩어져 있던 그들을 이끌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보인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만나의 기적은 구전되어 전해오는, 성전에서 두루마기를 펼쳐 모세오경을 읽을 때나 들을 수 잇는 것일 뿐 경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던 침묵기가 400년이기에 아무 기적도 역사도 없던 시대를 살아가며 말로만 듣던 그런 기적을 행하며 그들을 이끌어 줄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룬 후인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모세보다 못하다 생각한 거 같다. 하긴 오천명을 먹인 한번의 기적은 하늘에서 수십만명(수백만명이라고도 함)을 먹이는 만나가 뚝뚝 떨어지기를 매일매일인 기적과 비교해본다면 작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기적을 보여주시고 행하심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더 크게 더 스팩타클한 기적을 행하신 것은 아니고 유대인들이 대단하게 여겼던 모세와 엘리아에 비하면 어찌 보면 소박한 기적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과 기적의 크기를 보고 메시아를 판단했더라면 예수님이 아니라 생각하는 오류도 범하였겠다는 생각이든다.

또 리더쉽 측면에서 보더라도 모세는 홍해를 가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문자그래도 리드라며 방향을 제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가시고 들판, 바닷가, 산, 회당에서 말씀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그냥 그랬다. 세례 요한조차도 좀 헥갈려할만 하다. 

모세와 같은, 엘리아같은 메시아를 구하고 있었다면 정말 예수님에게서 공통점을 찾기는, 더구나 그들보다 더 나은점을 찾기는 어려웠을 거 같기도하다. 
만나의 기적을  원하는 그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니 예수님을 바로 알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시자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며 말씀을 본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나 자기가 주인된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즉 보여주셔도 사람에 따라 못보앗다는 것인데 마음 중심을 어디에 두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지가 다시 보인다. 
구원, 메시아, 예수, 천국, 영생....신앙의 큰 줄거리들을 항상 놓치지말아야함을 다시 깨닫는다.

지상에서의 유대인의 나라 회복이 목표이라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볼수 없었을 것인데 그 모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천국 백성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큰 뜻을 아는 시각으로만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 수 있엇을 것이다. 그의 젠들함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통하고 알아지는 그 축복을 직접보고도 놓친 사람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예수님앞에서 만나의 기적을 말하던 사람들....만나가 가나안 땅으로의 천국 여정에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상징하는 것임을 어찌알았으리요....
기적은 그 큰 줄거리에서 필요할 땐 작은 형태로든 큰 형태로든 주시기도 하는거 일거 같다.  
지상에서의 우리 삶을 해결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생을 위하여....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정말 말 그대로 구원 사역을 다 이루셨다. 성경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더이상 뭐가 필요할까 싶다. 구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위해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는 것같다.
단지 그 구원을 이루어내는 세상 끝날이 오기까지의 여정에서는 때로 필요하면 기적을 사용하시기도 할 거 같다. 안 하실 이유도 없는 듯.... 그러나 세상의 만나를 원하는 인간이 이용하고 변질시킬수 있음을 아시기에 경계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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