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31일 금요일

프릭파크 트레일 (frick park trail )


프릭 파크는 상당히 넓은데요 가끔 산책하러 가는 곳은 프릭 뮤지엄쪽이예요. 오늘은 그냥 프릭 파크를 찍고 갔더니 다른 쪽에 데려가서 다시 원하는 곳으로 가는데 차로 9분이 걸렸어요.
프릭 뮤지엄 앞의 길에 파킹을 하고 건너편을 보면 위 사진과 같은 지역이 있고 그 쪽으로 트레일이 내리막길로 나있어요.


홈우드 트레일이라는 표지판 붙어있는 쪽, (위 표지판은 돌아오며 찍은것이고 반대방향의 화살표가 난 표지판) 으로 난길을 따라 가면 숲이 우거져서 그늘진 길이 펼쳐지고 그길을 따라 갔다가 운동장이 보이는 곳을 만나면 돌아오는데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 듯요.


나무가 빼곡이 그늘을 드리워 한참 더울 시간인데도 별로 덥지 않았어요.


핫도그 모양으로 길쭉하게 있는 도그 파크. 울타리가 쳐져 있고 시냇물을 막아서 개들이 헤엄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놓아 개들의 휴식 공간이라 이 산책길은 개를 델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코로나 초기에는 인종차별적인 일들이 여기저기 발생하니 이런 곳 가기도 망설여졌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하여 트레일 걷기를 했네요.
마스크 쓰고 있는 사람들이 반 정도. 야외이고 크게 서로 가깝게 지나갈 일이 없는데에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저희도 사람들이랑 지나칠 때는 마스크를 썼고요.
오랜 만에 기분전환 되네요.

홈메이드 크림퍼프




초코크림 넣은 홈메이드 크림퍼프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먹어보는 거 아닐까 싶네요.
둘째가 만들었는데 넘 만들기 힘들다며 다신 안 만든다고...그러니 누가 만들어 다시 먹어보겠어요. 시간 많이 걸리드라구여. 케이크 플라워가 있으면 좀 쉬운데 없어서 시간 더 걸린듯해요.
속 크림은 위핑크림이 주재료인데 초코를 섞어서 색이 하얗지가 않네요. 속재료가 첨엔 넘 묽게 되어 냉장고에 넣어 굳혀서 사용하고, 만들어서 잘라보니 여전히 너무 묽어서 냉동실에 넣어 굳히고...
직접 만들어 넘넘 신선한 맛이긴 하네요.
안에 넣는 크림은 구멍을 뚫은후 드레싱할때처럼 튜브 만들어 넣어주는데 그게 새나오지 않으려면 너무 묽으면 안 되더라구요.
레서피




성경통독 7/31


비울의 믿음의 경지에서 사람들을 보면 아직 어린아이 같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믾았을까요?
그런데 그가 말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의 견해를 논쟁거리로 삼지 말아라.
화평을 이루고 서로 세워주는 일에 힘쓰라.

즉 믿음에 관한 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일과 그것을 세우는 일에 관한 일이 아닌한 문제삼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넘어가. 그말이 생각나네요. 정말 믿음이 죽고 사는 문제이고 그거 아닌한 넘어가면 되네요.

율법을 따지던 바리새인들의 믿음의 기준은 율법이었고 그걸로 믿음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런 습성이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지요. 

복음 안에서는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각자 자기 믿음대로 가되 좀 다르게 행동이 나타나도 상관없다는 것이지요. 믿음 안에 있기만하면....
그 중요한 본질을 서로 놓치지않기만 하면 사소한걸로 본질을 훼파하지 말라는 것.

이 코로나 사태의 이슈는 교회를 오픈하느냐 마느냐 예배를 인퍼슨으로 드리느냐 온라인으로 드리느냐 등이 아닐까요? 각자 사정과 형편대로 믿음대로.... 스스로 A가 옳다 생각하면서 B로 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 남의 생각을 판단할 필요는 없고 존중해주고 세워주고....그렇게 적용해봅니다.

사람 1: 우상에 드려진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음식에 대한 탐심을 참지를 못하고 먹는 것. 이건 옳지 않죠. 그리고 그걸로 이미 죄로 여겨짐을 받고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사람 2: 사람1을  보면서 그 사람의 속을 알수도 없는데 판단하면서 안 먹어야하는데 먹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 이 사람은 맞는 말을 했을 수 있지만 더 나쁘죠. 판단하는 죄를 범했으니...

사람 3: 바울처럼 음식 자체가 부정하지는 않아서 먹어도 상관 없으나 먹지 않는게 옳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먹지 않는다면  겉으로 드러나기는 먹다가 안 먹다가 소신 없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이건 옳고...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로만 알 수 없는 그 마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것. 그것까지 다 알고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2020년 7월 30일 목요일

커피 순례 1 : 맛집 커피 la Colombe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 속이서 작은 즐거움을 찾고자 맛집 커피를 인터넷으로 오더하여 즐겨보기로...
1탄은 LA Columbe
프리쉬핑이라 냉큼 오더했어요.
이 커피는 맛보다도 향이 좋네요.
집안이 커피향이 퍼지는데 그 향이 매혹적이네요.
집안의 딴 사람보고 커피 내리라 하고 커피향에 깨어 일어나는 맛을 함 누려보고픈 그런 향.
물론 커피집에서  내려주는 그 맛과는 영 다르겠지만 그래도 소소한 기쁨을 주네요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주요 대도시에 들어가 있고 피츠버그에도 있다고 하네요.
타겟에서 더 싸게 팔긴하는데 신선도가 떨어질 거 같아서 회사 왭사이트에서 오더 했어요.

