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7일 수요일

에서와 야곱

성경의 에서와 야곱의 스토리를 제일 처음 들은 것은 한국에서 거의 반 강제로 교회를 몇 번 나갔었는데 그 때 주일 설교에서 들었었죠.
기독교를 전혀 모르고 단지 미디어와 학교에서 배운대로 4대 종교 중의 하나로 배웠고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기독교도 윤리 교과서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야곱이 장자권을 뺏기 위하여 엄마와 짜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설교를 듣고, 그리고 그런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요 이스라엘의 선조라는 설교 내용을 듣고는 이건 뭔가? 싶었었어요.



그후로도 아브라함, 이삭, 요셉, 다윗등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결점은 있었으나 마음을 울리고 신앙의 본이 됨을 배우고 느꼈지만 야곱에 대해서는 뭔가 좀 야비하면서 마땅치가 않은 느낌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처음 들었던 그 설교에서 에서는 하나님을 우습게 안 반면 야곱은 하나님을 꼭 붙들고 의지하는 존재로 해석을 해주었음에도 오랜동안의 도덕 관념이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런데 올해의 성경 일독으로 창세기 진도를 나가면서는 그 야곱이 참 맘에 와 닿네요. 그 첫 설교를 들었던 나의 나이는 아마도 27세. 야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나이만큼의 삶의 경륜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에서는 거부인 이삭의 장남으로 태어나요.
즉, 에서는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거죠. 사냥을 잘한걸로 봐서 기질도 활달하고 체격도 좋았던거 같아요. 고대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좋은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인물이 아니었을 까 싶어요. 모든 것을 다 갖추었네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필요 없었죠. 심각하게 인생을 고민하며 살 필요도 없었으니 가볍게 팥죽에 장자권도 팔고 이방여인과 결혼도 합니다. 이방여인들은 세상적인 아름다움에 목숨을 걸었을 터이니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는 등,  하나님을 아랑곳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반면 야곱은 약하고 조용해서 엄마의 일을 거드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악착 같은 면은 있었는지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형을 택하는 대신 동생이었던 약한 이 아이를 축복하시겠다고 합니다. 

세월은 흘러 이삭은 노약해지고 장자권의 축복을 줄 때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때 까지도 이삭의 에서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고 야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축복을 줄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 이삭의 아내, 야곱의 엄마는 야곱을 이삭인 양 속임수를 써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는 계획을 세우고, 야곱은 장자의 축복,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아요. 

속이는 부분....이건 잘한건지 잘 모르겠어요. 성경에는 몇번씩 하나님의 법이 잘 계승되지 않을 때 윤리 도덕적으로는 잘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더라구요.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스토리도 그렇구요. 암튼 이부분, 예전처럼 야비하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걸로는 더이상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하나님 뜻에 맞는 바른 방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무튼 야곱은 엄청난 축복을 받아요.
창세기 27장 29절: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여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이후의 야곱의 삶.....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면서 시작된 20여년의 타향살이, 외삼촌 라반으로부터의 결혼사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딸의 강간, 몰살의 위기 속에서 도망함, 자식들의 불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행방불명, 기근등 온갖 삶의 굴곡을 겪어요.

반면 에서의 삶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올 만큼 여전히 부유한 아빠 옆에서 유복하게 보내고 야곱이 집으로 돌아와 에서와 야곱의 양떼가 동급으로 불어났을 때는 장자권 때문인지 야곱에게 아버지 땅을 주고 자신은 에돔땅으로 가지만 거기서 자손은 불어나고 큰 부족을 이룹니다. 큰 삶의 굴곡이 없고 오히려 야곱보다 편안한 삶을 산거 같아요.
우리가 바라는 삶이죠.

그렇다면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만 있어도 힘들었을 온갖 삶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간 야곱의 인생이 과연 복있는 인생인가? 그런 의문이 들지요.

그런데 야곱의 삶에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했고 야곱의 삶의 스토리는 하나님의 스토리이기도 해요.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고 결국 이기고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 하늘나라에 까지 닿아있는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꿈 꾼 야곱.... 라반의 집에서 양치기를 할 때 양의 숫자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해주신 축복.....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큰 나라의 재상이 되어 기근에서 구해준 일.....성경 어느 인물보다도 다양하고 많은 간증거리가 쌓인 삶을 살았어요. 그리고 야곱이 받은 축복은 그 후손이 12지파가 되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를 만드시고 그 후손에서 예수님이 출생하시어 만민을 하나님 나라로 부르는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으로 이어지지요.

반면 에서의 삶에는 하나님이 전혀 간섭하지 않고 등장하지 않아요. 야곱의 삶의 스토리에는 야곱과 하나님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는 반면 에서의 삶의 스토리엔 하나님이 없어요. 에서의 자손이 이룬 에돔 족속은 에서 당대에는 번성했을지 모르나 성경을 읽다보면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됨을 보게 되구요




이렇게 야곱의 삶을 들여다보니 복있는 삶은 현세의 삶의 잘나감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보네요. 어려움 많아도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함께함의 그 스토리가 많이 많이 쌓이는 삶이 축복의 삶이요 그 삶의 끝은 천국으로 이르는 사닥다리로 이어지겠구나 생각하게 되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스토리를 써가는데 동역하며 내 삶의 스토리가 그 안에서 자리매김하는 삶. 그것이 축복의 삶이라는 걸 알겠어요. 

야곱의 재발견.....
우리가 살다보면 이러 저러 겪는 힘든 일들....남들은 다 평안한거 같은데 나만 왜이리 힘든가 싶은 일들을 겪게 되어요. 하나님 앞에 가져간다면 그런 어려움이하나님께 의지하며 함께 하는 풍성한 간증거리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야곱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네요. 
이제 야곱은 성경의 어떤 인물보다도 내게 큰 울림을 주는 인물로 탈바꿈되네요.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고 그 아들들로 12지파를 이루게 되는 나라가 세워져가는 만큼의 큰 인물로, 건국의 시조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그 원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구요.
야곱처럼 하나님 붙들고 살아야지 생각도 하게 되구요.
현세의 삶에서 힘든 일 없고 평안하며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축복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역사의 한부분을 차지하며 자리매김하는 삶, 그것이 참된 축복의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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