감자탕 국물 활용 만두국


이젠 메뉴도 동나고...
감자탕 국물을 워낙 많이 해놔서 그 국물로 수제비를 하고도 남아서 만두국 끓였어요.
매콤 만두국이라 색다른 맛이 나네요.

만두는 호박 채썰어 소금 뿌려서 국물 짜내고, 코스코에서 산 김치 푸드프로세스에 갈아서 짜고, 두부 짜서 넣고, 쇠고기 갈아서 볶아서 속을 만들었어요. 

저에게 쉬운 요리는 재료 사러 여러 마트 다니지 않아도 되는 요리. 
만두피 많이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알디에서 호박사고 나머지 재료는 코스코로 해결되는지라 자주 하는 메뉴가 만두이네요. 한꺼번에 빚어 놓고 만두국 자주 하는데 아끼느라 코스코 만두랑 섞어서 넣어줘요. 1/3 정도 섞으면 전체 맛에 큰 영향 안주어 괜찮네요.


넷플릭스10 : The Pianist 와 인종차별


폴란드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던 때를 배경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이다.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한 영화가 워낙 많아서 줄거리와 내용을 대충 알거 같았다. 그의 피아노 재능이 뛰어남으로 구출이 일어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대로 였다. 

그런데 미리 다 짐작되는 영화였지만 그래도 이처럼 사람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면서 마구 죽이는게 그대로 나타난 영화는 처음 보는거 같다.
한 두번의 장면이 아니라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유대인들이 죽는다. 두줄 세우더니 한줄은 다 죽이는 식.
인종차별이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상황을 만드는구나. 전시 상황에서는 사람 목숨이 값없다하지만 유대인들이 당한것은 유대인들이 말살되어야할 종족이라는 생각 하에 일어난 일인지라 아무 생각 없이, 생명 존중에 대한 생각 없이 정말 벌레 죽이듯이 마구 죽인다.

이 영화를 지금 미국 땅에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자니 그리고 중국과의 경제 전쟁과 러시아와의 냉전으로 국제 정세가 안좋은 상황에서 보자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걸까?

영화에서도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다. 공원을 못가고 레스토랑 입장 금지를 당하고 소유할 수 있는 돈을 제한하는 정도.
그러다 유대인이라는 표식을 크게 붙이라하고...(동양인은 표식 붙일 필요도 없는데 보면 다른데... ) 한 디스트릭트로 다 이주시켜 거주하게 하고 중노동을 시키고 가스 챔버에서 죽이고....

어제도 뉴욕에서 80세 넘은  중국 노인이 가격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설마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살짝 그런 불안감도 들면서 역이민 많이 가는 요즘 상황을 보자니 이 영화 속 상황에서도 재빠르게 다른 나라로 탈출 하는 외에는 방법이 없었음을 보게도 되고....
지금 이 시국에 영화를 보다보니 블랙라이프매터 운동과 더불어 이민자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말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상은 다시 평화로움을 되찾고 주인공은 청중들 앞에서 멋진 피아노 연주를 펼치는 걸로 끝난다.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
사람들의 광기는 폭풍처럼 휩쓸려가고 상처를 남겼지만 머물지는 못한다. 지나간다.
이 미국의 인종차별도 지나가기를....
선거 투표 반드시 해야지.



성경통독 7/30


아하스왕의 어리석음. 
어려운때에 여호와께로 돌이키기는 커녕 다메섹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아람왕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 성전의 기구들을 갖다버리네요.
어려움이 올때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하게 멀어지네요.

방금전 미국의 크리스찬에 대한 설문 조사 기사를 읽었는데요 코로나 기간동안 펑균적인 신앙은 더 떨어졌다고 하네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코로나로 잃은 경우는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교인들끼리 모이기 어려운 이런 상황들이 신앙생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거 같다고 합니다.

위기에도 하나님께 더 다가가기보다 더 멀어지는 아하스왕.
이런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에게 있지않나 돌아봅니다.
코로나 같은 위기일수록 돈이 더 필요하다고 인맥이 있어야한다고...그렇게 우상에 더 가까워지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성경통독 7/29


유다의 왕들이 바뀌며 선하다악하다 하는데 그 땅의 백성들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악한 왕 밑에서 힘든 세월을 보내다가도 선한 왕이 성전 보수등 선한 일을 계획 하면  그득그득 성전 앞에 나와 물품들을 채우던 백성들.
리더가 너무도 중요하지만 각자 한 사람 한사람 자기 몫의 삶이 있겠지요.
'악에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바울의 이 말씀을 보며 이 세대...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리더요 어떠 세대이던지 간에 잘 살아내리라 다짐합니다.

2020년 7월 28일 화요일

성경통독 7/28

접붙임의 비유가 살짝 햇갈리는데요 원래 접붙임은 안 좋은 나무에 좋은 가지를 붙여서 좋은 가지의 눈이  안좋은 나무의 뿌리로 부터 흡수된 수액을 받아 싹을 틔우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문을 보면 마구 헥갈려요. 
지금 본문은 좋은 나무의 일부 가지가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나쁜 나무 가지가 접붙여져서 좋은 나무가 새롭게 다 건강하게 되는 걸 말하고 있어요. 다른 종류의 접붙임이지요. 여기서 좋은 나무는 유대인이고 잘려져 나간 가지는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아고 접붙임된 나무가지는 이방인이지요.이 바울의 비유를 열매를 위해 접붙이기하는 우리의 농사법 방식으로 핵갈리지 말고 그냥 그 자체를 보면 그 자채로 완벽한 설명이 됩니다. 접붙여진 나무는 원나무의 뿌라로부터 수액을 공급받고 자라고 그 나무 전체가 멋진 나무가 되는..... 참이스라엘의 뿌리에 연결된 우리 이방인들. 접붙여진 가지가 원나무뿌리를 향해 교만해서도 안되며 이스라엘을 회복시킬때가 올것이라는 것. 이런 설명은 접붙임의 비유로 잘 이해가 됩니다. 
보통의 접붙임과 반대로 일어났다고해서 비유적 설명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그 설명이 참 완벽합니다. 그라고 유대인이면서 이방인 전도를 하고 있는 바울의 마음과 입장이 이해가되구요. 
참나무에 접붙여져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수액을 받고 하나님의 양자됨의 영광을 누리게 됨에 감사합니다.

드라이브라이센스 센터의 요즘 풍경

아침 8시 반 문여는 시간보다 10분 일찍 갔는데 밖에 거리를 두고 12명정도 줄 서 있었어요.
문을 열자 직원이 나와 무슨 일로 왔는지 묻고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돌려보내드라구요.
들어가면 번호표 뽑아주고 대기석에 앉는데 대기석 의자가 총 14개. 평소 바글바글 하던 모습과는 영 다른 모습. 다 치우고 인원제한을 철저히 하더라구여.
드라이브라이센스 주를 바꾸는 일로 왔는데 총 걸리는 시간은 40분 정도. 기다린 시간까지 50분 걸렸네요.
대기줄은  길어지지는 않고 9시 좀 넘으니 오히려 5명 정도로 줄어드네요.
일찍 일 처리하고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문여는 시간에 몰리는 거 같네요.
앨리슨 파크에 있는 드라이브라이센스 센터예요.

2020년 7월 27일 월요일

넷플릭스9: 렉티파이 Rectify 격리 생활 20년차 남자의 출옥


넷플릭스상 평점은 3스타인데 넷플릭스 고객님들의 영화취향이 아니었을 뿐 다른 곳 평점은 8/10 이 넘는, 상도 받은 괘 괜찮은 작품.

20년간 데스 로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사형수, 데니엘이 DNA 감식으로 꼭 범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나오면서 드라마는  시작이 된다.
그의 죄목은 같은 학교 여학생의 강간 살인.
18살의 나이에  독방에 갖히어 살다가 38살에 세상에 나오게된 데니엘. 그러니까 20년 동안 창문 없는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며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던져지게 되는데...
20년동안 세상은 초고속으로 바뀌어 아날로그 세상은 디지탈로 변신되고 데니엘은 18세의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던 방식에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20년을 성장한 모습이기를 요구받는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이 중년의 아저씨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른스런 인격체를 형성해가야하는 지점을 맞닥드리는 것.
이 드라마는 데니엘이 그 성장을 이루어내고 아픈 과거 속에서 브로큰 되었던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성적 학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드라마이지만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성장의 문제였다.
그리고 손실된 20년을 안고 살아야하는 데니엘의 실존의 문제.
무슨 희망으로 무얼 보며 어떻게 삶을 해석하며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과연 중요한가 ...
회를 거듭해갈수록 데니엘이 감옥에서 격은 일의 혹독함과 사춘기의 첫사랑을 잃고 걷잡을 수 없게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삶의 그 억울함과 그 삶이 끼친 여동생과 아버지, 엄마의 삶의 손실등이 드러나는데그 속에서 18살 같기도 하고 38살 같기도 한 데니엘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데니엘이 붙드는 것은  감옥에서 성적인 학대를 당했던 그의 아픈 인생에서, 그를 상처주고 힘들게 한 사람도 많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감옥 옆방 동료와 벽을 통해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항상 그의 편에 서주었는데, 특히 동생 아멘타는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오빠의 구출에 인생을 바쳤다. 아버지는 충격 가운데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가 남긴  타이어 가게를 재혼남과 스텝썬과 꾸리며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데니엘은 그점이 오히려 가치없는 자신때문에 그들의 삶마저 헛되게 한다는 자책감으로 더 움츠려들던 마음으로 작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에 대해 죄책감 대신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이제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더이상 다운되지 않게 하겠다는 욕망이 생기더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남았고 지금 이 상태로 있기까지 어떤 이유에서든 메니지해 왔다는 것.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망가지고 상처 투성이의 과거와 어찌될지 모르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그래도 자유롭게 주어진 오늘이 있다는 ....
이 말과 겹쳐지는 장면은 그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며 놀람으로 커지던 눈과 표정이었다. 프레즌 모먼트를 즐기는 것. 삶의 원더를 체험해 가는 것.

그가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모습, 총 26회인데 젤 마지막회에서 나오는 대사이므로 드디어 여기에 이를 때 뭔가 장엄함, 존재의 위엄이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은 데니엘은 대화법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인데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왕따가 될거 같은 존재감이어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의 데니엘은 갑자기 위엄을 갖추고 존엄이 있는 존재감으로 바뀌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이제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가치를 알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존재의 존엄성. 더이상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는.....예수님 안에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을 잠시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을 하며 예기치 않는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때에 20년 격리 생활을 한 데니엘을 보자니 그가 걸어온 한스탭 한스탭들, 그 삶의 버든을 내려놓고 풀어가는 그 모습들, 또 주변사람들의 데니엘로 인한 선택과 갈등들, 그 모든 일 속에서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결국에는 회복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들, 그런 것을 보자니 뭐 몇달 코로나로 이러고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님을.....20년 격리생활 데니엘도 삶을 추스리는데, 그 가족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는 실지로 대니엘과 같은 저런 일이 일어났음을 신문에서 보고, 역사상 전염병에 인류가 시달리는 일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고..... 우리는 너무 안락한 시대와 삶을 살아서 코로나 코로나 하면서 와이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담대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책이든 역사서든 영화를 통해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유익이리라....

이 드라마에서 한 부분,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을 떠나 재활센터 같은 곳으로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데니엘이 엄마의 전화를 씹는다. 엄마는 불안해하며 데니엘을 찾아오는데 데니엘이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데 엄마랑 말하면 엄마의 염려와 걱정 눈빛 속에서 근심거리인 자신의 모습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는 것. 미래를 향해 나가야하는데 자꾸 과거를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피하게 된다는 것.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이들이 엄마와의 대화를 피한다면 데니엘과 같은 이유로 인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데니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했지만 데니엘을 믿어주고 '난 너를 알아 너를 믿어 ' 라고 말해주며 진정한 프랜드쉽을 나누었던 감옥의 옆방 친구처럼 데니엘을 회복 시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모습을 통해 데니엘은  미성숙하고 걱정거리 근심거리였던 자신을 자꾸 보게 되는 것. 아이들에게 이런 실수 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에겐 역시나 친구가 중요함이다.

또 인상적이 었던 것은 데니엘의 스텝 브라더 태디의 와이프 토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나오는데 그래서 데니엘을 침례받도록 인도하지만 그녀 또한 브로큰된 존재로서 자신을 회복하고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 안으로 자기를 구겨넣으며 자기를 잃어버리는 과정은 아닌데 그녀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고 꾸며진 행복을 갖고 있다가 깨져버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남편, 태디의 상처들과 트위스트된 인격.
그둘이 회복되고 성장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대충 구겨 넣어서 대충 맞추고 있다가 완전히 부서지고 깨지더니 다시 추스리고 성장해가는 그 과정....

대체로 재밌고 제법 괜찮은 드라마. 데니엘과 태디의 성격이 대조되고 태디의 와이프 토니와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 두 여인의 성격이 대조되는데 데니엘의 동생 아만타의 톡톡 튀는 말투와 개성을 보는재미도 있다. 연기는 주인공 데니엘과 스텝 브라더 태디가 정말 잘 한다.

매운 감자 수제비

감자탕 한 국물이 많아서 감자 이미 들어있으니 호박 양파 좀 더 넣고 로티세리 통닭 살 찢어 놓은거 좀 넣고 수제비를 만들었어요..들깨가루 들어간 매운 수제비.
괜찮네요.

성경통독 7/27

역대하(대하) 20장 - 12.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저 큰 군대에 맞설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우리 눈은 여호와만 바라볼 뿐입니다."

코로나와의 전쟁과 병균과의 전쟁, 암과의 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을 만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우리는 여호와만 바라볼 뿐입니다.
하나님깨서 여호사밧 때에 유다백성들을 구하셨듯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길...
유다 온 민족이 어른 아이 모두 나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듯이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 위기를 이겨내길 기도합니다.

신약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이방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는게 이스라엘에게 손해냐? 아니다 그로인한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역으로 다시 구원이 일어나는 선순환의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다르면서도 같은 원리로 주변에 믿음이 부족한 분들을 도우며 그로 인해 내가 더 기도하고 더 강해져서 다시 나의 구원에 유익이 되는 선순환을 보게 되는걸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2020년 7월 26일 일요일

성경통독 7/26


 바울이 증거하는 설명하는 복음. 구약을 꿰뚫고 설명해내는데 참으로 깊네요. 
때로 책이나 영화애서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해 조롱하듯 묘사되는거 보게 되는데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그 이해의 깊이가 얕다라는것. 
성경에 인생을 걸고 깊이 있게읽고 또 읽는 우리 크리스찬이 보기에는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한번이나 성경을 제대로 읽었을까 하는 모습으로 그렇게 다 아는 듯 얘기하는 경우를 많아 보는데요 그럼에도 때로 흔들리기도 함을 또 고백하게 되네요.
그런데 로마서의 바울의 깊이는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입니다. 크리스찬의 삶의 넓이와 깊이를, 그 논리의 정연함과 아름다움을, 그 경험의 남다름을,  바울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설명해주네요. 
바울과 같은 신앙 감히 꿈꿀수도 없지만 이 감탄하는 마음만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오래 간직하며 세상을 이기길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5일 토요일

성경통독 7/25


아사왕의 일대기는 하나님을 잘 믿다가 말년에 믿음을 놓치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이스라엘이 쳐들어오는 시련을 겪자 성전의 물건을 내어주어 아람왕과 친교를 맺습니다. 당장은 위기를 넘기지만 그의 발에 난 병이 깊어짐에도 여호와를 찾지않고 의사들만 찾는 불신앙의 모습으로 죽습니다.

선지자 아사랴의 말을 듣고는 용기를 얻고 35년간 잘 다스렸던 왕인데 선견자 하나니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환난에 넘어지는 모습. 믿음의 뿌리가 깊은 듯 깊지 않은 모습은 바위에 떨어진 씨앗이었을까요?
새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환난 중에도 견지하는 것이 참 쉽지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견자를 보내시고 돌이키려하시는데 아사왕이 듣지 않네요. 어쩌면 환난으로 신앙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35년간 누렸던 영화로 인하여 조금씩 무뎌지고 감사함을 잊고 당연하게 여기고 내가 이룬거 같고...그렇게 무너져내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는 그 인련의 과정. 연단에 이르지 못하고 무너져 모든 인간의 소망, 구원을 이루지못하네요.

다윗이 생각납니다. 쓰러졌다가도 일어나던 연단의 과정에 이르고 소원을 이루던...
다윗과 아사왕의 차이를 보면서 하나님을 평생 믿으며 의지하며 살아가기를....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4일 금요일

코스코 로티세리 치킨 손칼국수


점심 간단히  닭칼국수.
어제 코스코에서 오랜만에 통닭 구워 놓은거 사다가 저녁으로 다리, 날개등 먹고 남은 거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거 사용했어요. 뼈를 남겨 놓았더라면 닭곰탕을 해도 좋을텐데 뼈는 버렸고 살만 남겨 놔서 닭칼국수로...

이 통닭구이는 손해보며 파는 거라죠? 호르몬 스테로이드 사용 안한 A 등급 닭을 구워서 5불 안되게 받으니 손해.
그거 사러 오면서 다른 거 사는 효과, 멤버쉽 유지하는 효과 그런거 고려하면 남는 장사라서 유지하고는 있는데 통닭 자체의 손익을 따지면 많이 손해하고 하더라구요.
그러니 가성비는  아주 좋은 통닭구이.

닭고기 양파 감자 호박 파 계란 넣으면 되니까 넘 간단해서, 그럼 칼국수는 손칼국수로 밀어버리리라  처음으로 시도했네요.
예전에 엄마가 만드시던 거 보던 기억대로...

덜 달라붙게 오일 좀 넣고 소금 간해서 밀가루 반죽해서 밀대로 밀고 서로 붙지 않게 밀가루 뿌리고 삼단으로 접어서 잘랐어요. 잘 되는데 반죽이 질어서 좀 달라붙기도..
엄마 땐 상 펴고 하느라 허리 아프고 그랬는데 아일랜드에서 서서 하니 금방 쉽게 되네요.

수제비랑은 또 다른 텍스쳐 맛으로 맛나게 먹었어요.
오늘 점심은 3인분 이여서 직접 민 손칼국수도 어렵지는 않네요.

성경통독 7/24 (구신약의 일체에 대하여)


남유다는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일부로 구성되었고 북이스라엘은 나머지 10지파로 구성되었는데 열세인 유다가 이스라엘을 이깁니다. 유다가 역사와 정통을 이어받았고 북이스라엘은 새로 구심점을 만들고 나라를 세워가야하는 불안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상식적으론 이해가 되지 않지요.
군사도 많을테고 국력도 더 강할텐데.....
유다가 이긴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은 여호와를 잘 섬기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이기게 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 그러기에 그들은 담대하게 승리로 나아갑니다.

이 모습이 신약의 바울의 주장과 같네요.
영적인 승리의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 
겉보기에는 유다왕 아비야는 점점 힘이 세어져 강해지고 번성하는데 바울은 쫒겨다니고 힘없이  감옥에서 죽지만
여호와로 인한 승리를 확신하며 충성하는 삶. 
같은 메세지이고 같은 맥락임을 봅니다.
구약과 신약 시대가 다르고 소명이 다른 것뿐, 마음의 연약함으로 오는 두려움을 뚫고 헤쳐나가며 승리에 대한 확신을 믿으며 나아가는 그 모습과 맥락은 같음을 봅니다.

구약에서는하나님의 백성은  이생에서의 승리와 번영과 영광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알리는 역할을 했지요.
최후 승리를 향해 믿고 나아가는 것. 적들이 강하고 숫적으로 우세할지라도 그들은 망할거 라는 것. 금송아지를 만들어 뽐내고 있지만 쓰러질거라는 거.
남유다의 싸움이 바울만큼이나 쉽지 않았을텐데  그 일을 해내고 승리합니다.

바울의 싸움은 심판 이후의 영광이 더욱 명확해지고 드러난 시대, 그리스도의 부활 그 이후의 시대의 싸움입니다.
이방 전도의 소명을 받고 부활의 소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며 이생에서의 잘먹고 잘사는 삶을 넘어서는 그 이후의 영광이 너무나 크고 찬란하여 이생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고난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수 있는 그 경지로 크리스체너티는 깊어지고... 하나님의 계시는 더욱 더 확실한 그림을 보여주는 시대의 사람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소명과 콜링으로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매맞고 환란을 당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죽음 이후의 심판을 이기는 최후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들도 연약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지만 환란으로 쓰러지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이겨냅니다.

겉보기로는 달라 보여도 구약과 신약은 같은 맥락이지요. 
전차와 말과 강한 군사력으로 도전해오는 적들을 이겨내는 구약의 영웅들은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도 죽음은 눈앞에 있었고 세상 논리로는 실패와 죽음인데 담대하게 승리를 믿고 여호와의 전쟁을 치른 것.  그들의 승리는 십자가의 삶 속에서 고난 가운데 최후 승리를 얻는 신약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같은 모습인 거 같아요.

신약의 십자가 삶은 부활의 확신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과 보장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삶의 여정입니다. 바울을 통해 보여주시는 그리스도의 도가 얼마나 깊이 있고 죽음을 넘어서는 담대함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지요. 그리스도 이후 부활의 모습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어 주셨고 이제 우리는 좀 더 깊은 이해를 갖고 우리의 크리스찬된 삶을 바라봅니다. 세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그 썩어짐, 밀알이 됨, 성령의 열매를 거두고 승리를 하는 삶, 그런 삶의 원리를 이해하게 하십니다. 구약의 시대에도 우래아, 나봇의 포도밭 사건, 선지자의 억울한 죽음등 의인의 멸망이 있었고... 신약에도 온갖 병고침과 이생의 축복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 천국 여정의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어떤 선진의 삶을 닮은 모습이고 어떤 콜링이던지 간에,  주님 의지하며 최후 승리를 믿으며 환란 가운데 인내하며 연단하며 최후 승리의 소망을 얻어내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포치 공간 활용 손님맞이


가끔식 물건 전해주러 오시는 분들과 잠시 대화 나눌 공간을 마련했어요.
집 앞 포치에 덱에 있던 의자 두개를 갖다두고 쇼셜 디스턴스 유지할만큼 떨어뜨려 놓았네요.
오늘 마침 들르시는 분이 있어 세팅해봤는데 넘 좋네요.
너무 덥지 않은 날은 선선하니 잠시 대화나누기 좋네요.

성경통독 7/23


성경 중 로마서. 로마서 중 8장이라더니, 로마서의 백미. 황금장인 8장.
그 유명한 주옥같은 구절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리요. 환난, 곤고,핍박,배고픔,헐벗음,위험, 칼이랴...(35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39절)
하나님께서는 미라 정한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30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압니다.(28절)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음(18절)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할 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26절)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예수님을 통하여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찐 사랑. 완전한 사랑을...
우리는 연약하여 수시로 넘어지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시기에 다시 일어납니다.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소망을 품으며 나아가오니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2020년 7월 22일 수요일

성경통독 7/22


법치 국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의.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물질적으로 최대한 잘 먹고 잘사는게 대부분의 사람의 삶의 지항하는 바인데요, 법의 개념이 율법이 주어졌던 유대인들의 고대 사회와 많이 다른 느낌이예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괴 모세의 율법은 안식일만 하더라도 어디까지가 지키는거고 어디까지가 안 지키는 건지 깊이생각해야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름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일반적인 도덕률을 따름과는 다른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했지요. 법의 개념이 하나님께 절대 순종의 삶을 요구하는 높은 수준이었는데 현대 사회는 그런걸로 고민하는 사람이 과연 몇프로나 될까 싶은 사회로 바뀌었네요.
구원이나 영생에 대해서, 절대선에 대한 추구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네요.

그래서 오늘의 말씀. 곤고하도록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나 이를 수 없음에 절망하는 이 모습이 우리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얘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로 나오는 현대의 사람들의 삶의 실패와 절망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이 되고 있는 상황들...
죄의 문제 보다는 삶의 실패에 절망하며 만능의 하나님을 구하며 나아오고 그러다보니 기복 신앙으로 흐르는 모습들. 현세의 복과 능력을 구하며 제단을 쌓는 열심들로 교회가 채워지구요.

오늘 말씀은 그 출발부터 깨고 우리 안에 더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인생의 문제 ,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보게 합니다.
생명과 평안으로 이르게 하는 성령의 내주에 대해 말합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이셨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메시아를 아예 기대조차 않고 있기에 더욱 예수님을 알기가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더욱 악해진 무신론의 세상에서 민감함으로 영의 눈을 뜨고  성령님의 내주와 그 역사하심을 꿈꾸며 살아가는 나날이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1일 화요일

틸라피아 매운탕

샘즈 클럽에 좀 일찍 갔더니 틸라피아가 통째로 얼려진걸 냉장 코너에 파는데 딱 하나 남아있길래 매운탕을 해볼까 싶어 사왔어요.


봉지를 뜯으니 개별 진공포장된 것이 4개 들어 있었어요.
4마리의 틸라피아.

두개를 해동시킨 후 열어보았더니 내장은 깨끗이 손질되어 있고 비늘도 없앴더라구요. 그런데 지느러미와 머리 부분은 그대로 있었어요.
지느러미 잘라내고 세토막 내어 머리 포함 매운탕용으로 손질했는데요 지느러미 자르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매운탕은 무우와 파, 두부만 넣고 끓였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양념이 맛있었는지 제법 매운탕 다운 맛이 났어요.
식구들 모두 맛있게 먹었어요.
양념 비율이 좋았던거 같은데 된장이 들어가더군요. 

양념은
된장 한스푼, 미림이나 소주 한스푼, 고추가루 크게 두스푼, 다진 마늘 한스푼 반, 고추장 한스푼.

양념은 따로 그릇에 물을 넣고 재료들을 섞어서 풀어준 후에 넣어주었어요. 양념 풀면서 휘저으면 생선이 으깨지기 쉬워서 미리 다 섞어요.

먼저 무우 넣고 물을 붓고 끓이고 양념장과 생선 넣고..... 끓으면 파와 두부 넣구요.

간이 싱거워서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춰주었어요.

미국마트 생선 사서 매운탕 끓인건 처음이었는데 넘 괜찮았어요. 이 생선으로 전이나 생선까스하면 맛나길래 매운탕 함 해본건데 넘 만족스러웠어요. 

친구는 코스코에 perch라는 생선이 나올때가 있는데 그걸로 지리 해먹었는데 맛났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함 해봐야겠어요.
틸라피아의 한가지 단점은 잔뼈가 많아서 조심해서 먹어야해요. 

인스턴트 곤드레밥

요즘 즉석 곤드레밥을 파는걸 많이 볼수 있죠. 한품에서 사둔게 있어 함 해봤어요. 12불이네요. 


이렇게 생긴걸 열어보니

이렇게 들어있었어요.
건나물과 쌀을 밥솥에 넣고 물 600밀리 넣어서 밥하면 되어요. 백미 모두로 전기밥솥에...
좀 부드러운 곤드레를 원하면 곤드레를 30분 불리라기에 그렇게 했어요. 세상 간단하네요.

밥이 된 모습.
양념장은 살짝 특이해요. 약간 중국식 소스 같은맛인데 그런대로 괜찮아요.
저는 집에 있던 보통의 양념장이랑 같이 두가지 놓고 먹었어요.


시골스런 음식 땡길 때 한번씩 해먹을만 해요.
나물 불려서 삶아서 해먹는 그 맛에 비길수는 없지만 보통의 인스턴 푸드보다는 훨 나요. 곤드레 향 제법 나요.

다른 제품으로 아마존에서도 파네요.
아마존 링크 겁니다. 이건 쌀, 양념장 없이 나물만 5개 패키지이고 15불 정도 하네요. 
그런데 한품에서 산 건 한국쌀이 들어있어요. 여기서 한국쌀 구해먹기 어려운데 오랜만에 한국쌀로 곤드레밥 먹으니 맛나네요. 

평창 곤드레 아마존

한국 직송 한품






성경통독 7/21


역대상하는 포로에서 귀환될 무렵 에스라에의해 쓰여졌다고들 보는데요 한번 보지도 못한 그 옛날의 영화로웠던 시대에 대해 쓰고 있는 심정이 어땠을까 싶어요. 성전은 무너져내렸고 포로가 되어 흩어져살고 있는 유대민족.
 그 영화로왔던 솔로몬 시대를 되돌아봅니다.그 시대의 찬란함과 영광.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서는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주셨던....

포로 아닌 포로로 집콕하며 지내는 우리도 이런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마음이 저리네요. 그 주어졌던 자유의 시간들을 하나님께 잘 드리지 못했음을 회개하게 되구요.

바벨탑 사건이 생각나요.
하늘에 닿으리라 바벨탑을 쌓자 언어를 흩고 인간이 모이지 못하게 하셨던....
우리가 자유롭게 모일수 있었던 그 시절에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쌓았던 바벨탑들...돈의 우상. 힘의 우상.
지금도 이 미국 사회는 회개하지 않고 쫒아가고 있는 듯해요.

이스라엘 민족이 놀랍게도 다시 소환되어 유대땅으로 돌아갔듯이 우리에게도 되돌림과 회복의 기회를 주시고 우리 안의 주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도록 영화롭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컬리 플라워 쌀

비쥬얼은 밥과 비슷한데 맛은 어떨까 궁금해서
샘즈 냉동칸에 컬리플라워라이스가 있길래 사봤어요.
여러 봉지 들어있는데 한 봉지 뜯어서 후라이팬 중불에 놓고 얼어있는걸 포크로 살살 두드려서 깨뜨려 주고 물기가 없어질때따지 후라이팬에서 뎁혔더니 컬리 플라워 라이스가 되네요. 맛은 컬리플라워 익힌 맛이예요.
밥 없이 밥이다 생각하고 함 먹아봤는데 가끔 메뉴에 따라 먹을만 할듯요.
오늘은 갈비찜이 주 메뉴라 먹을만 했어요.
국이나 탕이 주메뉴면 밥 생각 날거 같아요.

화상용 네오스프린


집에서 요리 많이 하다보니 화상의 위험이 늘어나네요.
이 화상용 네오스프린이 효과가 좋네요. 위에 burn pain relief 라고 써있지요?

두번 사용해보았는데요, 
손가락에 살짝 물집 올라오게 화상 입은 경우가 있었는데 이 네오스프린으로 잘 가라앉아서 물집이 터지지 않고 그대로 줄어들면서 감염 없이 잘 아물었어요. 
또 한번은 팔뚝 안쪽에 끓는 물을 쏟아 제법 넓은 면적이 벌겋게 화상을 입은 경우였는데 처음엔 알로에로 열을 식혀주고 좀 지나서 열기 가라않고나서 잘 씻은 후  이걸 발라주니까 통증을 줄여주고 나날이 상태가 좋아지더라구요 . 다행히 물집이 생기지 않고 이틀 지나니 통증 없어지고 빨간 부위도 점점 줄어들더라구요.

집에 상비약으로 하나쯤 있으면 좋을거같아요 
타겟에는 없었구요, 자이언트 이글에서 샀어요.

성경통독 7/20


순종의 문제.
정욕에 내어주지 않고 의의 병기로 몸을 다스려 순종하는 것. 이것이 참 어렵네요.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옛사람이 죽고 죄가 죽어 거룩함의 열매를 맺기를...

주님 저는 새사람입니다.
죄의 본성들을 어찌 해결할지 아는 사람입니다.
정욕에 순종하려는 광풍을 잠재워주시고 뿌리째 뽑아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소서.
그길로 순종하며 나아가서 거룩의 열매를 맺으며 영생에 이르는 삶 살게 하소서.

2020년 7월 19일 일요일

US 40 Historic Road 와 Lick Hollow state forest

오랜만에 피츠버그 즐기기의 본연의 목적에 좀 맞는 포스팅을 하는 거 같아요.
어제 오하이오파일을 가서 자연을 좀 즐기려다가 사람들이 많아서 인적 드문 곳을 찾아 그 지역을 벗어나서 더 가보다가 발견한 장소를 소개합니다.
오하이오파일을 지나 그 길을 계속 가다가 사거리 신호를만나면서 오른쪽으로 히스토릭 로드라는 싸인이 보이길래 궁금해서 그길을 따라 가보았어요. 이길의 정식 로드 이름은 us 40 national pike historic road.

20분정도 드라이브하면 양옆으로 오래된 역사적인 빌딩들이 보이고 크리스마스용품 가게, 아미쉬 퍼니쳐가게, 오래된 음식점등 구경거리가 솔솔한 건물들이 펼쳐져요.
전 미국 살면서 신기한게 이런 구석구석에 제법 인프라가 갖춰진 마트며 멋진 건물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한국은 시골가면 별로 갖춰진게 없고 건물들도 별로고 그런데 미국은 어느 시골을 가도 마트들 있는 주변 건물들은 번듯하고 멋진 건물들이 제법 있어요. 그게 참 신기한데 이 주변은 특별히 더 그러네요.

Fort Necessity National Battlefield 라는 역사적인 유적지도 있는데요, 인디언과 프랜치가 싸운 유적지라 하는데 코로나만 아니면 들러보았을텐데 아쉬운대로 지나쳐서 갔구요.


Historic Summit Inn Resort 라는 야외수영장 있고 전망대도 있는 서밋에 위치한 호텔 건물을 지나면 왼쪽으로 차를 잠시 세우고 Scenic Overlook 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왼쪽이라서 차를 유턴하듯 돌려야했는데요, 아래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서 기분 전환이 되었어요.




us 40 national pike 길을 좀 더 내려가면 중앙분리대를 살짝 끊어서 왼쪽의 숲으로 난 길을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요, 그길을 따라 쭉 가면  Lick Hollow state forest 피크닉 에어리어가 나와요.
이 길은 비포장 도로이고 길이 파여있기도 해서 조심 조심 운전해야해요.
길은 차 두대가 비껴갈려면 서로 비켜줘가며 갈 수 있는 좁은 길이구요.
그 안에  깊은 숲속에 넓은 피크닉 에어리어가 있어요.
주변 나무들은 녹음이 짙고 고사리숲이 무성해서, 오래된 숲의 분위기가 나는데 작은 시내도 흐르고 그 위로 귀여운 브리지도 있고 잠시 쉬기 좋더라구요.
피크닉 테이블, 바베큐용 그릴, 화장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요. 
몇 가족이 모여서 숯불을 피우며 바베큐를 하고 있었는데 그 주변을 걸어다니며 구경하고 삼사십분 놀다가 왔어요.
트레일도 있던데 넘 시간이 늦어질거 같아서 못했어요.
답사한 기분으로 이런 지역도 있구나 둘러보았네요.








항상 오하이오파일까지만 갔었는데 뜻하지않게 발견한 곳들, 보물찾기하듯 잘 즐기고 왔네요.
몇달동안 집콕하다가 오랜만에 드라이브로 제법 기분 전환이 되었어요.
드라이브 코스 좀 더 찾아봐야겠네요.

성경통독 7/19


다윗은 성전을 지을 만만의 준비를 하는데 그 고백이 
모든 것이 주께서 나온 것이니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드릴 뿐이라 하네요
내가 누구기에, 내 백성들이 누구기에 이렇게 많은 것을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까? 합니다. 겸손함.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우리가 가져야할 합당한 자세를 다윗은 진심으로 표현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린다는 고백.

다윗이 이 모든 것을 준비하며 인생을 보는 시각은
'나그네며 잠깐 머무는 낯선 사람들. 이 땅에서 사는 날은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세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생임을 고백하는 마음. 이 마음이 있기에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었으리라...

'늙도록 부자였고 높임을 받고 명예를 누리다' 죽었지만 그런 인생이었음에도 그 인생 재미에 푹 빠지지 않고 그저 그림자임을 알았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 기업안에 있음의 기쁨을 알았던 다윗.

이 다윗과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아담과 대비시키며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바울을 보자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생의 시대, 그들이  누린 것, 삶의 방식은 많이 달랐지만 다윗과 바울이 인생을 이해하는 모습은 닮아있네요.
다윗과 바울. 그 선진들의 인생에 대한 이해에서 배우며 참예배를 드리는 주일이기를 기도합니다.